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7)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7)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3.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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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비가 평당 3만5천원이면 비싼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싼 겁니다. 많이 받는 데는 5만원도 받고, 10만원까지 받는데도 있습니다.”


김현수가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다음 부분을 살펴본다.

“연대보증인! 이건 뭐죠?”
“형식적으로 해 두는 겁니다. 위원장님과 추진위원님들이 이렇게 해 주셔야 다른 주민들도 ‘이 사람들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일을 하고 있구나’하고 인정해 줄 것 아닙니까?”


“나야 위원장이니까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이거 도장 찍을까요?”


“정비업체가 시공사 선정될 때까지 자금 다 빌려주고, 외상으로 일하는데, 추진위원님들이 보장을 안 해주면 저희는 누굴 믿고 일을 하겠습니까? 이건 꼭 해주셔야 합니다. 위원장님께서 꼭 좀 설득해 주십시오.”


‘설득이 될까? 나부터 꺼려지는데.’


김현수는 자신이 없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던가. 용역비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연대보증에 대해서는 예상대로 반발이 거셌다.


“보증 잘못 섰다가 거덜 난 사람이 한둘이 아닌디, 연대보증이 뭐데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건 절대로 안 됩니다.”


김현수는 민익선과 여러 차례 협의해야 했고, 결국 ‘연대보증인’이라는 말은 빼고 연서만 하기로 일단락되었다.


김순례 부녀회장은 흔쾌히 총무직을 수락하였다.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반색하는 기색이었다. 살림하는 주부에게 130만원은 큰돈이었다.


경리도 채용되었다. 당초 생활정보지에 경리채용공고를 낼 계획이었는데, 김득수 회장의 손녀가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22살의 김인임 양이 경리로 채용되었다.

 

2004년 12월 9일 오전.


믿음컨설팅 사장실에서 이동호 과장과 윤서희 사장이 동의서 징구에 대해 협의 중이다.


“윤 사장님, 토지등소유자가 610명입니다. 먼저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보내서 분위기를 잡아두고 홍보요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번 주에 1차 안내문을, 다음 주에 2차 안내문을 보내고, 그 다음 주 월요일 홍보요원 교육하고, 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투입하면 될 것 같은데요.”


“몇 명이나 준비할까요?”

“한 30명이면 되지 않겠어요, 분위기 봐서 늘이거나 줄이기로 하고.”
“예, 그러면 30명 세팅해 놓을게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런데 …


1차 안내문이 발송되고 며칠 뒤의 일이었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동호 과장이 회장실로 들어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식곤증에 나른해하던 민익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무슨 일인데 그래?”

“가칭 추진위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뭐야?”


순간 민익선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최근 들어 정비업체들이 난립하면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현장이 커서 용역비가 큰 현장일수록 더욱 심각했다. 


‘도대체 누가 눈독을 들인 거야?’
“추진위원장이 누구야?”


“새마을금고 박두수 이사장이라고 합니다.”

“업체는?”


“업체라니요?”
“뒤에서 서포트하는 업체가 있을 거 아냐?”


“그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 과장,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것부터 알아봐야 할 것 아냐?”
“우선 회장님께 알려야 될 것 같아서요.”


민익선의 호통에 이동호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숙인다.


“당장 가서 알아봐.”


이 과장은 즉시 지하철을 타고 안암6구역 추진위사무실로 갔다.
김인임이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미스 김. 추진위원장님은?”
“토지등소유자들 만난다고 나가셨는데요.”
“당장 전화해서 사무실로 오시라고 좀 해줘.”


30분 뒤. 깨끗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김현수 위원장이 추진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 과장, 많이 기다렸지?”
“아, 예. 위원장님.”


이동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급히 묻는다.


“저쪽 사무실은 어디예요?”
“아직 사무실을 따로 얻지는 않았고, 새마을금고 이사장실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고 그러네.”


“뒤에 어느 업체가 있다고 합니까?”
“글쎄. 나도 그게 궁금해서 수소문을 해 보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


“뒤에 서포트하는 업체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나저나 위원장님, 새마을 금고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평판은 어떻습니까?”


“평판? 나쁘지 않지,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유지로 행세해 온 사람이라 아는 사람도 많지.”

 

다음 날.


김현수가 현주피엠씨 회장실로 들어선다.


“아. 위원장님, 여기로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추진위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기 뭐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예. 회장님. 그나저나 이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쪽에서도 추진위원회설립동의서를 걷기 시작할 겁니다. 먼저 50%를 걷는 쪽이 추진위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업체인지 알아냈나요?”
“예, 미래씨엠씨입니다. 송기호 회장이 운영하는 업체입니다.”


“미래씨엠씨요?”
“예, 우리 업계에서도 잘 나가는 업체입니다. 저희랑 비슷한 시점에 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한 현장에 추진위가 2개라니. 참 별일도 다 있네요. 이래서야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추진위 3개가 경합하는 현장도 있습니다.”


민익선의 말은 사실이었다. 재건축재개발이 황금알을 낳는 유망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정비업체들간에 현장을 선점하려는 과열경쟁양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업체들간에 현장을 사고파는 일도 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열심히 해서 먼저 50%를 달성하는 쪽이 이기는 겁니다.”
“그럼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할 것 아닙니까?”


“예, 이 과장에게 최대한 서두르라고 했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위원장님께서도 바짝 긴장하셔야 합니다.”


어제 민익선은 미래씨엠씨의 송기호와 통화했었다. 송기호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만만치 않았다.


‘제가 직접 진행하는 현장 같으면, 당장 민 회장님께 양보하겠는데, 우리 회사 본부장이 진행하는 현장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를 어쩌죠?’


현주피엠씨 송회장 밑에는 세 명의 본부장이 있었다. 본부장이 스스로 개척해서 관리하는 현장에 대해서는 성과급이 부여된다. 용역비의 상당 부분이 본부장 몫으로 할당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정비업체들이 꽤 있었다.


송기호의 말은 회사 본부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본인이 직접 일을 하면서 본부장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데, 같은 경영자 입장에서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송 회장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동의서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징구하는 쪽이 이기는 것이 현장의 법칙이다. 어떻게 해서든 동의서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2004년 12월 23일 오전 10시.


추진위원회 사무실이 북적거린다. 오늘은 OS(Out Sourcing) 요원 교육이 있는 날이다. 윤서희 사장이 다섯 명의 팀장을 추진위원장에게 소개시키고 있다.


“위원장님, 여섯 명이 한 팀이 됩니다. 모두 다섯 팀이고 각 팀마다 팀장이 있습니다. 여기 이분들이 팀장입니다. 자 인사하세요. 김현수 위원장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들은 모두 삼사십 대 여성들이었다. 차려 입은 폼새도 그렇지만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김현수는 문득 문득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김현수가 헛기침을 하면서 표정을 바로 잡는다.


“안녕하세요. 김현수 올시다. 잘 부탁합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즉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김현수가 간단히 인사말을 하고 윤서희 사장을 바라본다. 윤서희 사장이 박수를 치자 팀장들도 따라서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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