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1)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1)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11.1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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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찬 변호사는 두 가지 점을 들어 반박 준비서면을 작성하였다. 우선 조합원들이 조합해산동의서를 징구하게 된 것은 출구정책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출구정책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조합을 해산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조합원 2분의 1 이상의 동의만으로 해산이 가능한 출구정책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사단이 발생했다는 취지였다.


두 번째는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가 잘못된 주택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서울시의 경우 이명박, 오세훈 시장을 거치며 수많은 지역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무려 1천여곳이 넘었다. 그 뿐 아니라 2006년 7월 1일자로 시행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기한 재정비촉진구역의 과도한 지정이 있었다.


서울시에는 길음뉴타운, 은평뉴타운, 왕십리뉴타운, 신길뉴타운, 장위뉴타운, 천호뉴타운, 거여마천재정비촉진구역 등 뉴타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렇게 아파트를 많이 지어대는데 과연 예전처럼 아파트 값이 오르겠어?’하는 의구심이 쌓여갔고 아파트를 매입하기 보다는 전세를 선호하며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파트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아파트 전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신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여기에 정부는 신도시정책과 보금자리주택정책까지 실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택지개발사업은 구도심의 노후한 주택지역을 개량 정비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과 상극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분양되기 위해서는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데, 신도시개발을 통해 찍어내는 수많은 아파트들이 시장 수요를 상당 부분 잠식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신도시 아파트와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모두 미분양 사태에 빠져버리고 말았고 이는 시공사의 유동성을 악화로 직결되었다.


미분양으로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시공사들은 자금난에 빠졌고 어려운 회사 형편으로 신규 현장 수주를 하지 못했다. 기존에 수주한 현장들도 등급을 나누어 사업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자체 출구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상황을 지적하며 공공이 매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취지는 전달되겠지. 피고들이 뭐라고 반박할까?’


2005년 9월 30일에 개최된 주민총회에서 백두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 사업은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도시계획업체인 오너시티는 정비계획안을 최종 정리하고, 믿음컨설팅은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구역지정신청서를 걷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구역지정 이후에 추진위원회 승인절차가 진행되지만 당시에는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구역지정절차가 진행되었다.


그것도 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등소유자들이 구역지정을 신청해야 비로소 업무가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행정관청 스스로 정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도 외주를 줄 예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암6구역도 이러한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후에 소송이 제기되고 만다. 구역지정을 받기도 전에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고 이러한 추진위원회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조합설립인가는 무효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위원장님, 구역지정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토지등소유자 3분의 2 이상 구역지정신청서를 걷어야 합니다. 우리 구역의 토지등소유자가 610명이니까 407장 이상 걷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번에 토지등소유자 절반 이상 걷는 것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3분의 2나 걷어야 돼?”


“그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려면 80% 이상 걷어야 하잖아요.”


“추진위원회 2분의 1, 구역지정 3분의 2, 조합설립 5분의 4 점점 늘어나는구만. 또 오에스 써야 되는 거야?”


“그렇지요. 저번에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걷을 때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내준 사람들에게는 구역지정신청서, 조합설립인가신청서 용으로 쓸 인감까지 모두 받아 놨으니까 괜찮지만 나머지는 더 걷어야지요.”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를 걷을 때, 구역지정신청서와 조합설립인가신청서, 사업시행계획동의서를 한꺼번에 걷는 것이 관행이었다.


4가지 서류에 한꺼번에 인감도장을 날인받고 인감증명서 4통을 받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중에 문제가 된다. 조합설립동의서에 기재하게 되어 있는 사업개요란을 공란으로 한 채 조합설립동의서를 걷고 나중에 이 부분을 채워 넣은 것은 유효한 조합설립동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업개요 내용이 변경되어 칼로 긁어내고 고쳐 쓰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모두 조합설립무효사유로 평가되어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안암6구역은 구역지정신청을 하기 위해 OS를 동원하여 구역지정신청서 3분의 2 이상을 징구하였고 구역지정신청을 하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암초에 걸리고 만다.


“아무래도 일정이 딜레이될 것 같습니다.”


민익선이 심각한 표정으로 김현수에게 설명하고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서울시가 안암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고시하겠답니다. 안암동 일대를 광역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이지요. 신길뉴타운, 장위뉴타운처럼요.”


“그거 좋은 것 아닌가요. 좁은 지역을 개발하는 것 보다는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개발하면 더 살기 좋아질 것 아닙니까?”


“그건 맞습니다. 도심에 하나의 신도시가 건설되는 것과 같으니까요? 문제는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을 위해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광역적인 도시계획을 세워야 하니까요?”


“그럼 그동안 도시계획업체를 선정하여 진행한 업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 무시하고 다시 진행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고요. 안암6구역 정비계획도 반영해서 전체적으로 검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2005년 12월 30일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6년 7월 1일자로 시행되었다. 또 같은 날 오세훈 서울시장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재정비촉진법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 정책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세훈 시장 역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뒤를 이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안암동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한다는 것은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정비구역 지정 신청 심사를 보류하겠다는 것이었다.


추진위원회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하루 빨리 촉진지구 지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2007년 6월 21일. 정비구역 지정 신청을 한 지 15개월만에 드디어 안암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되었다.


서울시가 안암동 일대 77만㎡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안암뉴타운 일대는 말 그대로 축제분위기였다.


◆안암뉴타운 재정비촉진지구 제6구역 개요


공사명 : 안암6구역 주택재개발예정구역
대지위치 : 서울 성북구 안암동 173-114


              일대


지역지구 : 제2종 일반주거지역
구역면적 : 89,972.0㎡   (27,216.5평)
토지등소유자수 : 610명
신축예정세대수 : 1,136세대

 

“자 마음껏 드시지요. 그동안 1년 넘게 기다리느라 오금이 다 오그라들 정도였습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 안 취하면 언제 취해보겠습니까?”


김득수 노인회장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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