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우진>주택배분 시스템부터 뜯어 고치자
<시론 김우진>주택배분 시스템부터 뜯어 고치자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6.01.0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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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18:51 입력
  
“재건축을 더욱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결국 지금 현재의 기득권을 또 다른 여유계층에게 배분하자는 논의일 뿐”
 
김 우 진 (사)주거환경연구원 원장
주택은 시장재이면서 공공재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보통의 중산층 가정들은 주택을 통해 재산을 증식시켜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여유자금이 있다면 주택에 투자하겠다는 가정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오늘날의 중산층 형성에 시장재로서의 주택이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할 것이다.
반면 주택은 인간생존의 3대 요소인 의·식·주 중의 하나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이에 제14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이어 제16조에는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인 주택이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성격만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주택의 속성으로 인해 주택보급률이 110%가 넘는 선진국에서도 주택은 교육, 의료와 함께 항상 3대 선거공약 중 하나였으며, 주택을 둘러싼 좌·우간 이념논쟁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 재정지출 중 주택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적은 재정지출로도 매년 공급되는 주택은 상대적으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많았고, 주택을 둘러싼 이념 문제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주택문제는 항상 주택부족 즉, 공급의 문제였다. 물론 지난 89년 전세금 상승을 견디지 못한 가구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나타나면서 서구에서 논의되던 주택에 대한 국가의 역할 등 주택이념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주택 200만호 계획이 수립되고, 5개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주택문제는 다시 공급의 문제로 되돌아 왔다. 서구의 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답은 지난 20년 이상 지속되어온 우리의 주택배분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배분 시스템은, 열심히 일하고 아껴 저축(청약저축, 청약부금 및 청약예금)하면 신규로 공급되는 주택을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었다. 신규주택은 가격이 규제되어, 비록 청약저축의 이자가 다른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아도 당첨 프리미엄이 워낙 크기 때문에 참고 부지런히 저축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저축률이 세계 어느 국가보다 높은 데에는 청약저축제도가 일조하였다 할 것이다. 청약 저축을 통해 모은 자금은 주택건설을 위한 재원(국민주택기금)으로 사용되어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재당첨 금지를 통해 신규아파트 프리미엄을 일부 가구가 독점하지 못하게 하여 사회적 형평성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당첨 프리미엄을 기다리며 전세로 살고 있는 수백만 가구들의 불만은 신규 공급되는 주택이 적어 당첨 확률이 낮다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는 논의는 다음 문제였다. 국가는 부지런히 택지를 공급하여 신규주택을 많이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묵시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운이 없어 주택을 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시장경제 국가에서 되는 이야기인가?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나이 들어 전세로 살고 있다는 것은 결국 청약저축도 못하는,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 혹은 인생의 낙오자와 동격이 되어 전세가구는 곧 부정적 의미의 저소득층가구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또한 가격규제 하에서 기존 주택의 가격이 상승하면 신규아파트와 기존아파트 가격의 차이인 프리미엄도 상승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는 당연히 주택가격상승을 반기고, 청약 1순위 자격을 가진 임차인에게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만들기 힘든 목돈을 아파트 당첨과 함께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구조였다. 주택가격 상승은 일부 소수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반면 비록 주택가격은 규제되지만 건설하기만 하면 분양에는 문제가 없었고, 선분양을 통해 손쉽게 건설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기에 주택업체는 박리다매형 주택공급에 주력하여 세계에 유례없는 주택공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가격규제 하에서 품질향상 노력은 비용증가일 뿐, 성냥갑 같은 획일적 주택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하였던 가장 근본적 이유는 지속적 경제성장과 활발한 사회이동(Social mobility)때문이었다. 지속적 경제성장으로 일자리는 끊임없이 창출되고, 그 일자리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면 소득도 증가하고, 아껴 저축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통가구들은 결혼하여 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하면서 청약저축에 가입해 열심히 저축하고, 때로는 부부가 함께 맞벌이를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 전세로 이사하고, 그리고 1순위가 되면 신규주택을 분양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절차가 우리사회에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지난 20년 이상 잘 작동해왔던 이러한 주택배분 시스템이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경제성장은 저성장 구조로 전환되었고, 경제 성장은 IT, 자동차 등과 같은 산업에 의해 주도되면서, 과거와 같은 성장의 혜택이 현재 전세로 살고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다. 맞벌이는 고등교육을 받은 부부들의 이야기이지 저소득층 가구의 주부로서는 일용직도 쉽지 않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단칸방 거주 가구로서는 청약저축, 예금, 부금에 가입해 2년 이상 기다리기도 힘들고, 이보다 조금 사정이 좋은 가구들은 설사 분양을 받았다 하더라도 잔금을 낼 수 있는 여력도 소진되고 있다.
과거 중산층 형성에 기여하였던 주택배분 시스템이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시키는 시스템으로 변화되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청약저축의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세금혜택과 함께 신규주택 우선분양 자격까지 갖추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가구들의 재테크 대상이 되고 있다. 분양권 전매규제가 정부 주택정책의 전면에 나와야 되는 환경은 결국 여유 있는 가구들이 재테크를 하는 그들만의 잔치장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신발, 섬유와 같은 산업이 다시 부활되기는 더욱 어렵다. 청약저축, 예금, 부금에 가입하여 5년간 혹은 7년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있는 가구는 언제든지 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가구들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판교의 신규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과연 정말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가구들을 도와주는 정책인가? 한 채에 8억원하는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가 6억원으로 하락한들 저소득층 가구들이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강제적으로 가격을 내리게 하는 정책의 혜택이 과연 어떤 가구들에게 돌아갈 것인가? 단칸방 거주 가구들이 그 혜택을 누리는가? 아니면 6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가구가 누리는가?
강남의 재건축 가격 상승이 인근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기존 아파트 가격상승이 신규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유발하여 전반적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주택가격 상승이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져 집 없는 저소득층 가구들의 주거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인식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택시장은 전국이 획일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시장(Sub-markets)이 특징이다. 강남의 재건축 가격이 급상승했어도 강원도 삼척의 아파트가격은 오히려 하락하지 않았던가?
분양가를 규제해야 한다든지, 재건축을 더욱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결국 지금 현재의 기득권을 또 다른 여유계층에게 배분하자는 논의밖에 되지 못한다. 단칸방에서 전 식구가 살고 있는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힘들다. 우리의 주택배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작년 이맘때, 이 지면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야 한다. 규제를 통해 민간에게 공공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도록 하는 정책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계에 왔다. 서민 주거복지는 공공이 책임을 지고, 민간 주택시장은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서민주거환경을 담당할 주택청이 신설되어야 하며, 그 핵심적 기능은 시장에서 경제력 부족으로 소외되는 계층을 대상으로 주거복지를 직접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반면 민간 주택시장은 시장기능에 맡기고 인·허가 등은 지자체에게 넘겨야 할 것이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은 예외 없는 양도소득세 부과 등을 통해 사회에서 회수하고, 회수된 재원은 저소득층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 오는 2006년은 단순히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단편적 정책수립보다는 주택배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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