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리모델링 정책 (상) 표준안부터 마련하라
거꾸로 가는 리모델링 정책 (상) 표준안부터 마련하라
  • 김병조 기자
  • 승인 2008.03.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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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리모델링 정책  (상) 표준안부터 마련하라
 
  
시장은 갈수록 커지는데 제도가 못 따라가는 꼴
2000년 재건축 시장과 닮은 꼴… 출혈경쟁 예고
정부서 상황 악화 방조… 구체적 기준 마련 시급

 
리모델링 사업 전반에 대한 표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수주처가 증가하는 등 시장의 외형적 규모가 팽창하면서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점 및 한계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까지 각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 및 한강변을 시작으로 주요 수도권에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양적 팽창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수주한 아파트단지에서는 그동안 잠복해 있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의 근본적 이유를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제도 미흡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민들 리모델링 아직도 모른다=제도 개선이 이뤄지며 각종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리모델링에 대한 개념은 일반 주민에게까지 깊숙이 스며들지 못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인테리어와 리모델링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리모델링 개념에 대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재건축 개념에 따른 혼란까지 덧붙여져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심지어 리모델링에 대해 ‘추첨에 의한 신규 동호수 배정이 가능하다’, ‘일반분양이 있다’, ‘수직증축이 가능하다’는 등 오해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주민 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리모델링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특히 연령대가 높은 분들일수록 인테리어와 재건축, 리모델링의 개념이 짬뽕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 분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커다란 난제”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이같은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경우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하더라도 향후 동의서 철회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부 리모델링 단지들에서는 리모델링 동의서 철회 문제가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동의서 철회가 재건축 기대감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리모델링에 대한 기초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 사업 초기 동의서를 제출했다가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당초 생각하던 것과 차이가 발생해 철회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차적으로는 동의서 제출할 당시에 충분한 사전지식을 통해 진행했어야 한다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지만 홍보 및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정부나 지자체 역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리모델링, 재건축과 닮은 꼴=사업 진행 구조를 살펴보면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닮은꼴이다. 구분소유자들이 그들의 대표기구인 조합을 구성해 사업을 진행하며 건설사와 함께 사업을 추진한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공동주택의 구분소유자들로 이뤄진 조합과 조합원은 사업에 문외한일 가능성이 높다. 그에 반해 건설사는 조직과 기술력 등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협상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위주로 사업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2000년 초반에서 진행된 재건축에서의 조합과 건설사 간의 관계와 같다. 2000년 초반 재건축의 경우에도 사업 추진을 위한 법 근거는 <주택건설촉진법>과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유일했다.
 
복잡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비한 제도적 환경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법 규정 및 절차의 문제, 행정청의 인허가 문제, 조합 내부 규정 등의 필요성 제기, 표준 계약서의 필요성,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 셀수 없을 정도다. 그 결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라는 절차법이 생겨났으며 표준 정관 및 추진위 운영 규정, 표준 계약서 등과 함께 시공자 선정 기준까지 그동안 혼란스럽던 재건축 시장에 필요한 기준들이 정립됐다.
 
 현재의 리모델링 또한 2000년 초반의 재건축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향후 재건축 시장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점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은 최종 결과물은 다르지만 공동주택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측면에서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면서 “2000년 초반 재건축 시장에 발생했던 많은 문제점들이 리모델링 시장에서도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건설사의 사업 주도 우려된다=많은 문제점 중의 하나가 건설사의 과도한 수주경쟁 및 사업추진이다. 중요한 입지에 있는 대형 단지의 경우 건설사들은 수많은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수주하고 싶어한다. 2000년 초 재건축 시장에서 벌어졌던 수주 형태가 최근 리모델링 시장으로 고스란히 넘어오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에 전문성이 없는 추진위 측에서 대개 턴키형태로 설계와 시공을 함께 건설사 측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건설사 측에서 밝히는 턴키 방식의 장점은 전문가 그룹의 협의 하에 설계와 시공이 진행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고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작 사업의 주인인 조합이 사업추진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리모델링 사업의 경우 더욱 주민들의 의사가 중요하게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골조가 그대로 있어 기존의 생활환경이 중요시 되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최소 십수년 동안 해당 구조 형태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그 아파트에 대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리모델링의 경우 주민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면서 “건설사 위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주민들의 목소리가 차단될 가능성이 있어 의사결정 과정시 조합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계 전문가에 따르면 리모델링 사업에 있어서의 가장 좋은 설계안을 마련하는 방법은 시공자를 선정하기 전에 설계사를 조합에서 직접 계약하는 것이다. 조합과 설계사가 머리를 맞대고 미리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확정 설계안을 작성해 추후 이 설계안에 대해 적정한 공사비로 도급공사를 해 줄 건설사를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설계 전문가는 “이 같은 방법이 가장 좋지만 자금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시공자를 선정하기 전에 설계사와 계약해 설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운영 자금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조합의 자체 조달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악화 상황 방조하는 정부=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리모델링에 대한 전반적 제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향후 리모델링 제도 정비 가능성 여부에 대해 “아직 신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아 내부적으로도 정확한 방향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0년 초 재건축 상황과 현재의 리모델링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정부 관계자들도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2000년 초 재건축에서의 시행착오의 전철을 또 다시 밟게 하는 것은 방관을 넘어서 일종의 방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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