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사업 '불소 오염토' 처리비용 ‘눈덩이’
재개발·재건축사업 '불소 오염토' 처리비용 ‘눈덩이’
… 사업지연·공사비 증가 ‘악순환’… 대책은 없나
  • 최진 기자
  • 승인 2024.02.21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지반 대부분 화강암
서초·강남구 등 불소오염

방배13구역 600억 부담
조합원 1인당 4천만원선
청담 삼익도 400억 지출

평가기준 선진국보다 10배
업계 “합리적 기준 절실”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불합리한 불소 오염토 판정기준이 정비사업에 치명적인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착공 전 오염토 실질조사에서 불소가 검출되면 예상치 못한 수백억원의 정화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정화기간에 따라 공사기간도 지연되면서 추가적인 공사비 인상도 가중되기 때문이다. 또 예상치 못한 공사비 증가는 분양가에 반영돼, 조합원들과 수요자들에게 막대한 부담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비업계는 선진국 대비 10배나 까다로운 불소 오염토 판정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환경업계도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불소 오염기준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부도 올해 하반기부터 오염토 개선안을 적용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부 환경업계에서는 현행 기준을 준수하거나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화비용·사업지연·공사비인상 삼중고… 정비사업 막대한 리스크

서울 서초구 방배13구역은 지난해 11월 토양오염조사에서 오염 기준치를 초과하는 불소가 검출돼 사업추진에 발목이 잡혔다. 종교시설 보상 문제를 매듭지으며 힘들게 이주절차를 완료했는데, 철거를 위한 토양오염조사에서 갑자기 불소 화합물이 검출되면서 600억원의 정화비용을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상황이다. 산술적으로 조합원 1인당 4,000만원 가량의 정화비용이 부담되는 것이다.

인근 방배6구역도 오염토가 발견되면서 정화비용으로 350억원을 부담해야 했다. 정화작업이 길어지면서 착공 시점도 6개월가량 지연돼, 당초 예상했던 2025년 준공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방배동 재건축 대장주로 꼽히는 방배5구역도 지난 2021년 오염토 문제가 불거지면서 760억원이라는 막대한 정화비용을 부담함은 물론, 조합집행부 교체까지 겹치면서 사업이 1년간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방배동 일대에서 불소 오염토 문제가 지속되면서 인근 정비사업 조합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방배동은 총 6개 구역에서 단독주택 재건축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4개 단지에서 재건축사업이 진행중이다. 

이들 지역은 규제지역에 속해 분양가 책정이 제한적이라서 수백억원의 정화비용이 발생하면 조합원들이 부담을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국내 오염토 안심구역 없어… 전국 토양에 잠재된 ‘불소’

오염토 정화문제는 철거·착공을 준비하는 모든 정비사업장들에게 지뢰로 인식되고 있다. 강남구 청담삼익 재건축사업도 지난 2021년 철거에 돌입했다가 갑자기 오염토가 발견되면서 정화비용으로 약 400억원을 부담해야 했고, 착공지연 등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결국 총공사비가 70%가량 증가했다.

인천 미추홀구 우진아파트는 최근 준공을 앞두고 오염토 정화비용 30억원을 추가로 지출해야 했다. 

환경업계는 서울 △서초구 △강남구 △동작구, 인천 △미추홀구, 고양시 △동구 등을 대표적인 불소 오염지역으로 꼽고 있지만, 국내 토지환경 대부분이 불소 함유량이 높은 화강암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정비사업이 활성화될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오염토 정화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경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화강암이 대부분인 국내 토지 성질의 경우 화강암 자체가 불소를 함유하기 때문에 특별한 오염사례가 없어도 일반적인 토양에서 평균 500~600㎎/㎏ 정도의 불소가 검출된다. 특히, 지난 1960~70년대에 산을 헐어서 땅을 매웠던 한강 이남지역과 인천 미추홀구 등은 일부 지구에서는 자연발생 불소 함유량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종락 환경위해성예방협회장은 “지난해 불소정화에 사용된 사회적 비용이 7,600억원에 육박하는데, 이는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발생한 정화비용 5,800억원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라며 “정비사업이 활성화되고 주택공급이 활성화되면서 오염토 정화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에 제도개선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염토 나오면 사업 백지화”… 리모델링 업계도 위기감

국내 토양오염 조사는 불소를 비롯해 총 23가지 화합물을 토지사용 목적에 따라 1·2·3지역으로 나눠 오염기준을 구분하고 있다. 1지역은 논·밭·목장 등이며 주거지역은 임야·염전 등과 함께 2지역으로 분류된다.

불소의 경우 1·2지역 모두 400㎎/㎏이 오염기준이다. 국내 토양 불소검출 평균이 500~600㎎/㎏인 경우라면 전국적으로 토양 내 불소검출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토양 내 불소검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공동주택 리모델링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업성 문제가 예민한 리모델링의 경우 오염토가 발견되면 막대한 정화비용으로 인해 사업 자체가 좌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염토 실질조사는 이주가 끝나고 철거 단계부터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리모델링의 경우 정화비용 부담과 사업지연, 공사비 인상뿐 아니라, 사업백지화에 따른 매몰비용 문제까지 심화될 수 있다.

서정태 서울리모델링주택조합 협의회장은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경우 철거·착공 과정에서 오염토가 발견되면 정화비용을 감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이는 사업을 전면 중단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오염토, 그중에서도 특히 곳곳에서 악재로 여겨지는 불소 오염기준을 정부가 조속히 정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