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3)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4.12.10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간히 조용한 곡이 나올 때면 장난기 섞인 브루스 타임이 이어졌다. 넉살좋은 박두수와 박현길이 김순례와 오오순에게 브루스를 청하고 윤서희에게도 브루스를 청한다. 민익선과 배동원도 마지 못해 끌려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김득수가 그런 풍경을 재미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젊은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내심 부러운 눈치다. 김현수도 분위기에 녹아드는 분위기다.


18번을 찾아 멋들어지게 노래를 뽑아내며 간간히 술잔을 비운다. 그때마다 윤서희가 잔을 채워준다. 


10시 반이 넘어서자 김순례와 오오순이 집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김득수도 같이 가자며 일어선다. 


“이 과장이 회장님 좀 모셔다 드리지. 약주 많이 드셨어. 모셔다 드리고 퇴근하지. 내일 일찍 나오고.”


민익선의 말에 이동호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우리도 가야지. 기분 좋다고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어.”


“그러게요. 더 마시다가는 내일 사무실도 못 열겠는데요.”


박두수가 박현길에게 눈짓을 하자 박현길이 일어나며 너스레를 떤다.


“술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다들 가시면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지 뭐. 먼저 가실 분들은 가시고 남은 사람들이 마무리해야지.”


윤서희의 만류에 민익선이 분위기를 정리하자 다들 일어나 인사를 나눈다. 갈 사람은 가고 자리가 다시 정리된다.


“위원장님, 제 잔 한잔 받으시지요. 그동안 마음 고생도 많으셨는데.”
민익선이 양주병을 들어 김현수의 잔을 먼저 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잔을 권한다.


“다음은 배 사장님.”


“그리고 손 사장님.”


“우리 박남진 과장님.”


“윤 사장도 잔 채워야지.”


“자 다 채워졌지요. 그럼, 다 같이 건배 한번 하시지요. 안암6구역 재개발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민익선이 좌장이었다. 민익선의 건배 제의에 모두들 잔을 비우고 내려놓는다.


“이번에는 윤 사장이 좀 채워주지.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잖아.”


민익선의 말에 윤서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일이 잔을 채운다. 그 모습을 보며 민익선이 짐짓 무게를 잡고 이야기한다.


“위원장님,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아까 박현길이 이야기한 것처럼 추가된 지역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추가된 지역의 토지등소유자가 340명이나 되는데 조합설립동의서를 잘 내줄지 걱정입니다.”


“민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조합설립을 하려면 80% 이상 동의서를 받아야하는데 쉽지 않을 겁니다.”


박남진 과장이 걱정스럽다는 듯 맞장구를 치자 배동원과 손창수의 얼굴도 자못 심각해진다.


“아, 분위기가 왜 이래요. 남자들이, 오늘같이 좋은 날 꼭 그런 일까지 걱정해야돼요. 동의서는 믿음컨설팅이 다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윤서희가 처진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경쾌한 목소리로 핀잔을 늘어놓자 민익선이 웃으면서 분위기를 정리한다.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갔나? 그래 그러자구. 오늘은 기분 좋은 이야기만 하자구. 자 잔도 다 채워졌는데 위원장님, 건배 제의 한번 해 주시죠.”


같은 시각, 부위원장 박두수와 추진위원 박현길은 근처 통닭집에서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위원장님, 이거 아주 눈깔 시어서 못 봐주겠습니다. 서울시에서 알아서 다 해준 걸 가지고 자기들이 노력해서 된 것처럼 공치사를 해대기는…. 나 원 참!”


“그나저나 박사장, 이거 뭔가 변수가 생긴 것 같지 않아? 촉진구역 지정고시가 이루어지면서 추가구역이 발생했잖아. 이것이 우리에게 찬스 아니냔 말이야?”


“찬스라뇨?”


“추가된 지역이 그나마 안암동에서 행세께나 한다는 사람들이 사는 곳 아냐? 그중에는 우리 새마을금고 회원들도 많단 말이지. 그 사람들이 조합원이 된다면 위원장하고 나하고 누굴 밀겠어?”


“아, 그 말씀이시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그 분들은 이사장님을 더 신뢰하겠지요.”


맞장구를 치던 박현길이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긴다. 박두수는 그런 박현길을 바라보며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구역이 넓어졌으니 추진위원회가 변경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업구역도 확대되었고 토지등소유자 숫자도 늘어났으니 추진위원도 더 뽑아야 되잖아요. 늘어나는 추진위원들은 추가된 지역에서 뽑아야 하구요. 아무래도 이런 절차가 필요할 것 같은데….”


비록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법학과 출신인 박현길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박두수는 아직 다 알아듣지 못한 눈치다. 박현길이 다시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한다.


“지금 추진위원회는 610명을 대표하는 추진위원회일뿐 추가된 지역의 토지등소유자들까지 대표할 수는 없잖아요. 추가된 지역의 토지등소유자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대변해 줄 추진위원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거 이참에 추진위원장과 임원들도 다시 뽑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추가된 지역의 토지등소유자가 340명이다. 이중 10% 이상이면 최소 34명의 추진위원이 이 지역에서 추가로 선임되어야 한다.


“그러게, 일리 있는 말인 것 같은데.”


“아참, 임원들 임기가 언제까지죠?”


“임기? 임기는 갑자기 왜? 조합설립될 때까지 아닌가?”


“아니예요. 분명 운영규정에서 임기를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2년이었던가, 3년이었던가 했던 것 같은데요. 만약 임기가 2년이라면 얼추 임기가 다 되어갈 겁니다. 추진위원회 승인 받은 것이 2005년도 4월달이었잖아요.”


“그렇지.”


“내일 한번 잘 찾아 봐야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 싹.”


박현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박두수를 바라본다.


추진위원회 운영규정 제15조 (위원의 선임 및 변경) ③ 위원의 임기는 선임된 날부터 2년까지로 하되, 추진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연임할 수 있으나 위원장, 감사의 연임은 주민총회의 의결에 의한다. 임기가 만료된 위원은 그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


추진위원회 운영규정상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되어 있었다.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은 2005년 4월 2일의 일이었다. 오늘이 6월 22일이니 벌써 임기가 종료된 것이었다.


"뭐야? 이거, 벌써 임기가 다 끝났잖아."


그동안 구역지정이네 촉진지구 지정이네 해서 이쪽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임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이참에 추진위원장부터 싹 다시 뽑자고 하자."


방향을 정한 박현길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7번을 꾹 누르자 화면에 박두수의 전화번호가 나타난다.


“이 과장, 알아봤어?”


“예.”


“뭐래?”


박현길의 성화에 못 이겨 재건축ㆍ재개발 전문변호사 강치호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온 참이었다.


“주민총회를 열어서 추진위원회 변경 총회를 하고 변경승인을 받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래?”


민회장 입장에서 볼 때 주민총회를 하는 것이 딱히 나쁠 것은 없었다. 주민총회를 하려면 홍보업체를 포함하여 여러 업체가 동원되어야 한다.


시공사가 선정되기 전에는 이 돈을 정비업체에서 마련해야 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겠지만 시공사가 선정되어 있는 마당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에서 분명 용돈도 짭짤하게 생길 것이다.


문제는 박두수와 박현길이었다. 박두수와 박현길이 죽이 맞아 돌아가는 듯한 낌새가 강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