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이야기>에티켓과 일 보며 웃는 남자(17)
<해우소이야기>에티켓과 일 보며 웃는 남자(17)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8.03.1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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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7 16:43 입력
  
▲에티켓의 유래=화장실 에티켓은 사실 간단한 것이다. 제자리 제위치에 볼일을 보아 달라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화장실 에티켓도 다른 에티켓과 마찬가지로 다 유래가 있다.
 
에티켓이라는 말은 루이14세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는데, 매번 정원 손질을 할 때마다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정성들여 정원을 손질해도 어느새 누군가 화단이나 잔디 가리지 않고 짓밟아 놓는 바람에 점점 황폐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을 비롯해 궁전에서 생활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무 그늘을 찾아다니며 볼일을 보는데 그 원인이 있었다.
 
정원을 망치고 쫓겨나서 생계를 잃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정원을 손질하는 것은 아마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속을 끓이던 그 정원사는 생각 끝에 지나는 길마다 푯말을 세웠다. 이 푯말을 가리키는 말이 프랑스어로 에티켓이다. 에티켓이란 말의 어원은 ‘게시판, 설명서’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스팃켓’에서 나온 것으로, 길을 알려주는 표지, 푯말을 가리키는 말이 되면서 후에 에티켓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푯말(에티켓)에 써 있는 ‘화단에 들어가지 말 것’이라는 말에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후 푯말에 써 있는대로 들어가지 말 것이라는 루이14세의 명령이 있자, 누구든지 그 푯말에 쓰인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후 에티켓이라는 말이 ‘정식으로 행동하는 곳, 혹은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폭넓은 의미를 가진 말이 되었다. ‘화단에 들어가지 말 것, 용변은 저 곳에서!’라는 식의 푯말이 본래의 에티켓이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앉아 씩 웃는 남자의 마음=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분위기, 게다가 통쾌한 배설의 안도감까지 곁들인다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포효가 있을 만 하다. 아무래도 무수히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하루하루 지내는 생활에서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밀폐된 공간의 고독감은 삶에 일종의 여유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배설하는 행위 또한 여유로운 마음 상태를 가져다 주곤 한다. 먹었던 것을 밖으로 내보내기 직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 그러나 내보내기 시작하면 서서히 긴장감은 풀리고 아래로부터 느슨해지는 온몸의 세포와 조직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릿속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해진다.
 
여유가 생길 때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은밀한 구상을 하며 상상의 재미를 만끽하고자 할 것이다. 지지고 볶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대하는 얼굴. 그 얼굴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싶어하던 평소의 마음이 그 순간 현실을 뛰어넘어 “저 멀리 방랑의 시간으로 떠나야지”하는 역마살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 ‘마누라 죽은 남편, 뒷간 가서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남자는 남모르게 두 번 웃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모두 평소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안도감의 표현일 게다. 그런데 왜 하필 화장실에 가서 그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일까? 왜 우리 조상들은 해방된다고 하는 감정을 뒷간에 가서 터트려야만 했을까?
 
배설은 입력된 것을 출력하는 것으로 일종의 시작된 것의 끝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안도감과 여유를 갖게 되며 기쁨조차 느끼는 시간이고, 새로운 입력이 시작되기 직전이기도 하다.
 
고독감과 배설, 그리고 여유, 또 다른 시작.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모두가 이 야릇한 고독감과 안도감, 그리고 그 후 나타나는 여유로운 정신 상태, 이런 감정을 뒷간에서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료제공 : 브리앙산업  www.br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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