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5)-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25)-매몰비용 청구 소송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5.0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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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익선의 예상대로 박두수와 박현길이 추진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입후보했다. 입후보자 접수가 시작되는 7월 20일 오전 박두수와 박현길이 나란히 후보자등록을 마친 것이다. 접수 순서를 의식해서였는지 김현수보다도 먼저였다.


민익선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추진위원장에 김현수, 부위원장에 김순례로 진용을 꾸리고 추진위원 입후보자 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박두수와 박현길은 부지런히 추가 구역 토지등소유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과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이라는 명함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선 박두수와 박현길은 평소 안면이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추진위원 입후보를 권유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가 걷히지 않는 것이다.


원인은 소형빌라와 단독주택의 부동산 시장가격 차이 때문이었다. 재건축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 소형빌라 가격은 대폭 상승하는 데 비해 단독주택 가격은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는다.


분양권을 얻고자 투자 하는 사람들이 부지가 큰 단독주택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빌라를 선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안암동도 마찬가지였다. 대지 지분 7평 정도의 빌라들은 평당 3천500만원까지 가격이 뛰었는데 단독주택은 평당 2천300만원대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이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추가구역의 동의서 징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재개발해 봐야 빌라 가진 사람들 재산 불려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 종전자산가치 평가할 때 단독주택들은 헐값으로 평가될 것 아니냔 말이야.”


“맞아, 괜히 재개발해봐야 우리만 손해라니까.”


“절대로 동의서 해주면 안됩니다. 동의서 해주면 쪽박 차게 됩니다.”


분위기는 싸늘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민익선과 김현수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었다. 백두건설 박남진 과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민 회장님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벌써 한달이 넘어갑니다. OS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하루에 동의서 한 장 걷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박남진 과장의 심각한 이야기에 윤서희 사장도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현장 분위기가 완전히 다운되어 있습니다. 이젠 전화도 안 받고 대문도 안 열어줘요.”


한달 전부터 홍보요원 30명이 투입되어 추진위원회설립동의서를 걷고 있었다. 1인당 일당이 13만원이니 하루에 390만원씩, 한 달 동안 1억2천만원이 깨진 것이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수당제로 바꿉시다. 동의서 한 장에 50만원씩. 그게 낫지 않을까요?”


민익선의 제안이었다. 추가구역의 토지등소유자가 340명, 추진위원회 변경 승인을 받으려면 170장 이상 추진위원회설립동의서를 걷어야 한다.


지금까지 걷은 것이 103장, 앞으로 67장이 더 필요하다. 한 장당 50만원씩 지급하더라도 3,350만원이면 된다. 하루에 1장도 안 걷히는 요즘 분위기라면 차라리 이런 방식이 나았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일주일 사이에 23장이 걷힌 것이다. 홍보요원 한 명은 7장을 걷어 일주일 사이에 350만원을 받아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동의서 한 장당 가격이 7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었고 또 20여장의 동의서가 걷혔다. 이젠 홍보요원들도 물불 가리지 않았다.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를 움켜쥐고 있는 토지등소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되었다.


음료수 선물세트가 소고기 선물세트로 바뀌었다. 한 장당 70만원이니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차츰 목표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10장이 남은 상황에서는 장당 가격이 150만원까지 올라갔다.


“우리가 동의서를 받아와도 돈을 준당가?”


“안 준디야. 갸들이야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게 돈을 주지만 같은 토지등소유자들끼리 그런 돈을 받으믄 안되지. 결국 그 돈이 누구 돈이여. 다 우리 돈 아닌가.”


하지만 이 와중에도 짭짤하게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박현길 사장이었다. 박현길은 우선 홍보요원들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리고 싹싹하고 일 잘하는 홍보요원 하나를 찍어 비밀리에 접촉하였다. 동의서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반땡하자는 것이었다. 그 홍보요원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박현길에게는 일석삼조였다. 동의서를 걷는다는 명목으로 추가 구역의 토지등소유자들을 만나 박두수와 박현길을 찍어달라고 호소하고 부동산중개업소 명함도 돌리고 과외로 두둑한 용돈까지 생기니 말이다.


“사모님,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단독주택 값이 안 올랐다고 하지만 바로 몇 달전을 생각해 보세요. 벌써 20 프로가 올랐잖아요. 물론 빌라 값 오르는 것에는 못 미치지만 시장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촉진계획이 수립되고 조합설립인가 나고 그러면 더 오릅니다. 길음뉴타운을 보세요. 거기라고 단독주택 가진 분들이 없었겠어요. 그나마 사업이 된다니까 오르는 거잖아요. 만에 하나 동의서가 안 걷혀서 안암6구역은 안된다고 소문나 보세요. 그나마 올랐던 집값도 다시 떨어지고 말겁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토지등소유자들은 달변가인 박현길의 이야기에 망설이던 동의서를 내 주곤 하였다.


“사모님, 아시죠? 이번에 추진위원장이랑 부위원장 새로 뽑잖아요. 새마을금고 이사장님이 추진위원장으로 나오시고 제가 부위원장으로 출마한 것 아시지요. 꼭 밀어 주셔야 됩니다. 우리 동네 대박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김현수 추진위원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이고, 사모님도 참. 냉정하게 생각해야지요. 어디 학교 선생하고 우리가 비교나 되나요?”


이렇게 추진위원회설립동의서를 받고, 추진위원 및 임원 입후보자를 받는데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2007년 10월 25일 오후 7시 안암예식장 웨딩홀. 


드디어 제2기 추진위원과 추진위원회 임원을 선출하는 주민총회가 막을 올렸다. 정비업체와 설계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개최했던 2005년 6월 10일 제1차 주민총회, 시공사 선정을 위해 개최했던 2005년 9월 30일 제2차 주민총회에 이어 세 번째 주민총회였다. 안건은 모두 다섯 가지였다.


제1호 안건 추진위원회 운영규정 변경의 건
제2호 안건 추진위원회 예산안 변경의 건
제3호 안건 추진위원회 제2기 임원 선출의 건
제4호 안건 추진위원 선출의 건
제5호 안건 추진위원회 변경승인절차 진행의 건


제1호 안건은 구역이 확대됨에 따라 운영규정의 일부를 변경하는 안건이고, 제2호 안건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추진위원회 운영경비를 소폭 인상하자는 것이었다.


임원선출을 비롯한 4개 안건들은 모두 제5호 안건 추진위원회 변경승인을 득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안건들이었다.


즉 이번 주민총회는 촉진지구 지정 당시 발표된 안암6구역 예정구역에 따라 추진위원회의 조직체계를 변경하는 것이 핵심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누가 추진위원장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기호 1번 김현수와 기호 2번 박두수는 겉으로는 추진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서 원만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 듯 했지만 둘 사이에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었다.


김현수 뒤에는 현주피엠씨의 민익선이, 박두수 뒤에는 미래씨엠씨의 송기호가 도사리고 있었고, 민익선 뒤에는 백두건설, 박두수의 뒤에는 한라건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박두수의 참패였다.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징구 숫자에서 밀리는 바람에 부위원장에 만족해야했고 박두수를 미는 미래씨엠씨와 한라건설 또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번엔 어떻게든 명예를 회복해야만 한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학교 선생 따위에게 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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