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 교수 "아파트단지 ‘범죄예방환경설계’ 제도적 도입 서둘러야"
이경훈 교수 "아파트단지 ‘범죄예방환경설계’ 제도적 도입 서둘러야"
  • 김병조 기자
  • 승인 2010.04.20 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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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18:35 입력
  
이경훈   
한국셉테드학회 회장/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급속한 도시화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회 병리 현상인 범죄 발생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범죄의 심각성은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며 사회적 손실비용의 증가로 연결되고 있다.
 
범죄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경찰 등 정부 기관에 있지만, 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제공해 온 도시·건축 전문가들의 반성도 새로운 대안을 재촉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셉테드(CPTED :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다. 우리 말로 ‘범죄 예방 환경 설계’로 표현되며 도시·건축적 디자인 요소를 도입해 범죄 발생 가능성을 저감시키려는 새로운 학문 분야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셉테드 도입이 활성화되면서 도시계획 및 건축 심의 과정에서 셉테드 도입 여부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8일 한국셉테드학회가 정식 출범해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를 만나 셉테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셉테드가 무엇인가=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요소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건축 및 도시 디자인 설계를 통해 범죄 발생 환경을 최대한 저감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주민의식을 높이고 이웃 간 유대감을 형성해 범죄를 낮추자는 것이 셉테드의 기본 취지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분야에도 ‘생활안전 분야’라는 범주로 셉테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나=셉테드에서는 사회통합성을 기반으로 열린 공간을 추구한다. 위험하다고 해서 출입문이나 창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안전할 지는 모르지만 사회통합적이지는 않다. 주거지를 요새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유대감을 높이자는 것이 셉테드의 핵심 내용이다. 적용 사례를 들면 설계적 기법으로 건축물 내에 어두운 공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어둡거나 외질 수 있는 공간을 외부에 개방시켜 여러 사람들이 감시자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그 주변을 다니는 행인 어느 누구라도 자연스레 감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밤늦게 퇴근하는 여성 운전자들에게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공포의 공간이 되고 있다. 셉테드 설계 기법을 통해서 지하주차장을 안전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최근 아파트에 많이 적용되고 있는 지하주차장 부근에 선큰 광장을 도입하거나 일부 벽체를 털어내 외기에 접하게 하는 것도 소개할 만한 셉테드 사례다.
 
▲셉테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외국 유학 시절 인간행태에 대한 프로그램을 공부했다. 이 때 논문 주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셉테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점점 복잡해져가는 사회에서 이슈가 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안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고 그 때부터 셉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셉테드와 연관된 프로그램을 연구 중이다. 가장 적합한 셉테드 방안을 도출해 내는 프로그램이다. 토지 용도, 건축물 용도, 도로폭, 가로등 위치, CCTV의 위치 등 많은 데이터를 집어 넣고 범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이 한정돼 있을 때 CCTV를 어떤 장소에 설치해야 가장 효율적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찰이 CCTV를 설치할 때의 기준은 무엇일까? 민원이 자주 들어오는 곳, 또는 경찰관의 직감에 의해 CCTV 설치 장소가 결정된다. 이처럼 CCTV를 설치하게 되면 일부 지역에 과도하게 설치될 수도 있고, 범죄율이 낮은 엉뚱한 곳에 설치될 수도 있다. 연구중인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최적의 위치에 최적의 셉테드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학회 활동 범위는=활동 분야는 매우 넓다. 도시, 건축, 주거, 지리, 경찰, 경비, 행정, 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며 발전해 나간다. 학회에서는 향후 셉테드 전문가 양성 및 산업 육성과 함께 관련 정책 개발 등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좀 더 협회의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분명히 사회적 수요가 있는 분야다. 학회를 법인으로 등록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셉테드의 제도화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건축사협회와 연계해 교육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중이다.
 
▲셉테드가 건축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나=셉테드의 취지 자체는 큰 비용 발생 없이 범죄 예방 환경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셉테드 도입 자체만으로는 공사비가 상승할 가능성은 없다. 기존 건축계획 체계 내에서 셉테드 기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넓은 시야 확보를 위해 건물 간 인동거리를 더 넓히라는 것 등 건축물 배치를 옮기라는 요구 등을 하지 않는다. 셉테드에서의 요구 내용은 예를 들면 이렇다. 아파트 외부에 돌출돼 있는 배관은 범죄자에게 좋은 이동통로가 된다. 이 배관을 어떻게 할까? 아파트 시공이 이뤄지기 전이라면 아파트 배관을 내부로 매립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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