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일규 변호사>정비구역지정 취소소송의 사회적 비용
<시론 박일규 변호사>정비구역지정 취소소송의 사회적 비용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9.10.1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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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5 11:31 입력
  
박일규
H&P 법률사무소 변호사
 

재건축사업에서 촉발되었던 조합설립 무효소송이 역병이 돌듯 서울, 부산은 물론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면서 급기야 재개발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재건축 이외의 정비사업까지 무차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으로 정비사업의 원활한 진행만을 갈망하던 조합원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 와중에 민사소송을 통한 조합설립 무효의 주장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최근 선고됨에 따라 전국의 정비사업 조합들이 조합설립 무효소송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다시 유행의 조짐을 보이며 서서히 번지고 있는 소송형태가 등장했으니 바로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소송’이 그것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일부 토지등소유자들이 자신의 토지나 건물이 정비구역에 포함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정비구역지정처분의 취소를 구한 사례가 있긴 했다. 하지만 행정계획의 성격을 지닌 정비구역지정처분은 행정청의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대부분 기각되어 정비구역을 지정한 행정당국이나 추진위원회, 조합 등에게 커다란 위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2008년 10월 29일 수원지방법원이 안양에 소재하는 한 주거환경개선사업구역에 대하여 정비구역지정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함에 따라 사정은 급변했다. 위 판결에서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의 사유로 인정된 내용이 그야말로 충격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원지방법원의 재판부는 “노후·불량건축물의 비율만으로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정비구역지정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 〈경기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 제4조제1호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별표에서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시행령 별표에서 요구하는 정비구역지정 요건을 오히려 완화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무효인 것은 물론 노후·불량건축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도정법〉 시행령이나 조례에서 규정하는 건축연수만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로 노후·불량건축물의 개념을 규정한 〈도정법〉 제2조제3호다목 소정의 ‘도시미관의 저해, 건축물의 기능적 결함,  부실시공 또는 노후화로 인한 구조적 결함 등으로 인하여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인지’ 여부가 개별 건축물마다 실사를 통해 확정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수원지방법원의 판단이 최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 의해 그대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안전진단의 실시가 의무화 되어 있는 주택재건축사업을 제외한 주택재개발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에 있어 정비구역의 지정은 〈도정법〉 시행령과 조례가 정하는 건축연수만을 충족하면 노후·불량건축물로 인정되어 정비구역을 지정해 왔고, 철거가 불가피한 건물인지 여부에 대한 개별 건축물에 대한 실사를 실시한 사업장은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위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대로 철거가 불가피한지 여부를 개별 건축물마다 실사해야 한다면 전국의 어느 사업장도 정비구역지정 취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며, 다만 정비구역취소 소송의 쟁송기간인 90일을 넘긴 사업장만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개별 건축물에 대한 실사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개별실사의 결과 노후·불량건축물의 비율이 정비구역지정을 가능하게 할 정도까지 이르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소송은 어느새 서울은 물론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현실화되고 있고, 소송을 제기하는 토지등소유자의 논거는 모두 위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판결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과연 노후·불량건축물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 철거가 불가피한 것인지 여부에 관해 개별 건축물마다 실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위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법해석은 타당한 것일까. 이는 정당한 법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사견이다. 왜냐하면 〈도정법〉 제2조제3호다목이 규정하고 있는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이라는 부분은 노후·불량건축물로 인정되기 위한 직접 요건이 아니라 시행령과 조례에 노후·불량건축물의 범위를 정하도록 위임하면서 그 위임의 한계를 설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해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기준은 정비구역지정권자 혹은 추진위원회에 직접 노후·불량건축물인지 여부를 실사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아니라 시행령 또는 조례가 노후·불량건축물의 범위를 정할 때 입법의 지침으로 작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다행스럽게 지난달 24일 필자가 소송을 수행했던 부천의 어느 재개발구역에 대한 정비구역지정처분 취소소송에서 인천지방법원의 재판부는 위와 같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 위와 같은 필자의 해석을 수용해 주었다. 해당 재개발구역은 물론 동병상련의 다른 정비사업구역을 위하여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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