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위 동의서, 정비기본계획 공람·공고 후 징구해야
추진위 동의서, 정비기본계획 공람·공고 후 징구해야
  • 심민규 기자
  • 승인 2008.04.10 0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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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16:06 입력
  
수원지방법원 무효 판결 파장
 
전문가 “현 정비업체 선점작업에 철퇴 판결”
의왕시 등 동의서징구 처리기준 마련 ‘고심’
 
재개발 사업에서 추진위원회 승인을 위한 동의서 징구는 언제부터 가능한 것일까?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소한 공람·공고 후에 동의서를 징구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추진위 승인 동의서 징구시점에 관해 비교적 구체적인 시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그동안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아 논란이 됐던 동의서 징구시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며 “정비업체들이 구역선점을 위해 과도하게 동의서를 징구한 것에 대해 법원이 제지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각 시에서는 추진위 승인 동의서 징구시기에 대한 처리기준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정비기본계획 공람공고를 마친 의왕시의 경우 별도의 처리기준을 마련해 각 구역별로 동의서 징구시기를 정하는 등 이번 판결로 인한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수원지방법원 제1행정부(판사 여훈구)는 지난 1월 16일 수원시 ‘115-8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 주민자치추진위원회’가 수원시장을 상대로 낸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처분 소송에서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해 주민자치추진위원회 측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지법은 “기본계획이 공람공고 등을 거쳐 외부로 공표되기 이전까지는 정비예정구역의 범위조차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동의의 대상이 되는 토지등소유자가 존재할 수 없으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3조의 규정은 다수의 추진위원회의 난립 및 시공자 선정과 관련해 각종 비리 발생을 방지하는데 입법취지가 있다”며 “기본계획안조차 외부로 공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위원회 설립을 위한 동의서의 징구를 허용할 경우 재개발사업 등이 조기에 과열될 뿐만 아니라, 동의서를 징구할 당시 막연히 추정한 정비예정구역의 범위 등과 실제로 공표된 내용이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 불일치할 경우 커다란 혼란이 초래되는 등 〈도정법〉 제13조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와 같이 징수한 동의서의 효력을 인정할 별다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람·공고 이전에 받은 동의서는 추진위원회 설립에 관한 동의서의 효력이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즉 최소한 기본적인 계획이 외부로 공포되는 공람·공고 이후에 추진위 동의서를 징구해야 효력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법무법인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그동안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았던 추진위승인 동의서의 징구시점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재개발 사업은 주민들의 재산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최소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후 사업을 시작해야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수원시는 패소 판결에 대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현 〈도정법〉상 동의서 징구시기에 관해서는 명문화돼 있지 않으므로 관할 인·허가청의 재량에 따라 인정돼야 한다”며 “나아가 공람·공고 전에 동의서를 걷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철회가 가능한데 효력이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는 고등법원에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업계의 한 전문가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정비업체들의 과도한 동의서 징구에 대해 법원이 제지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수원시 이외에 기본계획을 수립한 다른 시의 경우에도 공람·공고 전에 동의서를 징구한 곳에서 이와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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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최소화 ‘급급’… 기준마련도 고심
 
■ 현장 반응
 
이번 수원지법 판결과 관련해 이미 공람·공고 전에 징구한 동의서를 인정한 시와 추진위에서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기본계획을 고시한 C시의 추진위에서는 때늦은 추가 동의서 징구에 한창이다. 이 추진위 관계자는 “한 구역에서 한 개의 추진위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전국 대부분의 재개발구역에서 기본계획 공람·공고 전에 동의서를 걷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번 판결로 혹시 모를 반대파의 소송에 대비해 동의서를 추가로 걷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 관계자도 “동의서 징구시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공람·공고 전에 걷은 동의서라 할지라도 암묵적으로 인정을 했던 게 사실”이라며 “만약 우리시에서 이같은 소송으로 추진위승인이 취소될 경우 기존 추진위에게 추가 동의서 징구 절차를 거쳐 우선적으로 추진위 승인을 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추진위승인 취소 사건은 모호한 법 규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이번 판결로 재개발구역에서 진통을 겪게 되겠지만 비교적 구체적인 동의서 징구시기가 결정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이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유권해석, 규정, 규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시기나 방법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의 영향에 따라 최근 기본계획 공람·공고를 마친 의왕시는 동의서 징구시기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정비기본계획안이 도 심의중인 것으로 알려진 의왕시는 지난달 26일 ‘주택재개발·재건축·도시환경정비 처리기준’을 마련하고 ‘추진위원회 구성·승인시기 및 업무처리기준’을 별도로 정했다. 이 업무처리기준에는 향후 현재 심의중인 정비기본계획에 반영된 12개 예정구역별로 동의서 징구 기준일과 징구 방법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특히 각 구역별로 징구기준 날짜까지 설정하는 등 이번 판결과 같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부분 신경 쓴 모습이다.
 
