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지위판결 ‘무효’서 ‘각하’로 되면…
시공사 지위판결 ‘무효’서 ‘각하’로 되면…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7.06.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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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지위판결 ‘무효’서 ‘각하’로 되면…
 
  
지위 인정여부 판단기준 여전히 불투명
서울·부산 등서 잇따라 ‘각하’ 판결
조합정관에 포함하는 게 그나마 대안
 

 

 
시공사 지위 인정여부에 대한 판결 추세가 무효에서 각하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무효에서 각하로 판결이 바뀌더라도 여전히 지위 인정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나마 조합정관에 시공사 지위 인정 여부에 대한 별도의 문안을 포함시키는 게 대안인 상황이다.
 
▲2006년 9월 흑석동 무효 판결=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7민사부(부장판사 김건수)는 권 모씨 등 11명이 서울 동작구 흑석동 모구역 추진위를 상대로 제기한 ‘주민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에서 “시공사의 선정은 추진위원회 또는 추진위원회가 개최한 주민총회의 권한이 아니라 향후 설립될 조합 총회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추진위원회 주민총회에서 선정한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난 2005년 6월 추진위 승인을 받은 흑석동 모구역 추진위는 같은 해 11월 토지등소유자 183명 중 94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총회를 개최, 단독 입찰한 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 있다. 이에 권 모씨 등은 “시공사가 선정되면 향후 재개발사업 추진과 관련해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이나 위험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흑석동 모구역 추진위는 “시공사 선정에 관한 결의를 하더라도 향후 설립될 조합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며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유효하거나 적절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부적합한 소”라고 주장하며 맞섰다. 하지만 법원은 시공사 선정은 무효라며 결국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6년 12월 갈현동 각하 판결=하지만 지난해 12월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부장판사 신성기)는 같은 사안을 두고 무효가 아닌 각하 판결을 내렸다.
 
임 모씨 등 7명이 서울 은평구 갈현동 모구역 추진위를 상대로 제기한 ‘주민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에서 법
원은 “시공사 선정 결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조합이나 조합원 총회가 반드시 위 결의에 구속돼 같은 회사를 시공사로 선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시공사 무효확인을 구하는 부분은 원고들의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이나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어 확인의 이익이 부적합하다”며 각하 판결한 바 있다. 무효 판결에서 각하 판결로 바뀐 것이다.
 
지난 2005년 2월 추진위 승인을 받은 갈현동 모구역 추진위는 같은 해 5월 주민총회를 개최, S사와 G사의 컨소시엄인 드림사업단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 있다.
 
▲2007년 4월 부산 대연동 각하 판결=올해 4월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제1민사부(부장판사 고규경) 역시 같은 사안을 두고 무효가 아닌 각하 판결을 내렸다.
 
한 모씨 등 16명이 부산 남구 대연동 모구역 추진위를 상대로 제기한 ‘주민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에서 법원은 “시공사 선정 결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같은 회사를 시공사로 선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며 “만약 향후 설립될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결의에 무효의 원인이 있다면 그 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하면 될 것”이라고 마찬가지로 각하 판결했다.
 
지난 2006년 7월 추진위 승인을 받은 대연동 모구역 추진위는 같은 해 8월 토지등소유자 1천330명 중 781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총회를 열고 단독입찰한 H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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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 선정해야
 
■지위 논란 일지
 
시공사 지위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게 된 것은 2005년 3월 18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통해 재개발의 시공사 선정시기에 대한 규정이 사라지면서부터다. 이후 이런 혼란은 2006년 8월 24일까지 계속된다.
 
2005년 3월 18일 개정된 <도정법> 제8조에 따르면 “주택재개발사업은 조합이 이를 시행하거나 조합이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시장·군수, 주택공사 등,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한 건설업자, <주택법>에 의해 건설업자로 보는 등록사업자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을 갖춘 자와 공동으로 이를 시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재개발은 재건축과 달리 입주자대표회의 등 주민의견 수렴기관이 없고, 초기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있어 재개발의 경우 공동시행을 도입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시공사 선정시기를 규정한 제11조에서 재개발이 삭제됐다.
 
이처럼 시공사 선정시기 규정이 사라지면서 서울, 부산, 대구 등의 재개발 추진위들은 공동시행자 선정 또는 시공사 선정의 건을 상정해 시공사 선정에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건교부의 엇갈린 유권해석도 이런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현재 재개발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법이 개정·시행되고 있다”면서도 “시공사 선정시기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던 시기에 시공사를 선정했던 재개발사업장의 경우 명확한 법 해석이 나올 때까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시장혼란의 책임에서 건교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조합설립인가를 목전에 둔 지역들의 경우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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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동일 시공사 선정할 의무는 없다”
 
■부산 대연동 판결에 담긴 뜻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대연동 모구역 추진위를 상대로 한 모씨 등 16명이 제기한 ‘주민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에서 “추진위원회 주민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했다고 하더라도 향후 조합설립 후 반드시 같은 회사를 선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며 “시공사 선정 지위 여부에 대한 확인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 판결했다.
 
당시 소송을 제기한 한 모씨 등 16명은 “시공사의 선정은 추진위 주민총회의 권한이 아니라 향후 설립될 조합 총회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봄이 상당하기 때문에 추진위 주민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결의는 무효”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무효가 아닌 각하 판결을 내렸다. 다시 말해 추진위 단계에서는 시공사 선정 결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향후 설립될 조합에 구속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는 시공사 지위 여부에 대한 유·무효 판결을 구할 이익이 없다는 얘기다. 소송에 대해 법원이 재판심리를 배척하겠다는 것이다.
 
각하는 행정법상으로는 행정기관이 신청서·원서·신고서·심판청구서 등의 수리(受理)를 거절하는 행정처분을 말한다. 소송법상으로는 당사자의 소송(절차)상의 신청에 대해 법원에서 부적법(不適法)을 이유로 배척하는 재판을 가리킨다. 본안재판이 아닌 형식재판 또는 소송재판으로서, 소송요건의 흠결이나 부적법 등을 이유로 본안심리 자체를 거절하는 재판이며, 본안심리 후 그 청구에 이유가 없다  청구를 배척하는 기각(棄却)과 구별된다.
 
이에 반해 무효는 당사자가 의욕한 법률행위의 효력이 처음부터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절차상의 하자 때문인 경우와 내용상의 하자 때문인 경우가 있다.
 
실제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연동 모구역 추진위가 시공사 선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장차 설립될 조합원총회에서 추인받지 못하거나 조합원총회에서 다른 시공사를 선정하면 종전의 시공사 선정행위는 효력을 잃고 조합에 승계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추진위원회가 개최한 주민총회에서의 결의는 향후 설립될 재개발조합 또는 조합원총회에 대한 구속력을 가지지 않으므로 추진위 주민총회에서 시공사 선정결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재개발조합이나 조합원총회가 반드시 그 결의에 구속돼 같은 회사를 시공사로 선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추진위의 구성원이 아닌 장차 구성될 재개발조합의 조합원 자격을 구비했을 뿐인 원고들이 추진위의 시공사 선정결의로 인해 원고들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향후 설립될 재개발조합의 조합원총회에서 한 시공사 선정결의에 무효의 원인이 있다면 그 결의의 무효의 확인을 구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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