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조선의 선비와 대학교수
<김의원의 국토이야기>조선의 선비와 대학교수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7.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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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16:07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상에는 5만개 가까운 직업이 있다. 직업 가운데는 이른바 자유업이란 것이 있다. 남의 간섭이나 속박을 별로 받지 않는 직종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의사, 변호사, 교수를 3대 자유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권력이냐, 명예냐, 돈이냐로 집약한다. 권력을 잡으려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고 명예를 얻으려면 교수가 되어야 한다. 돈이 탐나면 사업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도이다.
 
교수란 직업은 제자 양성이란 커다란 이점이 있다. 발랄한 20대 청년을 접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교수가 하는 일은 자기전공에 관한 책 읽는 일이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발령장 하나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스러우냐 말이다. 거기에다 1년에 5개월이란 방학이 있다. 교수는 65세 정년이란게 또한 대단한 매력이다. 의사와 변호사의 면허가 종신인데 비하면 짧은 것 같기는 하지만 다른 직종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다.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거지와 교수는 사회학적 측면에서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거지는 배가 고프면 행동을 개시하는 반면 교수는 수업시간에 따라 출근시간이 다르다. 둘째 이들은 뭔가 하나 들고 다니는 버릇이 있다. 거지는 깡통이고 교수는 가방이란다. 셋째 양자는 수입이 일정치 않다. 거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발덕을 보게 되고 노력한 만큼 수입이 는다. 그런가 하면 교수는 월급 외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 인세와 원고료를 비롯하여 학교 밖의 특강수입과 각종 자문회의비에 용역성질의 연구비 수입까지 합치면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한 수입을 올린다. 그러면서 배우, 연예인, 의사, 변호사들이 당하는 과세특례자에는 빠져 있다.
 
넷째 거지와 교수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거지가 왕초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겠지만 관료조직처럼 과장, 국장, 장관이라는 계통적 간섭은 없다. 이것은 교수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어떻게 하든, 시험점수를 어떻게 매기든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에 속한다. 이것은 마치 판사가 남의 간섭없이 소신에 따라 판결하는 것과 같이 교수들의 성역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대머리가 많은 회사중역과 군인들에 비해 교수들은 대체적으로 대머리가 적다. 이것을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학자들은 머리를 쓰기 때문에 혈액이 상승하는 까닭이고, 중역들은 호의호식 때문에 위를 혹사하고, 군인들은 주로 발을 사용하므로 혈액이 상승할 수 없어 모발에 영양공급이 안되기 때문이란 학설도 성립할 법하다.
 
왕조시대의 '선비'란 것은 학자를 뜻하는 것인데 사·농·공·상의 신분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비록 시대는 달라졌지만 왕조시대의 선비정신과 지금의 학자(스승像)를 비교하면 실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옛날의 선비는 기본적으로 사유(四維)를 갖추어야 했다. 사유란 예(禮), 의(儀), 염(廉), 치(恥)를 말한다.
 
예가 없어지면 기운다. 기울면 바로잡을 수 있다. 의가 없어지면 위태롭다. 위태로우면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염이 없어지면 전복한다. 전복하면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치가 없어지면 멸망한다. 멸망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염치(廉恥)없는 선비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왕조시대 특히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군사부일체라 하여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비록 죽음은 택할 수 있어도 살아서 욕되는 것을 더 꺼렸다. 선비는 도덕을 근본으로 삼고 문장을 말기(末技)로 삼음으로써 도덕이 높으면 과거보는 것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지장(智將)보다 덕장(德將)을 더 알아주었다.
 
실학의 시조인 성호 이익은 “선비는 덕이 닦아지지 않음과 학문이 깊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지 자기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관직에 오르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왕조시대는 선비와 선비정신이 국권을 보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한 버팀돌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데 요즘 교수들은 선비정신은 고사하고 자기 직업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가 하면 어찌나 보직(補職)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또 옛날의 선비들은 서로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감춰주는가 하면 서로의 재능을 칭찬해 주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의 교수사회는 그렇지 않다. 남이 아무리 훌륭한 저서나 논문을 발표해도 칭찬해 주는 예가 별로 없다. 교수란 직업이 자존심을 먹고 산다고는 하지만 남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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