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배순석 국토연구위원>주택투기와 정책 ‘죄인의 딜레마’
<시론 배순석 국토연구위원>주택투기와 정책 ‘죄인의 딜레마’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10.0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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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15:39 입력
  
배순석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2년 이후 주택가격 상승이 촉발된 근본적 요인은 외환위기 직후 3년간 주택건설 승인호수가 연간 30만~40만호 수준으로 크게 감소하였고, 그 이후 경기회복이 이루어지면서 주택수요와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였지만 정부가 이에 적절히 대응치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주택가격이 본격적으로 폭등하게된 것은 주택가격 상승 국면에서 끼어든 투기세력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투기도 시장참여자의 당연한 행태 중의 하나이며, 그것을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 및 수도권 등에서 만성적인 주택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시장의 혼란을 틈타 한몫 잡으려는 투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투기에 밝은 사람들은 재건축이 된다하면 재건축대상 주택 사재기, 강북에 뉴타운을 개발한다고 하면 강북 노후주택 사재기를 위해 발 벗고 나선다. 많은 국민들이 투기에 발 벗고 나설수록 더욱 더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며, ‘죄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미개한 국가나 저급한 사회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등 혼란이 벌어지면 무단 약탈이 벌어지는 등 사회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매스컴을 통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급한 사회일수록 어떠한 계기로 특정 물품 부족의 조짐이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사재기에 나선다. 나만 잔뜩 사서 충분히 쓰겠다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몫 잡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성적 주택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대도시권에서의 주택투기는 사재기의 일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투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은 재산이 많거나, 수입이 많은 계층, 그리고 엘리트 계층이다. 자기관리가 가장 필요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조차도 주택투기 행위를 한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정작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힘 써야할 계층들이 투기에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서글프다. 게다가 ‘투기꾼’들이 자기의 행위에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갖기 보다는 자랑을 하고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은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투기꾼’도 문제이지만 주택가격이 불안정할 때의 정부의 대응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1960년대부터 정부는 투기억제정책과 주택건설경기 부양책을 번갈아 가며 채택했다. 이러한 대응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택경기가 침체하여 건설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면 경기부양을 위해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펴왔다. 한편 주택가격 상승 시기에는 다른 국가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온갖 규제를 도입했다. 특히 2003년 이후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중복적인 규제 도입과 보유세 등 주택조세의 과도한 부과는 주택거래 자체를 어렵게 했을 뿐 아니라 중산층들이 누릴 수 있는 주거서비스의 양적, 질적 수준을 낮추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작금의 경제침체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 주택경기가 냉각되어 가고 있는 현 시점에 있어 2002년 이후 도입된 규제 중 과도한 부분은 반드시 완화되어야 한다. 보유세 수준도 중산층의 부담능력과 주거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규제완화는 단기적으로 일부지역에서 주택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책당국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나 단기적인 효과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다만, 전매제한의 과도한 완화와 1가구 다주택보유를 부추기는 부양책은 피해야 한다. 물론 1가구 다주택보유는 전세주택의 공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택공급이 부족한 대도시지역에서 그러한 방식으로는 주택시장의 안정을 기하기는 어렵다. 전세 수요에 대응한 임대주택공급은 제대로 된 임대주택산업 육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공공부문이라도 나서는 것이 차라리 나은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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