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 교수-- 오스만의 파리 개조작업
김의원 교수-- 오스만의 파리 개조작업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4.10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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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16:20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파리의 도시문화사(2)
 
유럽의 프라이베드 침대열차에는 실내변기가 달려있다. 세면대 밑의 레버를 잡아당기면 요강이 나온다. 야간에 모았다가 변기격납고의 구멍으로부터 내용물을 레일에 헤치면 된다. 요강에 담긴 분뇨를 창 밖으로 버리면서 외쳤던 “가르데 로!”는 형태를 바꾸어 지금도 살아남아 있는 셈이다.
 
당시 파리의 도로구조는 완만한 V자형이었다. 중앙부분이 배수용 하수구였는데 하수구가 막힐 것을 염려해서 뚜껑을 씌웠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길거리에 버려진 분뇨는 갈 곳이 없어졌다. 자기집 앞 도로는 시민 각자가 청소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것도 지켜지질 않았다. 파리시 당국이 오물투기 금지령을 내린 것은 1563년의 일이다.
 
흑사병으로 분뇨처리 개선
 
창문 밖으로 분뇨를 내버리는 것은 파리만이 아니었다. 투기전의 경가가 런던에서는 불어 그대로 “가르데 로!”로 쓰여졌는가 하면 곳에 따라서는 영어식으로 “가디루∼!”란 말이 쓰여지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파리의 분뇨처리가 개선된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다. 그것은 1832년에 발생한 콜레라(흑사병)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때 사망자만도 1만9천402명에 이르렀다니 대단한 참사였다.
 
이때부터 파리시는 하수도 보급에 전력투구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보면 당시 파리 하수도 연장이 100㎞라는 기록이 나온다. 2차대전후 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는 그 후의 파리 하수도가 영상으로 나오는데 그 방대한 규모에 압도 당한다.
 
파리시내에는 6개의 철도 종착역이 있다. 세느 강북에 4개, 강남에 2개가 있다. 이들 6개의 철도역은 상호 연결이 안되어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9세기 중반에 철도부설을 할 때 그 대부분이 민영이었기 때문에 제멋대로 종착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어느 지방에서 오든 파리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6개의 철도역을 분산 설치하게 된 데는 시민들의 책임이 컸다. 파리는 각 지역마다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것을 한 개로 할 경우 파리가 해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보다도 파리시가 종착역을 지하철과 연결하는데 반대한 것은 런던 때문이었다. 1863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런던지하철은 처음부터 철도역과 연결을 했다. 덕분에 교외로의 인구유출로 도심부의 야간인구가 감소했다. 그러나 파리시 당국은 아무리 효과가 좋다 해도 런던이 하는 것은 흉내내지 않겠다는 것이 관계관들의 주장이었다.
 
파리장들의 지독한 옹고집
 
그런데 그 파리장들의 옹고집이 어느 정도냐 하면 1900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 개최가 결정되자 지하철 건설문제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파리시 당국은 지하철은 건설하되 철도역을 연결하지 않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는 물론 장래에 있어서도 연결하기 곤란한 지역을 골라 노선을 선정했다. 이 지독스러운 옹고집도 시대의 흐름에는 못이겼는지 지금 파리의 지하철은 반드시 어느 한 곳의 철도역과 연결되어 있다.
 
파리를 오늘날 세계의 파리로 만든 중시조(中始祖)는 뭐니뭐니 해도 G.E. 오스만이다. 그는 1852∼1870년까지의 19년간 세느현 지사로 있으면서 과감한 개조사업을 추진했다.
 
시데섬 안에 있는 빈민굴을 일소했고 파리중심을 동서와 남북으로 관통하는 큰 도로를 개설하기도 했다. 또한 도심부를 우회하는 간선도로와 사통팔달의 방사선도로도 그가 닦았다. 세느강 양쪽에 대하수도를 건설해서 시외 하류에서 방출하는 시설도 그의 작품이다.
 
대통령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오스만의 파리개조 계획이 당시 교외지역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파리의 중시조였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파리는 세 번의 만국박람회를 거치면서 면목을 일신했다. 최초의 박람회인 1878년에는 가로등이 선 보였고, 1889년에는 에펠탑을 낳았고, 세 번째 박람회인 1900년에는 지하철건설로 파리의 지역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유럽연합시대를 맞은 지금의 파리는 세계의 중심을 꿈꾸면서 ‘대통령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개조작업을 벌여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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