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16)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16)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8.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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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씨엠씨는 작정한 듯이 달려들었다.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별도로 홍보요원을 붙이며 서면결의서를 걷어들였다.

 

토지등소유자들로 하여금 서면결의서를 작성하게 하고, 그것을 받아 추진위원회에 직접 접수시키는 방식이었다.


민익선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면결의서를 걷어다가 추진위원회에 접수하는 것이 적법한 것인지 빨리 알아봐.”
“그걸 어디다 알아보죠?”


이동호가 묻자 민익선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디다 알아보긴. 그걸 몰라서 물어.”


이동호가 깜짝 놀라 민익선을 바라본다.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민익선이 혀를 차며 이야기한다.


“성북구청하고 서울시에 질의해 보고, 변호사 사무실에 물어 봐.”


“변호사 사무실요?”


“그래, 재건축 재개발하면 강치호 변호사잖아.”


“돈이 들어갈텐데요.”


“지금 돈이 문제야.”


이동호는 즉시 움직였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에 질의서를 보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은 자문변호사에게 검토를 요청했다며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해왔고, 강치호 변호사는 서면결의서를 작성한 토지등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서면결의서를 전달하고 홍보요원이 그 서면결의서를 추진위원회에 제출하는 것은 단순한 심부름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했다.


검토의견서를 받아 본 민익선은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기서 지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날 저녁 민익선이 윤서희를 은밀히 불러냈다.


2005년 6월 30일 오후 7시 안암예식장 웨딩홀.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제1차 주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안건 심의에 앞서 제2차 성원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추진위원회 설립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 총 378명 중,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신 분이 242명,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지 않고 현장에 출석하신 분이 총 41명, 합계 283명으로 동의자 과반수 이상 출석으로 적법하게 성원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늘 총회 안건은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여부를 불문하고 출석 토지등소유자 과반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총 출석 토지등소유자는 서면출석 410명, 현장출석 73명, 합계 483명으로 집계되었음을 보고 드립니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선정의 건이 과열되다 보니 예상보다 훨씬 높은 출석율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라는 점도 한 몫하고 있었다. 길음뉴타운 조합원 분양분이 1억원 넘게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재건축재개발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인식되고 있었다.


마침 이명박 시장은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 정책을 통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사업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의장께서는 오늘 심의할 안건을 모두 상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개발재건축 총회 전문 사회자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이동호가 보려고 했는데, 정비업체 선정의 건이 현주피엠씨와 미래피엠씨의 경합양상이 되면서 이동호가 배제된 것이다.


미래씨엠씨와 손을 잡은 박두수 부위원장과 박현길이 추진위원들을 규합하여 추진위원회의 엄정 중립을 요청했던 것이다.


김현길도 어쩔 수 없었다. 말이야 바른 말 아닌가. 현주와 미래가 서로 싸우고 있으니 추진위원회가 중립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김현길은 현주피엠씨가 선정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같이 일해 온 정도 정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박두수에게 밀려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새마을금고 이사장과 학교 선생은 분명 차이가 있다. 현주피엠씨가 선정되어 뒷받침을 해 주어야 조합장도 가능한 것이다.


안건을 상정하라는 전문 사회자의 말에 김현수가 오늘 주민총회에서 심의되어야 할 안건 7가지를 일괄 상정한다. 추진위원회의에서 사전 심의된 안건들이다.


“네. 안건이 모두 상정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안건 심의에 앞서 한 가지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안건 심의가 끝나고 나면 현장 투표가 진행될 것입니다. 현장 투표가 끝나고 나면 개표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요. 서면결의서와 현장 투표용지에 대한 개표작업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효율적인 총회진행을 위하여 서면결의서에 대한 개표작업을 먼저 시작했으면 합니다. 사무국에서는 제출된 서면결의서를 단상 앞으로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진행요원이 서면결의서가 들어 있는 투표함을 단상 앞으로 가져 온다.


“감사님들 어디 계신가요? 네, 감사님 두 분께서 개표작업을 총괄 지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출석하신 토지등소유자님 중 두 분을 참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개표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구요. 개표작업이 공정하고 적법하게 진행되는지 감시하는 역할입니다. 두 분만 자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한 분 자원해 주셨고요. 또 한 분 더요. 아, 예. 거기 손드신 여사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자 그럼 의장께서는 서면결의서 개표개시를 선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멘트를 마치고 의장석을 바라보자 김현수가 마이크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다.


“자, 그럼 서면결의서 개표를 선언합니다."


탕! 탕! 탕!


“자, 감사님 개표작업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건 심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진행해 주시고요. 촬영 기사님께서는 서면결의서 개표 장면을 녹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안건심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제1호 안건 추진위원 선임 추인의 건입니다. 토지등소유자님들께서는 총회 책자 25페이지를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안사유를 보겠습니다.”


안건 심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전문가다운 솜씨로 능수능란하게 사회를 진행하였고 토지등소유자들도 협조적이었다.


“오늘 주민총회에 상정된 7개 안건에 대한 심의가 모두 끝났습니다. 모두 마음의 결정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지 않고 현장에 직접 출석하신 토지등소유자분들께는 입장하실 때 투표용지가 교부되었습니다. 감사님들께서는 투표소와 투표함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면결의서 개표는 방금 끝이 났군요. 네, 이상 없습니까? 그럼, 의장께서 투표 개시를 선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투표 개시를 선언합니다."


김현수가 의사봉을 치자 토지등소유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투표하기 시작한다. 3개의 기표소 앞에 줄이 이어진다.


“사무국에서는 최종 성원보고서를 갖다 주시기 바랍니다.”


토지등소유자들의 재개발 열의가 매우 높았다. 추진위원회 승인이 나면서 집값이 상승하고 있었으니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평당 3백∼4백만원하던 집값이 7백만∼8백만원으로 올라 있었다. 무려 두 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구역지정을 받고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고 토지등소유자들은 빨리 사업이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더 이상 투표를 하는 사람이 없다.


“투표가 모두 끝난 것 같습니다. 투표 안하신 분 없으시죠?”


사회자가 회의장을 둘러본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투표 종료를 선언합니다.”


탕! 탕! 탕!


“바로 이어 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무국에서는 투표함을 단상 앞 개표대로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님들 다시 한 번 수고해 주시고요. 참관인 두 분도 한 번 더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종 성원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추진위원회 설립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 총 378명 중 283명이 참석하셨고, 총 토지등소유자 610명 중 총 483명이 참석하신 것으로 최종 집계되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럼 의장께서는 개표 개시를 선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개표 개시를 선언합니다.”


탕! 탕! 탕!


“개표 작업에 최소 30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토지등소유자님들께서는 화장실도 다녀 오시고 휴식을 취하시면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개표가 끝나면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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