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0)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0)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10.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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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더니 민익선이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안암6구역 어떻게든 수주를 하라는데, 회장님이 좀 도와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백두건설이 될 것 같은데, 동생이 너무 걱정하는 것 아냐?”


민익선은 어느새 박과장의 호칭을 동생으로 바꿔 쓰고 있었다. 그날 저녁 박남진 과장과 민익선 회장, 믿음컨설팅의 윤서희 사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박 과장, 여기 윤 사장 알지. 저번에 라운딩 같이 했었잖아?”


“예. 알지요. 이런 미인을 제가 잊어 먹겠어요?”


“박 과장님,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셨죠?”


“저번에 정비업체 뽑을 때 미래씨엠씨의 송기호가 얼마나 질기던지 애 먹었잖아. 그때 여기 윤 사장이 도와줘서 잘 끝났었지.”


“그런 일이 있었어요? 미래씨엠씨라면 정비업체 중에 알아주는 회사잖아요?”


“그래, 바로 그 미래씨엠씨하고 붙었다니까. 아주 피말리는 접전이었어. 그래, 윤 사장이 가장 잘 알잖아, 그때 어땠는지 장 과장님께 설명 좀 해 드리지.”


“아휴, 정말 말도 마세요. 지금까지 수 많은 현장에서 일을 해왔지만 그때만큼 치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봉투까지 돌렸잖아요. 그때 언니들 고생 많이 했어요. 험한 꼴도 많이 당했지요.”


“정말 그런 일들이 있습니까?”


“그럼요. 그런 일 당하고 와서 울면서 못하겠다고 하는 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도 윤 사장은 안암6구역 경험이 많잖아.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도 걷어 봤고, 주민총회도 해봤잖아. 주민들 성향이야 진작에 다 파악했을 거고?”


“두말하면 잔소리죠. 우리만큼 안암6구역을 잘 아는 업체도 없지요.”


“박 과장, 안암6구역 수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네?”


박남진 과장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민회장이 혀를 차며 이야기한다.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말귀를 얼른 못 알아듣네. 여기 윤 사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네?”


“시공사를 선정하려면 총회를 열어야 하고, 총회를 하려면 서면결의서를 걷어야 하잖아. 안암6구역에서 홍보업체를 어디로 쓰겠어? 구관이 명관이라고 믿음컨설팅을 쓸 거 아냐? 윤 사장이 신경만 좀 쓰면 일이 쉬워지지 않겠느냐 그 말 아냐.”


“아하! 그 말씀이셨군요. 저는 오늘 왜 윤 사장님이 같이 나오셨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 그거야.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구만. 안암6구역도 백두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면 좋지 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빵빵한 회사인데. 이게 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어? 일이 잘 되면 알지? 여기 윤 사장하고 나한테 인사하는 거 잊지 말고. 하하. 자 그럼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고, 안주 상하겠네. 한잔 하자고.”


민익선이 술잔을 들어 올리자 박남진과 윤서희도 잔을 든다. 민익선이 선창을 하자, 두 사람이 힘차게 잔을 부딪친다.


“자, 그럼 안암6구역 수주를 위하여!”


“위하여!”


입찰 마감 이후 주민 총회까지 약 한 달 동안 안암6구역은 마치 시골 장터 같았다.


백두건설과 장백건설의 불꽃 튀는 수주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비업체를 뽑으면서 한 번 맛을 본 주민들은 은근히 이것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막판으로 갈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알아버린 토지등소유자들은 서면결의서를 쥐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장백건설은 별도로 홍보요원들을 동원하여 서면결의서를 걷고 있었다. 믿음컨설팅이 은근히 백두건설을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일이었다.


민익선 또한 음으로 양으로 백두건설을 밀고 있었다.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는 듯 했지만 뒤로는 백두건설을 찍으라고 독려하고 있었다.


장 과장이 동네 유지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도 민익선이 주선한 것이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고 공공연하게 봉투가 오고갔다. 기왕에 써 준 서면결의서를 철회하고 다시 서면결의서를 써 주면 봉투를 주는 것이다.


총회 전날에는 내일 총회장에 가서 서면결의서를 철회하고 현장 투표를 하면 얼마를 주겠다는 식의 거래가 오고갔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시공사로 선정된 백두건설의 박 과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안암6구역 시공사 선정총회는 이후 상당 기간동안 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게 된다.

2013년 5월.


피고측 준비서면을 받고 한동안 도시정비법을 뒤져가며 고민하던 김명찬 변호사가 드디어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재개발사업이 사익사업이라고 주장하며 공공이 매몰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던 피고들은 이번에는 관점을 바꾸어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 제출한 이상 공공이 매몰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준비서면


사건   2013구합11110호 매몰비용청구
원고   안암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피고   대한민국외2

위 사건에 대하여 원고는 다음과 같이 변론을 준비합니다.


다  음


1. 피고들은 원고 조합이 해산된 것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으로 조합 해산으로 발생된 매몰비용을 피고들이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2. 원고 조합의 조합원들이 해산동의서를 제출한 것은 기존에 없던 출구정책이 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초 설립된 조합이 해산되기 위해서는 조합정관 등 관련법에 따라 조합원 4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피고들은 도시정비법과 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하여 조합원 과반수 찬성만 있으면 해산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규정에 근거하여 원고 조합이 해산된 것입니다. 고로 매몰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3. 한편, 원고 조합원들이 조합해산동의서를 제출한 것은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미분양으로 인하여 추가부담금 우려가 조합해산동의서 징구로 이어졌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 또한 피고들의 무분별한 뉴타운정책과 신도시정책, 주택보금자리정책 등 주택정책의 총체적인 실패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4. 이러한 주택정책들은 부동산시장에서 아파트 과잉공급우려를 불러왔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과잉공급에 따른 아파트 가격하락예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파트 매입수요자들은 이를 우려하여 매입을 보류하고 시장을 관망하는 태도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아파트가격은 동결 내지 하락하고 있음에 반해 전세와 월세 가격이 급등한 것은 실수요자들의 매수보류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5.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원고 조합의 조합원들이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 제출한 것은 모두 피고들의 무분별한 주택정책과 출구제도신설에 기인한 것입니다.


피고들이 원고 조합의 매몰비용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2013. 5. 3.


위 원고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창천
담당변호사 김 명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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