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2)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2)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3.12.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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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개발재건축구역이든 반대파는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안암6구역에도 반대파가 있었다. 그래도 조합원들의 호응이 좋아 조합설립동의서를 걷기 시작한 지 채 2달도 안 되어 76%를 채울 수 있었다. 일부 반대하는 사람들과 몇 차례 소송이 있었지만 모두 극복하고 분양신청접수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동산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반대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도시정비법이 개정되고 출구정책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전까지는 재개발사업을 하면 추가부담금 때문에 다 쫓겨난다면서 조합원들을 선동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출구정책 시행 이후에는 아예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성북구청에서 ‘지금 걷고 있는 조합해산동의서는 효력이 없다. 조만간 서울시에서 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하고 조합해산동의서 양식이 만들어지면 그때 그 양식으로 걷어야 한다’고 하면서 조금 수그러드는가 싶었다.

그런데 2012년 7월 30일 서울시 도시정비조례가 개정되고 조합해산동의서 양식이 만들어 지자마자 반대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양식의 조합해산동의서를 걷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조합해산동의서를 걷는 데는 인감증명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도시정비법 제17조 제1항이 개정되어 동의서에 자필서명하고 지장을 날인한 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또는 여권 사본을 첨부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체 토지등소유자 610명 중 과반수인 306명 이상 해산동의서를 걷으면 되는 일이었다.


보금자리주택이네 뭐네 해서 은평뉴타운, 왕십리뉴타운, 전농7구역, 답십리16구역 등 신규분양 현장에서 미분양이 속출했고 이들 조합에서 미분양분을 털어 내기 위해 할인분양이 이루어지면서 조합원분양가나 일반분양가나 별 차이가 없어져 버렸다. 아니 오히려 일반분양가가 더 저렴한 상황까지 일어났다.


일반분양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조합원들이 추가부담금을 더 내야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조합원들은 동요했다. 순식간에 해산동의서가 걷히더니 2012년 11월 1일자로 조합해산신청서가 성북구청에 접수된 것이다. 사업비를 대출해 준 시공사도 난리였다. 무려 45억원이었다. 조합원들이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하기 시작하자 시공사도 어떻게든 조합이 해산되는 것을 막아보고자 궁여지책으로 조합원들에게 안내문을 보냈다.

 

안암6구역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일부 재개발에 반대하시는 조합원님들께서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그 동안 안암6구역 조합에 45억원의 사업비를 대여했습니다. 만일 조합이 해산될 경우 저희 시공사로서는 대여금을 조합원님들께 청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아 어려움이 있더라도 안암6구역 재개발은 반드시 진행되어야만 하는 사업입니다. 해산동의서 제출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조합이 해산되면 조합원들이 시공사에게 돈을 물어 줘야하니 조합은 살려 두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반대파 쪽에서 이를 반박하는 안내문을 보내자 다시 해산동의서가 제출되기 시작했다.

 

토지등소유자 여러분.
시공사의 협박에 속지 마십시오. 시공사가 돈을 빌려준 것은 조합이지 조합원이 아닙니다. 전문변호사에게 알아보니 조합원들이 관리처분총회를 통해 분담금을 부담하기로 결의하지 않은 이상 시공사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성북구청은 조합해산신청서가 접수되자 동의율만 점검하고 바로 조합해산을 인가해버렸다. 안암6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시공사 백두건설의 박 부장도 요새 좌불안석이었다. 직속상관인 본부장은 ‘도대체 현장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느냐’면서 박 부장을 아예 무능한 사람 취급했고, 회사 법무팀은 공사도급계약서에 연대보증한 조합임원들의 부동산을 가압류해버렸다.


법원의 가압류결정이 조합 임원들에게 송달되자, 조합임원들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부동산을 가압류했느냐?’며 박 부장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박 부장은 백두건설이 처음 안암6구역을 수주하려고 할 때부터 안암6구역 현장에 관여하고 있었다. 2005년에 수주했으니 벌써 7년째다. 그 동안 조합 임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사업을 끌어오다 보니 이제는 누구네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법무팀에서 조합 임원들의 집을 떡하니 가압류해버린 것이다. 박 부장으로서는 조합 임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회사에서 하는 일인데. 


“회사에서도 회계처리상 어쩔 수 없어서 형식적으로 한 것입니다. 회사 운영 매뉴얼상 그런 것뿐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이사님들 재산에 강제처분이야 하겠습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면 다 해결될 겁니다.” 동네 대폿집에서 임원들을 달래며 뱉은 말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박 부장이 말을 끝내고 소주잔을 들이 부으며 속으로 읊조린 말이었다.

 

2013년 1월 4일.
김현수 조합장은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우체국을 찾아가 전자우편으로 조합원들에게 소식지를 발송했다.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계사년 한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하는데, 이런 인사를 드리는 것조차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1월 2일 서울행정법원에 매몰비용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첨부한 소장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과 서울시장, 성북구청장을 피고로 하여 그 동안 우리 조합이 사용한 45억원과 이자를 청구하였습니다. 시공사도 일단 행정소송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조합원님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조합은 이미 해산되어서 더 이상 재개발사업을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조합은 어떻게든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여 조합원님들께서 불의의 손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조합원님들께서도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저희 조합을 믿고 지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금 상황에서 조합이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우리 조합원님들께서 더 큰 손해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조합을 믿고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몸도 춥지만 마음이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첨부 : 서울행정법원 2013구합11110호 매몰비용청구소송 소장

 

며칠 뒤 안내문이 조합원들에게 도달하였고 조합원들도 조금은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조합으로 빗발치던 문의 전화도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는 조합원들도 많이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대신 조합원들의 관심이 소송으로 쏠리면서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언제쯤 끝이 나는 것이냐? 답변서는 받았느냐?’는 등의 질문이 많아졌고 그 때마다 설명하는 것이 일이었다.


“아이고, 성질도 급하시네요. 우물가서 숭늉 찾것어요. 이제사 소장 접수했는데 벌써 답변서가 들어 왔것어요? 법원에서 엊그저께 피고들한테 소장 보내서 인자 받았다고 인터넷에 나오는구만요. 답변서 내는데 한 달이나 시간을 준다고 허니께 2월 말이나 되아야 답변서가 들어올 것이구만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소송에 대해 묻고 있었다. ‘잘 되어 가지요? 잘 되것지요? 잘 되야 헐 것인디’ 등등.


‘그나마, 소송이라도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라니믄 어쩔 뻔 혔어….’


김 조합장은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18대 대선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나라에서 하라고 해서 추진한 사업인데, 뭔가 새로운 비전이 제시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야 후보들의 정책 자료집에는 재건축·재개발에 관한 정책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주제인데, 어떻게 대책이 하나도 없을까?’


재건축·재개발현장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출구정책으로 많은 현장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대권후보들의 주택정책에 따라 재건축·재개발현장이 살아나느냐 죽느냐 결정될 판인데, 그들은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 어쩌라는 건지, 나라님들도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인가?’


김 조합장은 자료집을 팽개쳐 버리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단골 대폿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처럼 곱창 1인분을 시켜 놓고 깍두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김 조합장이 다시 한잔 가득 소주를 따르더니 무심한 얼굴로 술잔을 들여다본다. 그가 조합장을 하게 된 것은 모두 그 우라질 민 회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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