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총회진행은 정비업체만 위탁받을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법원 “총회진행은 정비업체만 위탁받을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수원지법, 법제처 해석 뒤엎은 판결 파장
  • 박노창 기자
  • 승인 2011.06.30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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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 13:28 입력
  
법조계 “법제처, 동의-결의·대행-대리 개념도 몰라”
사실상 브로커로 변해 가는 정비업체 대수술론 대두
 

지난 5월 16일 ‘총회의결을 위한 서면결의서 징구나 총회대행은 등록된 정비업체만이 할 수 있다’는 법제처 해석은 업계를 분란으로 몰아 넣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여가 지난 6월 23일 법원은 “총회 준비 및 진행업무는 등록된 정비업체만이 위탁받을 수 있는 업무는 아니다”고 판결함에 따라 법제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나마 법원이 이른 시일 안에 명쾌하게 판단을 내리면서 갈등은 최소화됐다는 분석이다.
 
이후 정비업체와 OS업체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던 이번 논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정비업체 대수술론’이다.
 
조합의 전문성 보완이라는 도입 취지를 상실하고 ‘브로커’로 전락해 가는 정비업체가 늘고 있는 만큼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지난 23일 수원지방법원 제31민사부(재판장 문준필 판사)는 구모씨 등 14명이 수원 팔달8구역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개최금지 가처분’에서 “총회진행 업무는 등록된 정비업체만이 위탁받을 수 있는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신청인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합이 H협회에 위임한 시공자·설계자 선정총회와 관련한 제반 업무는 총회준비 및 진행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69조제1항제1호 또는 제4호에서 정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위탁 업무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처럼 법제처와 법원의 시각이 다른 데는 정비업체의 업무를 규정하고 있는 〈도정법〉 제69조제1항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다. 법제처는 정비업체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확대 해석한 반면 법원은 그렇지 않았다. 처벌조항까지 있는 만큼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원칙을 법제처가 어긴 것으로 풀이된다.
 
▲도정법상 동의와 의결은 전혀 달라=이번 판결에 앞서 재개발·재건축 법률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입장을 보였다. 서면결의서 징구나 총회대행, 투·개표 등의 개별업무를 정비업체만이 수행할 수 있다는 규정은 〈도정법〉 제69조제1항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도정법〉 제69조제1항제7호 가목에 공공관리자 제도에 따라 시장·군수가 정비업체를 선정해 추진위 설립에 필요한 업무를 하는 경우 이때 동의서 징구를 정비업체의 업무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법률 전문가들은 〈도정법〉상 총회의결과 동의, 대행과 대리의 개념도 법제처는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서면동의와 일반적인 총회의결은 구분돼 있고, 제69조제1항에서 말하는 ‘동의’는 서면동의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하는데도 법제처가 다른 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H&P 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조합에 정비사업 전반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자가 있다면 정비업체에게 사무를 위탁하는 대신 스스로 수행할 수도 있다”며 “이때 조합이 동의서를 징구하거나, 총회를 진행하기에 인적 자원에 한계가 있어 OS업체에게 단순 업무를 의뢰하는 것인데 이를 두고 도정법 제69조제1항 위반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비업체의 등록규정 취지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일반적인 계약은 시공, 설계, 철거 등 해당업무만을 수행하고 나머지 업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반면 위탁계약은 위탁을 받은 자가 관리자의 주의를 다해 위탁사무를 총체적으로 수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위탁을 받은 정비업체는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등록요건을 두고 있고, 벌칙적용에 있어서도 공무원 의제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위탁사무는 조합이 별도 위탁하거나, 조합 승낙하에 정비업체가 재위탁=정비업체에게 업무를 위탁하거나 자문을 요청한 조합과 정비업체 사이의 관계는 〈도정법〉 규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민법〉 제680조, 제681조, 제682조가 적용되는데 조합이 정비업체에게 위탁한 사무를 정비업체가 제3자에게 그대로 위임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다만 위탁받은 업무 중 단순하고 지엽적인 업무에 대해 조합의 승낙을 받아 제3자에게 맡기는 게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정비업체가 서면결의서 징구업무나 총회진행 업무를 재위탁했던 것이다.
 
