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한글과 한자… 궁색한 대립
<김의원의 국토이야기>한글과 한자… 궁색한 대립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8.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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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18:28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한글전용론자가 아님을 전제로 이글을 쓴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현재까지 한글전용(한자폐지)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해왔다. 한자폐지론이 등장한 것은 1907년 주시경 선생에 의해서였다. 1945년에는 이극로 선생의 건의에 따라 미국 군정에 의해 한자사용 폐지가 결의되었다. 이때 초·중등학교에서 교과서를 한글로 편찬했는데 배꽃 계집 크게 배움터(이화여자대학교)와 날틀(비행기)이란 낱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 아닌가 싶다.
 

그후 1948년에는 정부수립과 동시에 한글전용법이 제정되었다. 1970년에는 교과서에 있던 괄호안 한자마저도 모조리 빼버렸다. 그래서 山村·散村을 한글로 적을 때 혼란이 생긴다 해서 山村을 山地村으로 고쳐 한글로 적는 등 궁색한 짓들을 했었다. 뿐만 아니라 고3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선언문까지도 ‘吾等은 玆에’를 ‘오등은 자에’로 표기하였다. 그래서 그때 ‘오등이 어째서 우리들이 되느냐? 다섯째지?’하는 식의 농담이 생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해방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표음파(表音派)가 더 강했다는 말이 된다.
지금 한문을 쓰는 나라는 중국(대만 포함), 우리나라, 일본밖에 없다. 베트남은 원래 한문을 썼었으나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로마문자를 쓰게 되었다.
 
1949년 모택동은 중국을 통일하자 한문을 로마字化하는 작업을 했으나 신통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1952년에는 한자를 2천자로 제한했다. 그후 1987년에는 3천500자로 늘렸다. 이와는 별도로 1964년부터는 간자(簡字)를 쓰기 시작했다.
 
일본은 패전후 당용(當用)한자로 1천850자를 써오다가 1981년에는 1천945자로 늘이면서 당용한자를 상용(常用)한자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일본은 이 1천945자만은 여하한 인쇄물에도 한문으로 인쇄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까지 1천800자를 가르쳤을 뿐 이를 실생활에 적극 활용토록 하는 보급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말에는 순수한 우리말이 24.4%, 한자말 69.3%, 외래어 6.3%라는 통계가 있다. 국어의 70%가 한문에 유래된 사실만 보더라도 국한문 혼용의 당위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예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의원’이란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議員인지 醫員인지 醫院인지 분간할 수 없다. ‘광주’라 할 때도 光州인지 廣州인지 분간이 안간다. 청주도 淸州인지 淸酒인지, 상주도 尙州인지 喪主인지 분간이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고 보니 요즘 대학생들의 한문실력이란 것은 뻔하다. 어떤 대학교수가 구두시험 때 어머니 성명을 써보라 했더니 서슴치 않고 쓰는데 개‘犬’자를 쓰더라는 것이다. 아마 태(太)씨인데 이놈의 딸이 점을 잘못 찍는 바람에 그 엄마는 암캐가 되고만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한자는 표의(表意)문자이기 때문에 한자 한자가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글자수가 많아진다. 수만개 한자를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한문의 기초로 ‘천자문’을 만들었다. 천자문은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를 모아 편성한 것인데 대개의 경우 이것만 떼면 그런대로 행세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서울의 어떤 고등학교에서 신입생에게 입학식 전에 천자문을 백번 써오라고 했더니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3년후 이들이 100여명이나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한 것을 본 후로는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말의 70%가 한문에서 온 것이어서 한문을 아는 학생은 스스로 여러 가지 용어의 문리(文理)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의 소질 유무를 막론하고 속셈, 영어, 피아노, 태권도, 미술 등 어지러울 정도로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데 차라리 천자문을 가르쳐두는 것이 후일 두뇌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글전용이 문화의 대중화와 보편화 등에 기여한 공은 매우 크다. 그러나 그 공에 못지않게 과(過) 또한 크다. 교육효과의 감퇴, 전통문화의 말살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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