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2)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11.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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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집에 안암6구역 창업공신들이 모두 모여 있다. 추진위원회 측에서는 김현수 위원장과 박두수 부위원장, 김순례 총무, 박현길 추진위원, 김득수 노인회장, 오오순 통장이, 협력업체 측에서는 현주피엠씨 민익선 회장, 이동호 과장, 백두건설 박남진 과장, 황원종합건축사사무소 배동원 사장, 오너시티 손창수 사장 그리고 믿음컨설팅 윤서희 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촉진구역으로 되면서 구역이 상당히 넓어져 버렸는디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것당게?”


술기운에 얼굴이 조금 발그레해진 김득수 노인회장이 앞에 앉아 있는 오너시티 손창수 사장에게 물었다.


“아 그거요. 당연히 좋은 거지요. 구역이 넓어지면 단지가 커지잖아요. 단지가 커지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습니다. 널찍널찍하게 아파트를 들어앉힐 수 있고 공원 등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을 배치하기에도 좋거든요.”


“그런 것이여. 그럼 이번에 구역이 넓어진 것이 우리한테는 복이구마잉.”


김득수 노인회장의 말에 박현길이 손사래를 치며 끼어든다.


“회장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예요. 이번에 추가된 지역이 단독주택 구역 아닙니까? 안암동에서 부자라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사실 재개발할 이유가 없거든요. 대지도 넓고 집도 전원주택처럼 잘 지어놨잖아요. 그 사람들은 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된 것을 싫어하는 눈치던데요.”


미래부동산을 운영하는 박현길은 동네 사정에 밝을 수밖에 없었다. 박현길의 말을 들은 김현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민익선에게 물었다.


“이제 촉진지구는 됐고 앞으로 어떤 절차가 진행되는 겁니까?”


“어이, 손 사장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 설명 좀 해드려.”


민익선이 오너시티 손 사장에게 대답을 미룬다.


“아, 예. 이제 촉진계획이 나와야 됩니다. 2006년 7월 1일 도시재정비촉진법이 시행되고 4개월 뒤인 11월 20일에야 서울시 도시재정비촉진조례가 만들어졌습니다. 12월 말에 도시재정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올 2월 말에 심의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행정절차가 왜 이렇게 더딘지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하지만 촉진지구 지정은 4개월만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저희 오너시티가 열심히 한 결과입니다.”


추진위원회 핵심 멤버가 모여 있는 자리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손창수가 공치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아직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겨우 구역만 나누어진 것이고요. 나누어진 구역별로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는 재정비촉진계획이 수립되어야 확정되는 것입니다. 저희 오너시티가 최대한 빨리 해보겠지만 이것이 구역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라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9조(재정비촉진계획의 수립) ① 시장·군수·구청장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포함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하여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결정을 신청하여야 한다. 이 경우 재정비촉진지구가 둘 이상의 시·군·구의 관할지역에 걸쳐 있는 경우에는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이 공동으로 이를 수립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시·군·구 간의 협의가 어려운 경우나 제5조제3항에 따라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가 직접 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한 경우에는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가 직접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같은 조 제4항에 따라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대도시 시장이 직접 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한 경우에는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대도시 시장이 직접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한다.


③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에 따라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하거나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그 내용을 14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고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 공청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그럼 아직도 시간이 한참 지나야 되겠네.”


손창수 사장의 대답에 김현수가 영 심난한 모양이다. 2005년 4월 2일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고 촉진구역으로 지정되기까지 벌써 2년 2개월이 지나가 버렸다.


이동호는 촉진계획이 나와야 조합설립동의서를 걷을 수 있다고 했다. 언제 촉진계획이 나오고 언제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을지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게다가 민익선과 이동호의 예측은 번번히 빗나가고 있었다. 물론 현주피엠씨가 업무를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정책이 자꾸 바뀌고 매뉴얼이 바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러는 것도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이번에 촉진지구 지정이 이루어져서 다행이지 매일같이 주민들에게 언제 조합이 설립되는지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도 첩첩산중인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매월 따박따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150만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결코 적은 돈도 아니었다. 만일 이것이 아니었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나이 65세에 어디 취직하기가 쉬운 일인가?


그래도 사람이 월급을 받으려면 그만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중학교 윤리 선생님이었던 김현수의 양심이었다. 아무리 주어진 상황이 그렇다지만 조합설립이 늦어지는 것이 영 찜찜하기만 했다.


김현수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소주병과 맥주병이 쌓여가고 안주도 끊이지 않았다. 회식비는 설계업체에서 쏘기로 되어 있었다.


황원종합건축사사무소의 배동원 사장은 기분이 좋았다. 구역이 넓어지면서 설계용역비가 상당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늘 회식자리도 민익선이 한턱 쏴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용역비가 늘어나기는 정비업체도 마찬가지였지만 민익선의 소개로 안암6구역과 인연을 맺은 배동원으로서는 민익선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까짓 회식비가 얼마나 되겠는가? 늘어난 용역비에 비하여 조족지혈(鳥足之血)인 것이다.


윤서희도 싹싹하게 추진위원들을 챙기고 있었다. 특히 김순례와 오오순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구역지정신청서를 걷은 것이 마지막 업무였다.


촉진계획이 고시되면 조합설립동의서도 걷어야 하고 창립총회 때 서면결의서도 걷어야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김순례와 오오순에게 밉보여서는 될 일도 안된다. 그것이 믿음컨설팅을 운영하며 쌓은 윤서희의 노하우였다. 물론 남자들도 잘 챙겨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백두건설의 박남진 과장 또한 기분이 좋았다. 이제 큰 산 하나를 또 넘은 것이다. 촉진지구로 지정된 이상 촉진계획도 무리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


“위원장님, 이제 저녁은 충분히 먹은 것 같은데 2차 가셔야죠? 오늘 같이 좋은 날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잖아요. 다들 기분도 좋으신 것 같은데 노래방 어떻습니까?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오늘은 제가 끝까지 쏘겠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던 배동원이 9시가 넘어서자 노래방을 제안했다. 민익선이 얼른 맞장구를 친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아까 오면서 보니까 노래방이 몇 개 있던데, 이 과장, 이 과장이 가서 분위기 좋은 데로 한번 잡아보지. 우리가 모두 12명이니까 제일 큰 방으로.”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흥겨운 반주소리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댄다.
 


한 명이라도 집에 가면 2차는 없다는 민익선의 너스레에 멤버는 그대로다.


맥주와 양주가 들어오고 젊은 이동호와 윤서희, 박남진이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다.


윤서희가 김순례와 오오순에게 노래를 권하자 부녀회장님과 통장님의 노래 실력이 불을 뿜는다.

 
김득수와 박두수, 박현길, 김현수도 흥겨운 분위기에 쾌쾌묵은 18번을 뽑아낸다. 민익선과 배동원, 손창수 또한 빈 술잔을 채워주며 영업으로 다져진 실력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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