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17)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17)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09.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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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각 안건에 대한 투표결과를 말씀드리고 각 안건의 투표결과를 선포하는 순서를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제1호 안건 추진위원 선임 추인의 건에 대한 투표결과입니다. 출석 토지등소유자 총 483명 중 찬성 452명, 반대 5명, 기권 및 무효 26명으로 출석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었습니다. 의장께서는 제1호 안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호 안건 추진위원 선임 추인의 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어 2호, 3호 안건도 모두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 선포되었다.


“다음은 제4호 안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선정의 건입니다. 오늘 안건 중 가장 중요한 안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출석 483명 중 기호 1번 현주피엠씨 204표, 기호 2번 미래씨엠씨 195표, 기권 및 무효 32표로 기호 1번 현주피엠씨가 선정되었습니다. 의장께서는 안암6재건축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의 정비업체로 현주피엠씨가 선정되었음을 선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표 차이였다. 기권 및 무효표가 32표로 훨씬 많았다. 화근이 될 소지가 많았다. 어찌 되었건 기호 1번 현주피엠씨가 선정된 것은 맞았다.


양측 관련자들이 개표작업에서 몇 번이나 다시 표를 확인하였던 것이다.


김현수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결과를 선포한다.


“제4호 안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선정의 건과 관련하여 기호 1번 현주피엠씨가 선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탕탕탕.”


설계업체에는 기호 1번 황원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선정되었고, 도시계획업체로는 기호 1번 오너시티가 선정되었다.


정비업체로부터운영비와 사업비를 대여하여 사용하기로 하는 제7호 안건도 아무 문제없이 가결 선포되었다.


“이상으로 오늘 주민총회가 모두 끝났습니다. 의장께서는 마무리 인사말씀과 더불어 폐회를 선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현수가 이제 끝났구나 하는 표정으로 토지등소유자들을 훑어보고 폐회를 선언한다.


김현수 위원장이 의사봉을 내려치자 회의장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하나같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표정이다.


준비서면


사건   2013구합11110호 매몰비용청구
원고   안암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피고   대한민국외2
위 사건에 대하여 피고들은 다음과 같이 변론을 준비합니다.


다  음


1. 원고는 도시정비법이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원래 피고들이 부담하여야 할 정비기반시설이나 임대주택 등의 설치비용을 조합에 전가하는 등 재개발사업의 공익적인 성격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매몰비용을 피고들이 물어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원고의 주장은 원론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2. 원고 조합이 해산된 것은 원고조합의 조합원들이 계속적인 사업진행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고 조합의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해산동의서를 징구하고 성북구청에 해산인가신청서를 제출하였고 성북구청은 해산인가신청이 적법한지의 여부를 검토한 후 해산인가처분을 발하였습니다. 원고 조합의 조합원들이 스스로 원하여 조합이 해산된 것인 바, 원고 조합의 매몰비용을 피고들이 부담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2013. 4. 26.


위 피고들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승리로
담당변호사 박 찬 성


2013년 5월 1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치욕도 이런 치욕은 없었다. 자식뻘밖에 안 되어 보이는 검사와 수사관으로부터 구정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검사실에서 연락이 온 것은 일주일 전쯤의 일이었다. 조합원들이 찾아와 상담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실이라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조합원들 앞이라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통화를 했다.


조사할 것이 있는데, 다음 주에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집에는 일체 비밀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집사람이 알게 된다면 천장이 무너져라 탄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정말 떳떳했다. 술은 몇 번 얻어 먹은 적이 있지만 돈은 한 푼도 먹지 않았다.


더러 조합장들 중에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아먹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현수는 그럴 생각 조차 없었다. 월급을 받으며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어허 그러니까 모두 자백하시라니까 그러시네.”


어느 순간부터 수사관의 말이 반말투로 변해 있었다.


도시계획업체와 설계업체가 김현수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건네주었다는 진술이 확보되었으니 모두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환장할 심정이다. 받은 것이 없는데 받았다고 인정하라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자꾸 이러면 구속영장을 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합장들 리베이트 받는 것을 모를 것 같습니까? 괜히 시간 끌고 버텨봐야 구형량만 늘어납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조사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낱낱이 묻고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니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다음 날 김현수는 아침 일찍 검사실로 가야 했고 꼬박 하루 동안 조사를 받았다.


“정말 선정된 업체들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한 적이 없습니까?”


“정말 없다니까요.”


“정말 이럴 겁니까? 우리가 업계 관행이 10프로라는 걸 모를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 수사관들이 바보로 보입니까? 정비업체, 설계업체, 철거업체, 법무사, 기타 이런 저런 자잘한 업체들까지 모두 리베이트를 지급하잖아요. 리베이트를 약속하지 않으면 입찰조차 참여시켜주지 않는 것도 다 알고 있어요.”


“글쎄 다른 조합장들은 어쩔지 몰라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니까요.” 


“허허 인정하시라니까 그러시네. 사람들이 순진한 건지 뭔지. 왜 우리가 리베이트 주고받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삼일 뒤 수사관들이 조합사무실로 들이 닥쳤다. 같은 시각 김
현수의 집에도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박연실이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예요. 지금 수사관들이 온통 뒤지고 난리예요. 얼른 집으로 와요.”


조합 사무실과 조합장의 집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마을로 퍼져 나갔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고 뭐라고 수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글쎄 조합장이 여기 저기 업체들로부터 수억원을 받아 쳐 먹었데. 조합장
이 인정을 안하니까 검찰에서 증거를 찾아내려고 난리도 아닌가 봐.”


한창 매몰비용청구소송이 진행되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합해산인가 이후 매몰비용을 걱정하던 일부 조합원들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조합장이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정황이 있으니 진실을 밝혀달라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먼저 협력업체 대표들을 불러 조사했다.


그들은 만에 하나라도 조사받은 사실이 새나가면 모두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검사의 협박에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표적은 조합장에게로 맞춰지고 있었다. 조합장이 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았는지의 여부만 밝혀지면 되는 것이었다.


업체들은 ‘을’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선처를 구하고 있었다. 억울한 심정에 그냥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김현수가 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알아낸 내용이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현주피엠씨의 민익선 회장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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