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5)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5)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2.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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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들이 제출한 답변서가 법무법인 창천에 송달되었다. 소장이 접수된 지 꼭 40일만의 일이었다. 김 변호사가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당초 예상대로 매몰비용청구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가 해산된 경우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조합 해산시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이 없다. 그러니 피고들이 이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국회에서 출구제도를 만들 때 조합의 매몰비용에 관해서도 논의가 되었다. 하지만 조합의 매몰비용은 추진위원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 이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 것은 세수구조상 불가능하다는 점 등 현실적인 이유에서 규정이 마련되지 못했다.
조합이 결성되었으니 조합원들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가 먹혀들었던 것이다. 결국 국회는 추진위원회의 매몰비용을 보전하는 규정만 두고 조합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았다.
매몰비용의 부담 주체에 대해서도 국토해양부와 서울시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서로 책임을 미룬 것인데 결국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시가 추진위원회의 매몰비용을 보전해준 사례는 아직 없었다. 일단 지급하기 시작하면 다른 추진위원회들도 서로 해산한다고 나설까봐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지급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님 답변서 받으셨지요?”
김현수 조합장의 전화였다.
“네. 조합장님. 오늘 오전에 받았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매일 대법원 사이트 확인하는 것이 일입니다. 출근해서 보니까 답변서가 송달된 것으로 나오길래 부랴부랴 전화드렸습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나의 사건 검색창이 있다. 김현수는 매일 검색창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 괜찮으시면 이따 오후에 찾아뵐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2시 30분에 재판이 하나 있습니다. 4시 이후에 될 것 같은데요.”
“네. 그럼 이따 4시까지 찾아뵙겠습니다.”
“변호사님, 김현수 조합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김 변호사가 준비해 둔 서류를 들고 상담실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합장이 일어나 반갑게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조합장님. 얼굴이 저번 보다 좋아지셨네요?”
김 변호사가 김현수와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안내문 보내고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요새는 그나마 살만합니다. 모두 변호사님 덕분이지요. 그래 저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답변서를 한 번 보시지요.”


김현수가 돋보기를 꺼내 쓰고 김 변호사가 건네주는 답변서를 꼼꼼히 훑어본다.


“별말은 없네요. 도정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구만요?”
“네. 당초 소장에 많은 내용을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고들로서도 답변꺼리가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변론준비기일 통지서가 같이 왔습니다. 준비기일에서 재판진행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겁니다. 두 단계로 진행될 겁니다. 먼저 매몰비용청구의 법적 근거에 대한 공방을 한 다음 매몰비용 확정 문제로 넘어갈 겁니다.”


김 변호사의 설명에 김현수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소송이야 변호사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주시겠지요. 아무쪼록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변호사님?”
김현수가 말을 끊은 채 김 변호사를 지긋이 바라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이다.
“뭐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김 변호사가 묻자 김현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작심한 듯 비장하게 입을 연다.


“사실 이 소송이 이길지 어쩐지는 모르는 것이잖아요? 조합원들 중에는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인데,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것이지요. 솔직히 저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소송이 진행된다고 해서 진정은 됐지만, 나중에 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책이라니요?”


“지난번에는 백두건설 박 부장이랑 같이 오는 바람에 말씀을 못 드렸지만, 백두건설에서 조합원들에게 안내문도 보내고 임원들 부동산도 압류했습니다. 이걸 좀 보시지요.”
김현수가 서류봉투에서 내용증명과 부동산가압류결정문을 꺼내 건네준다. 김 변호사가 받아 살펴본다. 김현수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실 다른 업체들은 별로 걱정이 안 됩니다. 대부분은 기성을 받아 갔거든요. 백두에서 2011년 상반기까지는 사업비를 지급했거든요. 이후 일부 미지급금이 있지만 그리 큰 금액은 아닙니다. 문제는 백두건설입니다. 백두건설이 공식적으로 대여한 금액만 45억원입니다. 그 외에 수주하면서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추진위원회에서 시공사 선정할 때 총회 비용하고, 조합설립인가 나고 다시 시공사 선정 총회할 때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거든요.”
안암6구역의 경우 시공사선정총회를 두 번 해야만 했다. 추진위원회 시절인 2006년 5월 주민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했었는데, 추진위원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는 바람에 2009년 11월 다시 총회를 개최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합장이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목이 타는 모양이다.  


“조합 임원들이 가압류를 풀어달라고 사정하고 있는데 시공사 쪽은 들은 척도 안합니다. 보증 선 임원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저야 조합장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이사나 감사들은 다 조합 잘되라고 한 일 아닙니까? 만약 잘못되면 내가 그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김현수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눈시울이 축축해진다. 생각만 해도 답답한 모양이다.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5억이면 조합원 1인당 8백만원씩입니다. 소송에 이기면야 문제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진다면 조합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김현수의 떨리는 목소리에 김 변호사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김현수가 우려하는 상황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중입니다. 조합장님 말씀도 있고 하니 방법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조합장을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온 김 변호사가 창밖을 내다본다. 사람들이 옷깃을 여민 채 종종 걸음을 치고 있다. 벌써 2월 중순인데…,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운 것 같다.
‘시공사대여금을 무마시킬 방법이라?’


2013년 2월 26일 오후 4시.
서울행정법원 B205호 법정에서 변론준비기일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장이 먼저 출석을 점검한다.
“2013구합11110호. 당사자와 소송대리인 나오세요. 원고측 누가 나오셨죠?”
점심 식사 이후 계속되는 재판에 지쳤는지 건조한 목소리다.
“원고 조합의 김현수 조합장과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창천의 김명찬 변호사 출석했습니다.”
“피고측은 누가 나오셨죠?”
“피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승리로의 박찬성 변호사 출석했습니다.”


“오늘은 변론준비기일입니다. 재판진행 방법에 대하여 협의하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소위 매몰비용청구사건입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 같은데요. 매몰비용지급책임이 있는지, 책임이 있다면 피고들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매몰비용이 얼마인지. 맞습니까? 당사자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먼저 원고측?”
“동의합니다.” 
“피고측은요?”
“동의합니다.”


“그럼 쟁점은 정해졌고, 재판진행 방법에 대해서 합의하겠습니다. 먼저 지급책임의 존부에 대해 심리를 진행한 뒤에 매몰비용 인정범위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급책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방이 진행되고 나면 변론준비기일을 다시 열어 정리하고, 2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청구금액과 그 내역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원고측에서 먼저 내역을 제출하면 피고측에서 따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양측 소송대리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재판장이 마무리를 짓는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변론기일을 잡겠습니다. 재판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서면을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면을 수령한 날로부터 2주내에 반박서면을 제출하는 것으로 하시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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