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5) - 매몰비용 청구 소송
어느 재개발 조합장의 죽음(45) - 매몰비용 청구 소송
  • 강정민 변호사/법무법인 영진
  • 승인 2015.12.09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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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 905호 검사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거 보세요. 진정인들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입니다. 여기 룸살롱 맞죠. 시간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이래도 업자들에게 돈 받은 게 아니라고 시치미 뗄 겁니까?”

수사계장이 김현수를 윽박지르고 있다. 벌써 5시간 넘게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 글쎄, 술은 얻어 먹었어도 돈은 받지 않았다니까요.”

“이 양반이 안 되겠네. 그럼 이건 뭐예요. 부인이 임플란트를 했는데 현금으로 천삼백만 원을 지급했더군요. 이렇게 큰돈이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내가 이래봬도 중학교 윤리 선생님이었습니다. 내 지금까지 크게 잘못한 일 없이 살았고, 행여 조합일 하면서 꼬투리 잡힐까봐 조심조심 했습니다. 술이야 하도 산다고 졸라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얻어먹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니까요.”

“정말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조합장들 열이면 열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조사하다 보면 결국 다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밝혀지면 그때는 국물도 없습니다.”

7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온 김현수로서는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40대 전후로밖에 안 보이는 수사계장에게 온갖 수모를 당한 것이다. 평생 이런 모멸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 그야말로 애처로웠다.

다음 날 김현수는 집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했다.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조합사무실과 집이 압수수색을 당한 뒤로는 조합원들이 자꾸 손가락질을 하고 슬슬 피하는 것만 같았다.

김현수는 가급적 집에서 모든 일을 해결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겠지…….’

2013년 11월 7일 김현수의 집.

김현수가 돋보기를 쓴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부재중 전화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김현수는 핸드폰을 진동으로 설정해 두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없고 맨날 나쁜 소식뿐이니 벨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지기 때문이었다.
눈에 익은 번호가 찍혀있다. 검사실이다.

‘뭔 일이래?’

김현수가 꺼림칙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마음 같아서는 회피하고 싶지만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네. 905호 검사실입니다.”

“저, 김현수입니다.”

“아, 예. 김현수 씨. 아까 전화했더니 안 받으시더라고요.”

“진동으로 해 두어서 몰랐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별일 아닙니다. 월요일 날 사모님이랑 같이 오시라고요.”

“집사람은 왜요?”

“참고인으로 조사해 보라는 검사님 지시가 있어서요.”

“뭘 조사하시겠다는 건지?”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같이 오시면 됩니다. 같이 오실 수 있으시죠? 아니면 저희가 정식으로 소환장을 보낼까요?”

“아닙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아, 예. 그럼 월요일 날 뵙겠습니다.”

핸드폰을 든 김현수의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왜 집사람을 데려 오라는 거지. 임플란트 때문에 그런가? 그나저나 이 사람 많이 놀랄 텐데 뭐라고 하나.’

2012년 9월 25일 조합사무실.

“민 회장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현수가 축 늘어진 얼굴로 민익선의 얼굴을 쳐다본다.

백두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아직 가계약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백두건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나도 죽겠습니다. 내일 모래가 추석인데 먹고 죽으려고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네요.”

대답하는 민 회장의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다. 2012년 8월 27일 시공사 선정총회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현장마다 미분양이 속출했고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한 할인분양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었다.

신도시 개발과 보금자리 주택으로 공급과잉 우려가 초래되면서 국민들이 아파트 구입을 보류하고 관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 3. 20. 〈국민임대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보금자리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를 지정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와 근교에 보금자리주택지구가 지정되면서 공급과잉우려가 현실로 불거진 것이다.

신도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도시에 막대한 물량을 쏟아부은 시공사들은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공사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현장들 또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시공사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자금을 동결시켰습니다. 사업비는 고사하고 조합운영비까지 중단시킨 현장들이 많습니다. 기성금도 못 받은 상태에서 매달 월급은 줘야하고 참, 어쩌라는 건지.”

사실이었다. 민익선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들어가 있는 현장마다 모두 멈춰 선 것이다. 많지 않은 직원이지만 그나마 절반은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공사도 시공사지만 복병이 더 큰 문제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시공사 선정총회 하루 전날인 2011년 8월 2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주민투표 참여율이 25.7%로 개표 기준 33.3%에 미달하는 바람에 투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사퇴한 것이다.

순식간에 보궐선거 정국으로 전환되었고 2011. 10. 26. 실시된 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전면 철거 전면 신축이라는 기존 재건축재개발사업방식에 회의적이었다. 기존 생활터전을 보존하면서 정비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야당들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재건축재개발정책으로 표몰이에 성공한 여당에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했다.

마침 아파트분양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재건축재개발 반대 여론이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야당은 출구정책을 입안하여 밀어붙였고 2012. 2. 1. 도정법이 개정되었다.

도정법 제16조의2(조합 설립인가등의 취소) ① 시장·군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추진위원회 승인 또는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하여야 한다.
2. 조합설립에 동의한 조합원의 2분의 1 이상 3분의 2 이하의 범위에서 시·도조례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동의 또는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로 조합의 해산을 신청하는 경우

개정법률 공포문에 적시된 개정이유에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최근 주택재개발사업 등 정비사업이 부동산 경기침체, 사업성 저하 및 주민 갈등 등으로 지연·중단됨에 따라 공공의 역할 확대, 규제완화 및 조합운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통한 정비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지원하고, 사업 추진이 어려운 지역은 주민의사에 따라 조합설립인가 등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며, 정비사업이 일정기간 지연되는 경우에는 구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전면 철거형 정비방식에서 벗어나 정비·보전·관리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방식을 도입하는 등 도시 재정비 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임.

서울시 의회는 2012. 7. 30. 서울시정비조례를 개정하여 출구정책 세부규정을 신설하여 출구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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