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김태익 이사>공공관리자 제도, 방향 잘못 잡았다
<열린광장 김태익 이사>공공관리자 제도, 방향 잘못 잡았다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9.10.2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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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10:20 입력
  
김태익
㈜정비기획원 이사
 

공공관리자 제도는 재개발·재건축사업 비리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도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리의 근본 원인을 조합과 정비업체·시공자·철거회사 간 커넥션에 있다고 보고 그 커넥션을 끊고자 하는 발상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는 ‘정비업체 선정을 관청에서 하고, 30평형 기준으로 분담금 1억원을 낮추며, 1~2년의 사업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에 집중했다.
 

이 중 핵심 내용은 정비사업자와 시공자 및 철거업체와 추진위의 비리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선정을 관청에서 주도하고, 시공사 선정을 감독하는 것이 과연 현실의 비리 척결에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살펴보면 결국 자금 조달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현행 업계에서 통용되는 자금조달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소유주가 직접 갹출하여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 △사업구역의 물건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차입하는 방법 △정비사업자를 선정해 정비사업자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방법이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인 소유주 갹출은 가구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사업비용을 갹출해야 하는 한계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두 번째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추진위원회는 고사하고 법인격을 갖는 조합도 금융기관에서 사업자금을 대출받는다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정비사업비용 일부를 대여할 수 있도록 알선하고 있으나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해 이러한 자금 대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역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통해 사업비용을 대여 받는 방법 뿐이다.
서울시는 대안으로 공공이 담보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자금을 통해 각종 비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취지의 제도를 제안했지만, 이 또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만약 조합원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될 경우, 이에 비례해 늘어나는 사업비용과 금융비용들을 과연 언제까지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결국 공공관리자제도 하에서는 사업기간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만약 정해진 사업기간을 넘기게 된다면, 비용 대출에 따른 공공의 담보부담이 커질 것이고,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정해진 사업기간 내에 추진하려는 무리수 또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업진행은 결국 관리처분단계에서 의견충돌로 이어질 것이며 사업기간 연장과 조합원의 부담금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다 보니 현재 추진 중인 공공관리제도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지엽적 문제인 비리 방지에만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도정법〉 제1조(목적)에서는 “이 법은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개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새롭게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공공관리자 제도는 〈도정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공공관리자 제도가 이 법의 목적 범위 이내에 부합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주객이 전도돼 목적과 결과가 서로 뒤바뀌어 있다.
 
현행 재개발·재건축 시장은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목적보다는 주택가격 상승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주거환경개선 목적에 의해 주택가격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주택가격 상승을 위해 주거환경개선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부담금 절감과 사업기간 단축은 결국 소유주인 조합원의 혜택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올해 용산사태를 촉발케 했던 세입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는 없다. 결국 세입자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임은 또 다시 조합에게 떠넘겨져 공공관리 도입 목적을 되묻게 만들 것이 뻔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서울시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공공관리자 제도는 그 취지를 비리근절에 맞출 것이 아니라, 〈도정법〉의 제1조(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총론적인 고민에 집중시켜야 한다.
 
따라서 정비사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 하고, 합리적인 정비사업을 통한 주민들의 재정착률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더불어 정비사업의 약자인 세입자문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제2의 용산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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