<김의원의 국토 이야기>국토개발과 지명의 신비
<김의원의 국토 이야기>국토개발과 지명의 신비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2.13 0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8-02-13 15:45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지명은 사람이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지명을 중히 여기는 인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논이나 밭뙈기 하나하나에도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 많다.
 
지명은 역사의 화석(化石)이란 말이 있다. ‘땅이름’이란 것은 어떤 특정한 토지에 붙여진 고유명사이다. 이를테면 원시시대에 수렵을 하는데 노루가 잘 잡히는 산이나 고기가 잘 잡히는 하천 같은데는 무엇인가 고유의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지명의 시발인데 그후 우리나라에 한문이 들어옴으로써 이들 지명은 한문으로 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소망과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지명의 본질이 있다. 전통이란 것은 지속되는 민족의 관념을 말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지명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명에는 자연지명과 인문지명이 있다. 자연지명 중에는 국토개발과 관계가 깊은 지명이 많다.
 
압록강 지류에 허천강(虛川江)이란 하천이 있다. 갑산(甲山) 앞을 흐르는 강인데 이 강의 상류에 일제는 4개의 댐을 건설했다. 이들 댐의 물을 도수로로 연결해서 동해안의 단천(端川)으로 역류시킴으로서 34만㎾의 발전을 하고 있다. 이로부터 허천강은 강바닥 물이 말라 문자 그대로 허천강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시기인 1944년에 평안북도 삭주군 구곡면 수풍동에서 당시의 만주쪽으로 압록강을 가로질러 연장 900m의 댐이 건설되었다. 유효저수량만 해도 소양감댐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55억㎥이었다. 이 댐은 64만㎾의 당시 동양 최대의 수력발전 시설을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댐이 위치한 곳이 수풍동(水豊洞)이라니 신비스럽기도 하다.
 
1965년에 준공된 섬진강댐으로 수몰된 지역의 이름이 수침동(水浸洞)이었다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지만 1973년에 완공된 소양강댐의 취수탑이 있는 곳과 팔당댐의 취수구 설치장소가 모두 수구동(水口洞)이란 지명을 가졌으니 신기한 일이다.
 
80년대 중반 당시 청주에 국제공항을 건설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새로 비행장을 건설한다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군용비행장을 민간비행장으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비행장이 위치한 충북 청원군 북일면에 비상리(飛上里)가 있고 청주시 강서동에 비하리(飛下里)란 마을이 있다. 그러니까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 끝에 있는 부락 이름이 비하리이고 이륙하는 쪽 동네 이름이 비상리란 것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80년대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금강산댐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쪽에서 수공작전을 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남쪽은 부랴부랴 6백수십억원에 달하는 국민성금을 모아 ‘평화의 댐’이란 이름의 대응댐 건설을 시작했다.
 
불과 1년만에 80m 높이의 1단계 댐이 완공을 보았는데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의 수상리(水上里)는 댐위에 위치하게 되었고 수하리(水下里)는 댐 아래에 자리잡게 되었으니 이런 경우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충청남도 당진군에 대호지면(大湖芝面)이 있고 그 옆의 석문면에 교로리(橋路里)라는 부락이 있다. 1981년부터 이 지역에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됐다. 공사 내역인즉 서산군 대산면 화곡리와 당진군 석문면의 교로리간 7천800m를 방조제로 연결시킴으로써 1천120만평의 새로운 농지를 얻게 됐다. 이 사업은 1984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방조제의 축조로 대호지면 앞은 거대한 인공호수가 되고 말았다. 특히 교로리 앞에는 7.8㎞의 긴 둑길이 생겨 이름 그대로 ‘다릿길’ 마을이 되었다.
 
경기도 과천은 조선조 500년 동안 삼남지방의 통행을 통제하던 검문소가 있던 교통의 요지였다. ‘과천에서부터 기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듯이 과천 관문은 한양 입성의 5대 관문중 첫째 관문에 해당한다.
 
수도권 인구분산 시책의 일환으로 1977년부터 과천신도시 개발계획을 필자 주관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과천에 관문리(官文里)란 동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등 대부분의 중앙정부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지명에는 이상하게도 신비성을 가진 곳이 많다. 그렇다해서 지명의 발음이나 글자에서 단락적으로 문자의 뜻에 따라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명이란 그 자체가 의문이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적 측면에서 지명에 대한 연구는 진지하게 진행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