의왕시청 도시정비과의 구홍서 계장은 “수원시와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같은 처리기준을 마련했다”며 “향후 기본계획이 고시되고 사업을 추진하는 구역에 대해서는 시의 실정에 맞는 기준과 방법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처리기준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일부 주민들이 사업 추진이 느려진다며 항의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동의서 징구시기와 방법을 정하지 않아 이번 사건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오히려 사업이 더 더뎌지고 주민들간의 혼란이 일 수 있다”며 주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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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체 과욕이 禍 불러
 
■ 배경은
 
이번 추진위승인 취소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비업체가 구역 선점을 위해 무리하게 동의서를 징구하면서 예견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력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정비기본계획이 공람도 되기 전에 미리 예정구역에 포함될 구역에서 과도하게 동의서를 걷는 것에 대해 법원이 철퇴를 내렸다는 것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재건축·재개발구역은 사업가능구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본계획이 공람되기 전에 정비예정구역을 파악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며 “서울, 수도권 같은 인기 지역의 경우 기본계획 공람·공고 전에 누가 먼저 들어가 동의서를 많이 확보하는가의 싸움이다”고 말했다. 결국 재건축·재개발이 될 만한 구역에 들어가 동의서를 많이 확보하는 쪽이 협력업체로 선정될 공산이 커 무리해서라도 동의서를 징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정비업체가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될 구역에서 미리 동의서를 걷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공란으로 비워둔 채 ‘백지’ 상태의 동의서를 징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내용이나 날짜 등을 기입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인감증명서 역시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여러 장의 인감증명서를 받아 놓은 뒤 필요에 따라 사용용도를 기입해 넣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비업체 대표는 “사업성이 좋은 구역의 경우 공람·공고 이전부터 동의서를 걷는 정비업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모든 정비업체가 그런 식으로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공람·공고 전에 동의서를 걷을 경우 정확한 사업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사업계획조차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단법인 주거환경연구원의 엄정진 팀장은 “추진위원회의 설립을 위한 동의서는 사업초기에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을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며 “빠르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명목하에 계획도 없는 정비사업에 참여할 경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토지등소유자들은 재산권이 걸린 문제인만큼 정비기본계획 고시 후 믿을 수 있을 만한 자료를 토대로 수립된 계획을 따져보고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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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람·공고 전 받은 동의서 효력 없어
 
■ 판결이 나기까지
 
수원 115-8구역은 지난 2006년 9월 고시된 2010 수원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반영된 구역이다. 수원시는 지난 2006년 2월 정비기본계획을 수립, 주민 공람·공고를 실시했으며 2006년 4월 관련기관과 협의의견 및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한 뒤 정비기본계획안을 재 공람·공고했다. 이후 2006년 9월 115-8구역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0 수원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했다.
당시 이번 판결의 참가인인 115-8구역 추진위원회는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 총 1천777명 중 공람·공고 전에 징구한 동의서 139명의 동의서를 포함해 1천13명의 동의(동의율 56.95%)를 받아 2006년 9월 27일 시에 추진위원회 승인신청을 했다. 이에 시에서는 115-8구역 내의 토지등소유자자 총 1천794명 중 1천8명으로부터 동의서를 징수·제출해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인 56.18%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판단, 같은 해 11월 17일 115-8구역 추진위원회 설립을 승인했다.
 
한편 원고인 조합설립주민자치 추진위원회 측은 기본계획이 수립·고시되기 이전에는 정비예정구역의 범위가 확정될 수 없으며 토지등소유자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동의의 대상이 되는 토지등소유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동의서의 무효를 주장했다. 나아가 주민자치 추진위원회는 공람·공고 전에 걷은 동의서는 가칭 추진위가 임의로 설정한 예정구역이므로 공람·공고에 따라 실제로 결정·고시된 면적, 토지등소유자의 수가 차이가 발생했으므로 동일한 추진위 구성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고시 전에 걷었다 하더라도 공람·공고 등을 통해 공포되고 본질적인 부분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동의서는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공람·공고 이전에 받은 동의서에 대해서는 원고의 주장대로 효력이 없다고 판시, 결국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139명의 효력이 없는 동의서를 제외하면 동의자수는 총 869명으로 전체 토지등소유자 1794명의 과반수(898명 이상)에 미치지 못해 추진위 승인 취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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