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4)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4)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2.0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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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노인회 김득수 회장을 찾아갔다. 김현수는 은퇴 이후 가끔씩 노인회에 나가고 있었다. 막내 뻘이었지만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대접을 받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앞장 서 주셔야 동네 사람들이 믿고 따를 것입니다.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오신 회장님께서 동네를 위해 힘 한번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무신 자격이 있다고, 한낱 늙어빠진 영감탱이일 뿐인데.”
김득수는 올해 72살이었다. 매일 아침 산에 올라 운동을 해 온지 벌써 20년. 건강도 좋고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옆 동네를 보세요.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재개발한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우리 마을은 그러면 안 되지요. 어르신이 앞장서서 질서를 잡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현수가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산 막걸리를 한 잔 가득 따라 김득수 회장에게 권한다. 김득수가 막걸리 잔을 내려놓자 김현수가 얼른 오징어 다리 하나를 건넨다.


“그런데, 우리 김 선상님이 언제부터 그런 일에 관심이 있었대요?”
“아이고, 회장님도, 이게 어디 남 일인가요. 우리 재산을 걸고 하는 일인데. 매스컴에 재건축, 재개발한답시고 조합장들이 비리를 저질러서 잡혀 들어가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너도 나도 모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야 일이 제대로 되지요.”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에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추진위원회를 만들려면 5명 이상의 발기인이 필요합니다. 회장님께서 발기인이 되어 주시면 됩니다.”
“발기인?”
“네, 토지등소유자 10프로가 추진위원이 되어야 하는데, 처음에 5명만 발기하면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답니다.”


“이런 일 할라믄 사무실도 있어야 되고, 돈도 많이 들어갈 판인디, 그런 것은 어떻게 할라고 그러는가?”
“정비업체라고 재개발 행정용역업무를 담당하는 업체가 있는데, 처음에는 정비업체에서 운영비를 빌려준다고 합니다. 제가 한번 업체를 섭외해 보려고 합니다.”


노인회장이 오케이를 하자 자신감을 얻은 김현수는 부녀회장 김순례, 미래부동산 사장 박현길, 5통 통장 오오순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일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다 보니 점점 이력이 붙었다.
“김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도와드려야지요.”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재산으로 하는 일이니 같이 해 보자는 것입니다.”

2004년 10월 31일 저녁 7시 개성집.
테이블 두 개를 붙여 놓은 자리에 일곱 명이 앉아 있다. 불판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등심이 지글거리고 있다. 여종업원이 고기를 자르며 서빙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 사회를 맡은 현주피엠씨의 이동호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오늘 참석하신 분들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김현수 선생님, 김득수 노인회장님, 김순례 부녀회장님, 박현길 미래부동산 사장님, 오오순 5통 통장님, 그리고 저희 현주피엠씨의 민익선 회장님이 참석하셨습니다. 먼저, 현주피엠씨 민익선 회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어이, 이 과장 너무 딱딱한 것 아냐. 어르신들 계시는데 편안하게 해드려야지. 안녕하세요. 현주피엠씨의 민익선입니다. 아까 드린 명함에 쓰여 있는 것처럼, 저희 현주피엠씨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입니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라는 것은 재개발사업을 할 때 행정업무를 대행하는 업체입니다. 저희 현주피엠씨는 건설교통부 인가를 받아 서울시에 등록된 업체로, 여러분들 잘 아시는 길음뉴타운에서도 일을 하고 있고, 신길뉴타운 등 그 밖에 많은 현장에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 김현수 선생님께서 만드신 자리입니다. 자고로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안암6구역 재개발사업이 비로소 그 장대한 서막을 여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김현수 선생님의 인사말씀을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양복을 꺼내 입고, 점잖게 넥타이를 맨 김현수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이동호 과장이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친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서 참석해 주신 김득수 회장님, 김순례 부녀회장님, 오오순 통장님, 박현길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민 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안암6구역 재개발사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안암동 네 개 재개발예정구역이 지금 들썩들썩합니다. 서로 먼저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겠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6구역도 결코 뒤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미력하나마, 혼신의 힘을 다해 주민들의 재산을 지켜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득수 회장이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친다. 김현수는 어제 이 과장이 써 준 인사말을 수도 없이 연습했다. 평생을 학생들 앞에서 수업해왔지만, 동네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쨌든 연설은 훌륭했다.


“이 과장 뭐하나, 어르신들 잔 채워드려야지, 자 한잔 받으시지요.”
민익선이 앞자리에 앉아 있는 김득수 회장과 김순례 부녀회장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린다.
“그럼, 제가 건배제의를 하겠습니다. 안암6 재개발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건배하겠습니다. 다들 잔을 들어주십시오. 제가 ‘안암6 재개발사업의 성공을 위하여’하면 다같이 ‘위하여’ 하면서 잔을 부딪쳐 주시기 바랍니다. 안암6 재개발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서로 잔을 부딪치고 잔을 비운다. 서로 빈 잔을 채워주고 안주를 들고 술자리가 분주해진다.
“언니야! 여기 등심 좀 더 가져오고, 소주도 2병 더 가져와라.”
민 회장이 서빙을 보고 있는 종업원에게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팁을 준다. 김순례 부녀회장이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다. 고기와 술이 더 들어오고 자리는 점점 흥이 오른다. 


“이 동네에서는 이 집이 가장 좋다고 해서 여기로 정했는데, 맛있게 잘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민 회장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말문을 열더니 드디어 본론을 꺼내 놓는다.
“이번 주에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를 만들고 다음 주부터 동의서를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추진위원장을 결정해야 하는데,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앞장서서 일을 해 오신 김현수 선생님이 적임자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오오순 통장이 박수를 치면서 찬성하자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치면서 좋다고 한다. 그러자 민익선이 얼른 거들고 나선다.
“위원장님 뭐 하세요. 일어나셔서 한 말씀하셔야죠.”


민익선이 김현수의 팔을 잡고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김현수가 마지못해 일어나 한마디 한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추진위원장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이 도와주신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김현수는 추진위원장이 되었다.


답 변 서 
사건   2013 구합 11110
원고   안암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피고   대한민국외 2
피고들의 소송대리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답 변 취 지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답 변 원 인 
1. 원고는 원고 조합이 해산인가될 때까지 사용한 금원이 45억원이라면서 이 금원을 피고들에게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 승인이 취소된 경우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만 조합이 해산된 경우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 승인이 취소된 경우 반드시 매몰비용을 보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조할 수도 있다는 임의규정에 불과합니다.
도시정비법 제16조의2 ④ 제1항제1호에 따라 추진위원회 승인이 취소된 경우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는 해당 추진위원회가 사용한 비용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시·도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조할 수 있다.
3. 사안의 경우, 원고는 추진위원회 단계를 넘어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입니다. 도시정비법은 조합의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보조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고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를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3. 2. 7.
위 피고들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승리로  담당변호사 박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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