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1)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매몰비용 청구 소송 (1)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3.12.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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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오후 5시.  


김명찬 변호사는 청량리역 인근에 있는 성바오로병원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았다. 김현수 조합장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오전의 일이었다. 박연실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변호사님, 이를 어째요. 그이가 마포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데요.”


김현수 조합장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3일 전의 일이었다. 김현수 조합장의 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연실이 사무실로 찾아와 이틀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바로 실종신고를 하였는데, 오늘 익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장례식장 지하에 빈소가 차려져 있었다. 김 조합장의 아들과 사위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빈소에는 넉넉하니 인상 좋아 보이는 김 조합장의 사진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본 조합장의 얼굴은 깡마르고 깊게 주름져 있었다.


‘원래 저렇게 후덕한 인상이었구나!’


김 변호사가 빈소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절을 하고 조합장의 명복을 빈 다음 상주들과 인사를 하고 식장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장례식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자살이었으니 주변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였으리라. 상복을 입은 박연실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변호사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그나저나 이 양반 불쌍해서 어떡해요. 그렇게 고생고생 하다가, 오죽 했으면 한강물에 뛰어 들었을까 … 다 제 잘못입니다. 그 놈의 조합장인가 뭔가 한다고 할 때 뜯어 말렸어야 하는데.”


그러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구박이나 하지 말 걸, 꼴좋다고 몰아 부친 내 잘못입니다. 아이고! 내가 죽일 년이지.”


김연실의 곡소리가 차츰 커져간다. 보다 못한 아들이 김연실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변호사가 상위에 쌓여있는 종이컵을 하나 꺼내 소주를 따른다.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도 있었을텐데……’


최근 김연수 조합장은 평소보다 자주 전화를 걸어 왔었다. ‘소송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2013년 1월에 제기한 매몰비용청구소송이 막바지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소송 막바지에 초조해진 의뢰인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려니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김현수 조합장은 업무상 횡령과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었다. 누군가 ‘조합장이 시공사로부터 20억을 받기로 했다. 정비업체와 설계업체에서 리베이트로 7천만 원을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급기야 일부 조합원들이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검찰이 두 번이나 조합장의 집과 조합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김현수 조합장의 말을 들어보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리베이트를 받은 적도 오해살 일을 한 적도 없고 떳떳하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김 조합장의 눈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 변호사도 ‘걱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조사를 받으라. 별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감을 가져라’고만 했었다.


김 변호사가 다시 잔을 채운다. 소주 한 병이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2년 전부터 소주 석 잔을 주량으로 지켜오고 있었다. 건강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자신하며 말술도 마다 않았지만 술에는 장사 없다는 옛날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술도 잘 깨지 않고 피로감이 엄습했고 지방간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차마 술을 끊기는 뭐하고 해서 소주 석잔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웬지 오늘은 더 마셔야만 할 것 같았다. 장례식장은 여전히 한산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한 시간가량 지났지만 문상을 오는 사람은 없었다. 김 변호사는 소주 한 병을 더 비틀었다.   


‘그래, 쓸쓸하게 가시는 길, 나라도 조금 더 지켜 드리자…….’


김현수 조합장이 처음 김명찬 변호사를 찾아 온 것은 근 1년 전의 일이었다.

 

소 장


원고 안암6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서울 성북구 안암동 345-3번지
       대표자 조합장 김현수


피고 1. 대한민국
        2. 서울특별시장
        3. 성북구청장

 

 

청 구 취 지 


1. 피고들은 각자 원고에게 금 4,5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2년 12월 1일부터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청 구 원 인


1. 원고는 도시정비법에 의거하여 2009년 5월 1일 성북구청장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달 20일 법인설립등기를 마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입니다.


2. 대한민국은 2012년 2월 1일 도시정비법을 개정하여 이른바 출구정책을 입안하였고, 서울특별시장은 2012년 7월 30일 서울시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하여 출구정책에 필요한 세부규정을 신설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조례가 시행되자 원고 조합의 조합원들이 조합해산신청서를 징구하여 2012년 11월 1일 성북구청장에게 조합해산신청을 하였고, 성북구청장은 2012년 11월 30일 조합해산을 인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 조합은 해산되고 현재 청산단계에 있습니다.


3. 원고 조합은 해산인가를 받은 시점까지 총 45억원의 사업비를 시공사로부터 대여 받아 사용하였습니다. 원고가 사용한 사업비는 공익사업인 재개발정비사업에 소요된 비용으로 당연히 피고들이 부담하여야 합니다. 이에 이 사건 매몰비용청구소송을 제기하오니 청구취지와 같은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증 거


1. 갑제1호적 조합설립인가서


1. 갑제2호증 조합해산인가서


2013. 1. 2. 
위 원고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창천


담당변호사 김 명 찬

 

2013년 1월 2일 오전 10시.


대표변호사의 폐회사로 시무식이 끝나자마자 김명찬 변호사가 사무장에게 소장접수를 지시하고 김현수 조합장에게 전화를 건다. 수화음이 울리고 김 조합장이 전화를 받는다.


“네. 변호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조합장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럴 형편이 아니네요. 조합원들이 매일 찾아 와서 소리소리 지르고 정말 죽겠습니다.” 


“소장 접수시키라고 했습니다. 작성된 소장을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소식지에 첨부해서 조합원들에게 보내주세요. 소식지를 받고 나면 조금은 진정이 될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변호사님만 믿습니다.” 


김 변호사는 연말연시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현수 조합장이 소장 접수를 서두르는 바람에 여행을 취소하고 연휴기간 내내 소송전략을 수립하고 소장을 작성해야만 했다. 김 조합장의 딱한 사정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현수 조합장은 요새 정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두려웠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조합원과 조합임원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정말 못할 노릇이었다.


‘시공사에서 빌린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말 우리 조합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까?’


‘조합장. 이거 어떻게 좀 해봐요. 나보고 왜 조합이사를 하라고 해서 이게 뭡니까? 멀쩡한 집 날리게 생겼다고 마누라가 난리도 아닙니다. 조합장이 시작한 일이니 조합장이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아니요.’


 ☞ 문의 : 법무법인 영진 / 02-552-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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