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8)
매몰비용 청구 소송 -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 (8)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4.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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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요원들은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프리랜서로 근무하기 때문에 소속감이 강하지는 않지만 일단 현장에 투입되면 강한 근성을 발휘하는 프로들이다.

 

OS요원들의 일당이 세기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수가 많지는 않았다. 당연히 서로 안면이 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들이 서로 부딪힐 일은 없었다. 각 현장에서 주어진 일만 잘 수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지 않았다. 하나의 현장에서 두세 개의 가칭추진위원회가 경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구역에서 서로 편을 갈라 작업할 때면 신경전을 벌이며 격렬한 몸싸움도 불사하곤 했다. 안암6구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동의서 걷기가 힘들어졌고, 양쪽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야 이년아! 왜 자꾸 졸졸 따라 다녀?”


“이년아! 내가 언제 따라 다녔냐? 지년이 따라 다녀놓고 오히려 큰 소리네.”


토지등소유자들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나는 벌써 동의서 써 줬는데.”


“어머니, 박두수 측에 써 주셨어요? 그러면 사업 못해요. 쪽박 차고 싶으세요. 저희 쪽에 다시 써 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미 써 주었는데.”


“철회하고 다시 쓰시면 돼요.”


홍보요원들은 이중 삼중으로 동의서를 받으면서 저쪽 것을 철회하라고 권유하며 철회서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동의서 50%를 징구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OS요원을 투입한지 벌써 60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당초 30명을 투입했다가 상황을 봐가면서 인원을 줄여갈 생각이었으나 경쟁이 치열해지는 바람에 인원을 줄일 수도 없었다.


민익선은 담배를 물며 생각에 빠졌다.


‘이를 어쩐담. 하필이면 그 악바리 같은 송 회장하고 마딱뜨릴 게 뭐냐.’


양쪽 다 100명 안팍의 적극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대다수 토지등소유자들은 관망세였다. 이쪽에도 동의서를 써주고 저쪽에도 동의서를 써준 경우가 많았다. 

 

이런 와중에 동의서를 철회하겠다는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저쪽에서 동의서를 징구

하면서 이쪽에 써준 동의서를 철회하라고 종용한 것이다.


이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의서를 써준 사람들을 찾아가 저쪽에도 동의서를 써 주었는지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철회서를 보내자고 설득해야만 했다.

 
OS요원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맨손으로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문도 열어주지 않아 뭐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송 회장님, 동의서 많이 걷으셨습니까?”


“우리는 다 되어 갑니다만, 민회장님 쪽은 어떠신가요?”


“저희도 염려해 주신 덕분에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려고 전화한 게 아닌데 이야기가 자꾸 겉돌고 있었다. 민익선은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송 회장님, 저랑 차 한잔 하시지요.”


송기호도 후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익선이 먼저 만나자고 제안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회장님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합치시죠?”


민익선의 단도직입적인 제안에 송기호도 두말없이 동의했다. 두 사람은 2시간이 넘도록 통합방법에 관해 논의했고 결국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① 2주 뒤인 2005년 2월 20일까지 동의서 징구를 마감한다.


② 2월 21일 양쪽에서 징구한 동의서 검수작업을 거쳐 어느 쪽이 더 많은 동의서를 징구하였는지 확정하기로 한다. 철회서 없이 양쪽에 이중으로 제출된 동의서는 무효로 한다.


③ 동의서를 더 많이 걷은 쪽이 추진위원장직을, 적게 걷은 쪽이 부위원장직을 맡기로 한다. 감사는 2인으로 하되 각 1인씩 추천하고 추진위원은 각 진영에서 30명씩 추천하기로 한다. 


④ 추진위원회 통합전 각 진영에서 사용한 경비는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모두 대여금으로 인정하고 통합 이후 소요되는 경비는 현주와 미래가 절반하여 부담하기로 한다.


⑤ 추후 정비업체 선정시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하며 주민총회에서 선정되는 업체가 향후 안암6구역을 관리하기로 한다. 다만 각 회사의 대여금은 시공사 대여금을 받는 즉시 상환해 주기로 한다.


민익선은 송 회장과 헤어지자마자 즉시 이동호 과장과 윤서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현주피엠씨 회장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윤 사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겠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글쎄요? 돈을 푸는 게 가장 확실한데요.”


윤 사장이 민익선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린다.


“윤 사장, 우리 사정도 좀 봐주라. 지금까지 나간 돈만 해도 얼만데, 먹고 죽으려고 해도 이젠 없다.”


동의서징구 용역비를 모두 지급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건비가 대부분이라 완전히 외상으로 할 수는 없었다.

 

일부는 나중에 주기로 하고 형편이 되는대로 용역비를 주고 있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 과장 오늘까지 총 몇 장이나 되지?”


“지금까지 걷은 것이 262장인데, 그 중에 철회서가 들어온 것이 43장이고, 저쪽에 철회서 보낸 것이 53장입니다. 43장을 빼면 219장인데, 철회서 없이 이중으로 걷힌 것이 몇 장이나 될지는 모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동의서를 내주지 않은 사람이 348명이지? 이중 외지인이 몇 명이지?”


“외부거주인 225명중에 62명이 동의서를 내주었으니 163명입니다.”


“내부 거주인들한테는 더 걷기 힘들 것 같고 외부 거주인들에게 집중하는 것으로 하자. 윤 사장 30명중에 10명만 내부관리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부로 돌리지.”

 

2005년 2월 20일 밤 10시 김현수 측 가칭추진위사무실.


“위원장님.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징구 최종 집계 현황입니다.”


윤서희 사장이 김현수 추진위원장과 민익선 회장에게 최종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제출된 동의서 총 294장, 철회서 47장, 철회서 발송 60장


2주 동안 32장을 더 받았는데, 그 사이 철회서가 4장 늘었고, 이쪽에서 철회서 보낸 것이 7장이었다. 김현수 측에서 걷은 동의서는 최대 247장으로 집계되었다.

 

이중제출로 무효가 되는 것이 몇 장인지가 문제지만 무효가 되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결국 저쪽에서 몇 장이나 걷었는지가 최대 관건이었다.


다음날 오후 5시 30분.


동의서 검수작업에 참가한 이동호 과장으로부터 승전보가 전해졌다.


“회장님! 이겼습니다. 저쪽은 213장이었습니다.”


김현수 측 가칭추진위원회 사무실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민익선과 김현수는 서로 바라보며 감격하고 안도했다. 민익선이 이내 웃음을 지우고 이 과장에게 물었다.


“그래 겹치는 것은 몇 장이나 되던가?”


“양쪽에 모두 낸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무려 82장이나 됐습니다.”


“그럼 우리 쪽 247장, 저쪽이 213장, 합이 460장이고, 여기서 82장을 빼면 378장이구만.”


“네, 그렇습니다.”


“그럼, 동의율이 62% 정도 되는구만.”


“위원장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민익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현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모두 민 회장님이 고생하신 덕분입니다. 통합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면 오늘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겁니다.”


양 쪽에서 걷은 동의서가 모두 합쳐지고 갑지가 교체되었다. 교체된 갑지에는 김현수가 추진위원장, 박두수가 부위원장으로 표기되었고 양쪽 진영에서 추천한 감사 2명과 추진위원 60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2005년 3월 20일 성북구청에 추진위원회설립승인신청서가 접수되었고 4월 2일 드디어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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