일례로 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을 보자. 사업시행계획서 작성과 관련해 조합에서는 총회에서 많은 수의 협력업체를 선정한다. 정비기반시설 설치비용 산출업체나 임대주택 매각비용 산출업체 등이 있다. 또 사업시행계획서에는 건축물 배치계획을 포함한 토지이용계획이나 공동이용시설의 설치계획 등 설계자의 업무도 포함된다. 하지만 정비업체는 설계, 시공, 회계감사 등의 업무가 금지돼 있다. 결국 정비업체는 위탁받은 자로서 관리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조합설립의 동의의 대행업무를 수행하면서 정비업체가 관리자 역할을 한다면 OS업체는 서면결의서 징구 등 단순 업무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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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업체에 수익 뺏겼다?”… 정비업체 주장에 비난 쇄도
 

■ 업계 반응

‘OS업체에 수익을 뺐겼다’는 일부 정비업체의 주장이 비난만 부르고 있다. 법제처 해석이 나온 이후 일부 정비업체들은 OS업체가 특정 건설사나 조합과 결탁하면서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평가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너나 잘 하세요’와 같은 분위기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식이다. 현재 정비업체에 대한 시장의 냉엄한 평가다.
 
일례로 법정단체인 한국도시정비협회는 정비업체들의 모임인만큼 관련법이나 제도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도시정비협회조차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록을 하지 않고 총회대행 등 수익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반포3주구 등에서 총회대행업체로 선정돼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만일 법제처 해석을 지지한다면 총회대행 업무에서 당장 손을 떼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도시정비협회가 계속 업무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법제처 해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정비업체 스스로도 동의서 징구나 총회대행 등은 자신들의 고유업무로 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만일 법제처 해석이 옳다면 한국도시정비협회는 그동안 불법행위를 저질러왔던 것이고, 나아가 불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불법을 저질렀다면 이는 범죄행위인 것이다. 그런데도 협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부 정비업체 사장들은 자기 반성이나 비판에 앞서 남의 탓만 하기 바쁘다.
 
조합이 총회대행업체를 별도로 선정하는 이유는 총회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차원에 있다. 정비업체가 뒷거래의 주범이기 때문에 잡음을 없애기 위해 관행화된 것이다. 나아가 총회의 전문성도 이유가 된다. 일부 정비업체를 제외하고 접수에서부터 총회진행 및 투개표 등의 업무가 서툴러 자칫 총회가 무산되거나 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업체를 선정해 온 것이다.
 
한 정비업체 대표는 “정비업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합이 별도의 총회대행 업체를 선정하는 관행이 생긴 것 아니냐”며 “정비업체 스스로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법제처 해석을 계기로 정비업체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돼야 한다”며 “정비사업전문관리업에 대한 전반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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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준공, 고유업무에 넣고
용역비 지급시기는 더 늦춰야
 

■ 정비업체 ‘대수술’ 방향

조합 위에 군림하면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온 정비업체에 메스를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업추진보다는 업체 선정과 관련한 뒷거래에 더 치중하는 정비업체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법제처 해석에 대한 파문이 확대되자 한국주택정비사업조협회를 비롯해 일선 조합들의 권익보호 활동을 펼쳐온 단체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도정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한주협이다. 현재 정비업체 역할 재정립을 위한 〈도정법〉 개정 초안 작업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주협은 개정안 초안작업이 끝나는대로 국토부와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개정청원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르면 7월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13일 한주협은 정책자문위원회의를 열고 정비업체 용역비 지급시기 및 비율 조정 등을 포함하는 개정안을 만들어 유관부서에 건의하기로 의결했고,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건의안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정비업체의 고유 업무에 준공 및 청산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비업체의 고유업무는 〈도정법〉 제69조제1항에 제1호부터 제7호까지 규정돼 있다. 문제는 관리처분계획 수립 이후부터는 사실상 정비업체가 손을 놓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준공이나 청산 단계에서 정비업체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정비업체가 도움을 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정비업체 입장에서도 이미 용역비의 대부분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관리처분 이후 사업장들은 ‘계륵’이나 마찬가지다. 얼마 남지 않은 용역비를 받기 위해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것보다 차라리 신규 사업장을 수주하는 게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또 준공이나 청산 단계의 업무에 소홀하다고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단계의 조합은 홀로 업무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비업체의 고유 업무에 △준공인가의 신청에 관한 업무의 대행 △청산에 관한 업무의 대행 등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정비업체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정법〉상 정비업체의 고유업무를 보다 명확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마지막까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용역비 지급시기와 비율을 뒤로 늦추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조항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장은 “관리처분 이후의 업무는 조합이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재 정비업체의 시스템”이라며 “돈줄을 죄고 있어야 그나마 정비업체가 최소한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예 관리처분 인가 이전까지 용역비의 50% 이상을 줄 수 없도록 명문화해야 한다”며 “국토부가 정비업체 행정용역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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