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희의 풍수지리>말이 안장 벗는 주마탈안형… 재화·인재가 풍성
<고제희의 풍수지리>말이 안장 벗는 주마탈안형… 재화·인재가 풍성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6.0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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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16:46 입력
  
남산 정상에 있는 서울타워
서울의 돛대를 상징하는 것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대표이사
 
 
(22) 남산과 풍수지리
 
남산은 서울 도성의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른 산으로 무한히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품을 지닌 산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산에 올라 서울의 산세와 도심을 한 눈에 굽어보는 감회는 남산만이 안겨주는 각별한 감흥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남산은 어떤 문헌에도 ‘남산’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주로 목멱산(木覓山) 혹은 인경산(引慶山)이라 하였다. 이것은 도성의 남쪽에 위치한 대문에 ‘숭례문’이란 현판이 버젓이 걸려 있어도 한때‘남대문’이라 불렀던 것과 같으며, 본명 대신에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란 뜻으로 ‘남산’이라 부른 것이다.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북쪽의 북악산을 현무로 삼고, 서쪽의 인왕산을 좌청룡, 동쪽의 낙산을 우백호를 삼은 뒤 남쪽의 목멱산과 그 뒤의 관악산을 주작으로 삼았다.
 
그 결과 한양은 전후좌우의 사신사(四神砂)를 고루 갖춘 풍수적 길지가 되고, 남산은 도성으로 불어오는 한강의 세찬 바람을 막은 안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북정맥의 중조산인 북한산은 북악산을 낳았고, 자하문터널를 지난 용맥은 몸을 재차 남서진시켜 인왕산으로 솟고 숭례문에서 몸을 낮추었다가 다시 남산으로 솟구쳤으니, 남산이 있음으로 서울 중앙부가 산에 의해 둥글게 둘러싸일 수 있었다.
 
남산의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초제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고, 또 나라의 위급함을 알리던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대가 있어 국방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조선 신궁이 들어선 적도 있으나, 대한민국 수립 후 1955년에는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세워졌고, 4·19 때 시민들이 철거해 버린 뒤 김구 선생의 동상이 우뚝 섰다.
 
현재 정상에는 서울타워와 팔각정이 있고, 허리쯤에는 남산도서관과 식물원,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을 찾는다면 시류와 민심, 그리고 역사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풍수적으로 남산은 말이 안장을 벗는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의 모습이고, 서쪽 봉우리 중 바위가 깎아지른 곳을 누에머리인 잠두(蠶頭)라 부르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리고 풍수에서는 지덕을 배양시키는 비보책이 있는데, 남산이 누에머리를 닮았음으로 지덕이 발동하려면 뽕나무를 심어야 했다. 그래서 사평리(현재 잠원동)에 뽕나무를 심은 뒤 그곳을 잠실이라 불렀고, 이 뽕나무들은 궁중의 양잠에도 이용하였다. 또 남산골 샌님이란 가난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선비를 일컫는 말인데, 남산 기슭의 청학동에 그런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행(李荇)은 조선 초기에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한 분인데, 청학동에 초가를 짓고 살아서 청학도인이라 불렸다.
 
어느 날 해가 저물었는데 의정부 녹사가 보고할 일이 있어 청학동을 찾았다. 한 헙수룩한 늙은이가 낡은 옷에 나막신을 신고 아이를 안고서 동구 밖을 나서기에 녹사가 말을 탄 채 “정승께서 집에 계신가?”라고 묻자 “무슨 급한 일이기에, 내 여기 있네”라 하자 그는 놀라서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한 한강은 서울의 중심을 완만한 유속으로 관통하면서 탄천, 중랑천 등을 합쳐 북서쪽의 서해로 들어간다. 이처럼 여러 물이 모여 시가지 중심을 통과하면 풍수는 “항구에 정박한 배가 이제 막 출항하려는 행주형(行舟形)”이라 부르며, 재화와 사람이 풍성히 모여 번창할 땅이라 한다.
 
행주형의 터는 도읍의 입지로써 제일로 손꼽는다. 그 결과 서울의 풍수적 형국은 도성 내의 국세만을 판단한 한양의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에서 한강을 중앙에 두고 강북과 강남을 포괄하는 행주형으로 바뀌었고, 이것은 서울의 지기가 왕족과 고관대작을 배출될 터에서 벗어나 수많은 인재와 재물이 함께 모여들 터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서울의 풍수적 형국이 행주형인 까닭에, 배는 먼 바다로 나가야 고기를 많이 잡아오고, 또 사람과 재물을 운송한다. 그러므로 행주형은 키, 돛대, 닻을 구비해야 길한데, 만약 이 모두를 갖추지 못했다면 배가 전복되던가 또는 표류한다.
 
따라서 행주형인 청주에 철당(鐵幢)을 세웠듯이 돛대를 상징하는 키 높은 조형물을 남산 위에 세워야 부자의 기운이 증진된다. 현재 남산 정상에 있는 서울타워는 행주형의 서울에서 돛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서울의 발전을 위한 가치있는 풍수물이다. 따라서 현란한 모습으로 치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자랑스런 서울의 랜드마크 서울타워는 최신LED기술의 조명으로 시시각각 색과 패턴이 변하는 ‘빛의 예술’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다양한 미디어 아트와 함께 색다른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대동풍수지리학회 02-3473-9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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