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위 시공자선정 무효’ 후폭풍
‘추진위 시공자선정 무효’ 후폭풍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8.03.17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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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7 11:56 입력
  
“서울·수도권서 다시 한판 붙자”… 수주 大戰
건설업계 실적 만회할 기회로… 지방은 포기
약점 찾기·비대위 후원 등 보복 수주도 예상
 
재개발 시공자를 재선정해야 하는 경우 업계는 서울·수도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지방은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모으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산·대구 등은 과감히 버리고 서울·수도권에 올인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서울·수도권에서는 ‘수성이냐 공성이냐’를 두고 업계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수주실적이 저조했던 건설사들은 이미 시공자 재선정에 대비한 새로운 수주전략을 짜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시공자 재선정이 불가피해진 마당에 수주 실적을 만회할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반면 우수 사업지를 많이 보유한 건설사들은 속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은 내부 단속이나 비대위 사전 차단 등에 주력하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가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수도권에 기존 수주 사업장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 건설사들은 사업관리의 허술함을 찾아내 약점을 공략하거나 비대위를 측면에서 지원하는 등 벌써부터 재격돌할 채비를 갖췄다. 보복수주 등 한바탕 홍역도 예상된다. 기존 수주현장을 공격받을 경우 자신을 공격했던 건설사의 현장을 또 다시 공격하는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화선에 불이 붙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걷잡을 수 없는 뇌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공자 재선정 수주전에 적극 나서겠다=서울·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건설사들과 입찰제한 등으로 수주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던 건설사들은 ‘다시 한번 제대로 붙자’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 수주담당자는 “서울·수도권의 경우 종전에는 대형건설사들이 나눠먹기 식으로 싹쓸이 수주에 나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면서 “시공자 재선정을 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했다. 이어 “당시 이들 건설사들의 사업제안서에는 공사비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며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진다면 한 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건설사 수주책임자도 “일부 추진위와 건설사가 사전에 모의한 형식적인 경쟁입찰의 경우 각종 입찰제한 사항 때문에 입찰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다”며 “서울·수도권의 경우 분양리스크 위험 등이 없고, 수주물량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결국 제살 깎아먹기로 출혈경쟁은 없다=이와 달리 제살 깎아먹기식의 과도한 출혈경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신의 현장에서 똑같이 공격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건설사 수주팀장은 “특히 사업성이 양호한 곳에서는 내심 걱정이 되기는 한다”면서도 “사실상 업계간 기득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하지 않겠느냐”고 현실론을 강조했다. 이어 “출혈경쟁이 일어날 경우 보복수주도 동시에 벌어지게 돼 있어 선뜻 나설 수 있는 건설사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기존 수주현장을 공격받았을 땐 가만히 있을 건설사도 없기 때문에 그때는 업계간 의리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적용 여부에 자금지원 어떻게 해야 하나=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부정한 청탁에 의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여한 경우 액수에 따라 최대 8개월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의 무효판결이 내려진 마당에 건설사 입장에서도 〈건산법〉 적용 여부 때문에 대놓고 자금지원을 하기가 사실상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자금지원을 중단하기도 어렵다. 기존 사업장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금지원 역시 서울·수도권과 지방에서 각각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방의 경우 이번 판결을 빌미로 자금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무기로 이용, 오히려 재개발 추진위들을 옥죄고 있는 반면 서울·수도권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양상이다. 실제로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자금지원을 끊은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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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교·차
서울·수도권 추진위, 공사비 인하 효과 기대
지방선 ‘시공자 포기할까’ 내심 속앓이 ‘끙끙’

 
시공자 재선정 절차를 밟더라도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표정은 사뭇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업성이 양호한 서울·수도권에서는 시공자로 선정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건설사들이 더 나은 당근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방에서는 기 선정된 시공자가 사업포기를 선언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서울·수도권은 시공자 재선정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지방은 그나마 선정된 시공자가 도망갈까 내심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업성 양호하다면 시공자 재선정 절차 밟는 게 유리=재개발 전문가들은 해당 사업장의 사업성만 양호하다면 시공자 재선정 절차를 밟는 게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공자 선정 당시보다 공사비 등을 낮출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시공자 재선정 절차를 밟거나 추인결의를 받더라도 기 선정된 시공자가 사업조건을 변경하면서 공사비 등을 올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조합 입장에서는 잃을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05년~2006년 추진위에서 시공자를 선정했던 시기보다 2007년~2008년 조합이 시공자를 선정했던 시기의 공사비가 오히려 저렴한 게 사실이다. 특히 지방보다 서울·수도권에서 공사비 인하폭이 상대적으로 커, 그만큼 조합이 유리했다.
 
이 전문가는 “시공자를 재선정한다면 시공자로 선정되기 위해 건설사들이 더 나은 사업조건을 제시할 것”이라며 “최근의 수주 경향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진위가 시공자를 선정한 지난 2005년~2006년에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수주할 곳이 너무 많아 실질경쟁 보다는 나눠먹기식 수주가 이뤄졌다”며 “대부분 단독 입찰형식이어서 공사비 비교나 검토 등의 작업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재선정 때 다른 시공자가 선정되면 기 선정된 시공자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의 정산문제나, 기 선정된 시공자와의 갈등 등이 문제로 남게 된다. 하지만 기 선정된 시공자를 인정하는데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조합설립인가 이후 조합원 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역시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나아가 당시 결의에 대해 무효판결이 내려지면 사업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차피 맞아야 될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얘기다. 또 형식적이나마 재선정 절차를 밟는 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부산·대구 등 시공자 포기의사에 노심초사=지방의 경우 오히려 추진위들이 시공자 붙들기에 나서고 있어 대조적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마당에 가뜩이나 기 선정된 시공자마저 사라진다면 사업추진은 사실상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공자의 자금지원 중단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시공자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역력한 모습이다.
 
부산의 한 재개발 추진위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해 부산지역 재개발사업이 완전히 꺾일 수도 있다”며 “시공자를 재선정하고 싶어도 시공자가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진위가 오히려 시공자 붙들기에 나서는 등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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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 재개발 100여곳 시공자 재선정할 판
 
■ KRBID 분석
 
추진위 때 시공자를 선정한 서울·수도권의 경우 새롭게 선정절차를 밟는다면 대략 10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KRBID(한국재건축재개발정보원)에 따르면 서울지역 중 우수 사업지를 분석한 결과 △B구역 등 성북구 12개소 △H구역 등 서대문구 8개소 △S구역 등 은평구 7개소 △Y구역 등 동대문구 7개소 △M구역 등 강북구 6개소 △H구역 등 동작구 5개소 △A구역 등 마포구 5개소 △K구역 등 성동구 4개소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구에서 추진위 때 시공자를 선정한 재개발 구역은 대략 7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KRBID의 이동원 팀장은 “현재 서울지역의 경우 조합 초기 단계인 곳까지는 모두 추진위 때 시공자를 선정한 곳으로 보면 되고, 지방의 경우 십중팔구 추진위 때 시공자를 선정한 곳”이라며 “요즘엔 이른바 비대위들도 인터넷 등을 활용,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자기 단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대부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지역에서의 시공자 재선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건설사에서 관련자료를 문의해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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