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3)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3)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1.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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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어느 날 종암동 홀리데이인 호텔 1층 커피숍. 김현수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이동호 과장이 다가와 테이블로 안내한다.


“안녕하세요. 현주피엠씨의 민익선입니다. 반갑습니다.” 풍채 좋은 사내가 일어나 인사를 하며 오른 손을 내민다.
“아! 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김현수가 민익선이 내미는 손을 맞잡으며 인사한다.


“김 선생님 말씀은 우리 이 과장을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시고 마을에서 덕망이 높으시다고요.”
“덕망은 무슨….”


김현수는 쑥스럽다는 듯이 오른손을 들어 뒷머리를 쓸어 내렸다. 그날 민익선은 김현수에게 안암6구역 추진위원장이 되어달라고 제안하였다. 현주피엠씨의 이동호 과장이 찾아온 것은 2주쯤 전의 일이었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마루를 데우고 있는 나른한 오후, 김현수가 마루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요?”
“네. 김현수 선생님 댁이지요.”
“그렇소만?”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김현수는 선생님이라는 소리에 제자인가 싶어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주고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검은 양복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금테 안경을 쓴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선물상자를 들고 들어선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글쎄. 누구신지?”
“안녕하세요. 저는 현주피엠씨의 이동호 과장입니다.”
하면서 명함을 건넨다. 김현수는 명함을 들어 살펴보았다. 명함에는 ‘서울시 등록제75호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현주피엠씨 과장 이동호’라고 찍혀 있다. 
“아, 예. 그런데 무슨 일로?”
“괜찮으시면, 잠깐 말씀 좀 드릴까 합니다만.”


마침 마누라는 나가고 없는 참이라 들어오라고 했다. 이동호가 구두를 벗고 선물상자를 들이민다.
“그냥 찾아뵙기 뭐해서. 요 앞 슈퍼에서 하나 샀습니다. 받으시지요.”
“내가 지금 혼자 있어서, 뭐 대접할 것도 없는데…. 이거라도 마십시다.”
김현수가 음료수를 하나 꺼내 뚜껑을 깐 뒤 검은 양복 앞에 밀어 놓는다.


“네. 감사합니다.”
이동호가 목이 말랐는지 음료수 병을 들어 크게 한 모금 마시더니 큰 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김현수가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요?” 


이 과장은 그 날 이후로 그 주에만 두 번을 더 찾아 왔다. 그리고 민 회장을 만난 것이다. 이틀 후 민 회장으로부터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식사가 끝나고 민 회장은 현금 300만원을 꺼내 놓았다.
“위원장님. 추진위원회를 이끌어갈 사람들로 적어도 네 명은 더 모아야 합니다. 마을에서 인심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사람을 모으려면 아무래도 활동비가 필요하실 겁니다. 이걸로 사람들 만나셔서 식사도 하시고 경비로 쓰십시요. 우리 이 과장이 옆에서 도와 드릴 겁니다.”


김현수의 집은 서울시 도시정비기본계획상 재개발예정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김현수가 살고 있는 집은 대지 53평에 건평 60평의 2층집이다. 김현수가 불혹이 되던 해인 1981년 대출 50%를 안고 마련한 것이었다. 그가 35년간 학교 선생을 하면서 받은 봉급중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고스란히 이 집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집과 아들, 딸 둘을 둔 김현수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민호와 김민희는 한 달 전부터 분주하게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오빠! 신혼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아.”
“야! 너는 뜬금없이 전화해서 무슨 소리냐?”
“오빠! 이번 추석날이 우리 효주 첫돌인 것 알지?”
“아! 그러네, 작년 이맘 때였지? 어디 보자 이번 추석날이 딱 돌이구나!”
“그래서 말인데, 이번 추석에 우리 동남아로 가족 여행가면 어떨까?”
“가족 여행?”
“그래, 오빠랑 새언니랑, 우리 식구하고, 아빠, 엄마 모시고.”


클럽메드 빈탄 5박 6일 일정 내내 김현수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정년퇴직한지 2년째. 35년간의 피로와 긴장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도록 마음껏 쉬고 싶었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민희가 속도위반으로 결혼하더니, 올 4월에는 민호도 결혼을 했다.


퇴직하기 전에 그렇게 짝을 지워주려고 해도, 결혼은 무슨 결혼이냐며 손사래를 치던 녀석들이 글쎄 퇴직하자마자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결혼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들딸 시집장가 보내느라 퇴직금과 저축은 벌써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딸내미 혼수에 아들 놈 전세보증금에…. 그나마 2층 월세가 나가면서 월세보증금이 들어와 숨통이 조금 트이긴 했지만. 매달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이번 여행도 지들이 다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애비로서 그냥 있을 수 없어서 100만원을 보탠 참이다. 


‘이거, 아파트 경비 자리라도 알아 봐야 되는 거 아냐?’
그러던 참에 민회장이 추진위원장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김현수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민 회장을 만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부터였다. 민회장의 현란한 말솜씨에 봉투까지 받아 왔지만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괜히 일 벌였다가 골치 아픈 꼴 당하는 거 아냐?’
김현수가 결정을 하는 데에는 이 과장의 역할이 컸다.


“위원장님, 다른 구역들은 벌써부터 추진위원회 설립 동의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나 이일을 하도록 놔둬서는 안됩니다. 위원장님처럼 학식도 있으시고 인품도 있으신 분들이 해야 깨끗하게 일이 되지…. 양아치 같은 놈들이 했다가는 토지등소유자들 재산만 거덜납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위원장님이 이일을 맡아 주셔야 합니다.”


어느새 호칭도 ‘위원장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할 임원들을 확정짓고 추진위원회를 설립해야 하는데,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토지등소유자 50% 이상 추진위원회설립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우선은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부터 모아야 합니다.”


이 과장은 이제 거의 제집 드나들다시피 찾아오고 있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법령집을 가져와서 해당조문을 찾아 보여 주고 재개발사업 진행절차에 대한 설명에도 열을 올린다.

 

제13조 (조합의 설립 및 추진위원회의 구성)
① 시장·군수 또는 주택공사등이 아닌 자가 정비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토지등소유자로 구성된 조합을 설립하여야 한다. 다만, 제8조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토지등소유자가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단독으로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위원장을 포함한 5인 이상의 위원으로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라 한다)를 구성하여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방법 및 절차에 따라 시장·군수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여기 보면 위원장을 포함한 5인 이상의 위원으로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라고 되어 있잖아요. 위원장님 말고 최소 네 명은 더 모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5명으로 (가칭)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토지등소유자 50% 이상 동의를 얻어서 추진위원회를 설립한다, 그거 아니여? 그리고 난 뒤에 토지등소유자 3분의 2 이상 정비구역지정동의서를 걷어 가지고 구역지정을 받고, 그럼 담에 조합설립동의서를 걷기 시작해서 70% 이상 되면 조합창립총회를 하고, 80% 이상 걷어 지면 조합설립인가신청을 한다, 이거 아냐. 별로 어려운 것 같지는 않은데.”

 

제16조 (조합의 설립인가 등)
① 주택재개발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때에는 토지등소유자의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관 및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서류를 첨부하여 시장·군수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인가받은 사항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도 또한 같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조합원의 동의없이 시장·군수에게 신고하고 변경할 수 있다.

 

추진위원 4명을 더 모으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1981년에 집을 사서 이 마을에 들어온 지 벌써 24년에 중학교 윤리 선생님이었던 김현수는 이미 마을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동네마다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난리인데, 우리만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지요. 다 우리 재산 가지고 하는 일인데, 아무한테나 맡겨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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