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혼탁·과열 부추기는 대안설계… 겉도는 공공지원제
재개발 혼탁·과열 부추기는 대안설계… 겉도는 공공지원제
목소리 커지는 관련기준 재정비
  • 문상연 기자
  • 승인 2022.02.11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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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5구역 원안+대안설계 제시한 GS가 우세
흑석9구역 재개발도 현대건설이 시공권 획득
일부업체 규정까지 무시… 입찰 들러리 전락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서울시는 지난 2019년 반포1·2·4주구 등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과열·혼탁한 시공자 선정 관행을 바로잡자는 취지에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개정안’을 마련해 무분별한 대안설계 제안을 금지했다.

하지만 최근 시공자 선정 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안설계가 제안되면서 또다시 혼탁한 수주전 양상을 보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현장에서는 대안설계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제안까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안설계로 인해 수주전 양상이 또다시 혼탁해지기 전에 관련 규정 재정비를 시급히 요구하고 있다.

▲수주격전지에서 또다시 등장하는 대안설계… 제안 안하면 들러리 의혹까지 제기

공공지원제를 적용받는 서울시는 내역입찰제로 인해 시공자 선정 시 대안설계 제안이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최근 대안설계가 수주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오히려 대안설계를 제안하지 않을 경우 수주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여 들러리 입찰 오해까지 사고 있다.

최근 서울에서 건설사간 경쟁이 붙은 정비사업 현장은 극히 드물다. 건설사간 경쟁이 붙은 현장에서는 대안설계가 수주전 승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입찰을 마감한 은평구 불광5구역 재건축사업의 경우 GS건설과 롯데건설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하지만 입찰비교표가 공개되면서 싱거운 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유리한 사업조건을 제시한 면도 있지만 GS건설이 원안설계와 함께 대안설계를 제안한 반면, 롯데건설은 원안설계만 제안하면서 승리가 사실상 GS건설로 기울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같은 양상은 과거 수주전에서 줄곧 보였다. 지난 2020년 SK에코플랜트을 공동사업시행 건설업자를 선정한 제기6구역 재개발사업의 경우 SK에코플랜트은 대안설계를 제안했고, 한화건설은 원안설계만 제안했다. 공사비 경쟁력, 사업참여조건과 마감재 수준에서 SK에코플랜트이 우세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결국 SK에코플랜트이 압도적인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공자로 선정됐다.

지난해말 현대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흑석9구역 재개발사업도 마찬가지였다.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맞붙었다. 현대건설은 원안설계와 대안설계를 함께 제안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은 대안설계 자체를 제안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대건설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시공자로 선정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주전에서 대안설계 제안이 필수가 됐다”며 “대안설계를 제안하지 않은 건설사와 경쟁구도가 펼쳐졌을 때 싱거운 결과가 나오면서 들러리 입찰이라는 오해까지 살 정도”라고 말했다.

▲핵심현장에는 규정조차 무시한 대안설계 제안 논란… 또다시 혼탁해질까 우려

건설사들이 핵심현장에서 과도한 대안설계를 제안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혼탁한 수주전 양상이 또다시 재연될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가장 치열한 수주경쟁이 펼쳐진 북가좌6구역 재건축의 경우 건설사들의 과도한 입찰제안조건 등이 문제가 되면서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수많은 논란 중 시공자로 선정된 DL이앤씨가 대안설계를 설계도서 없이 제출하면서 관련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는 대안설계 등을 제안하면 반드시 설계도서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개정안’에 따르면 서울에서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 수주에 참여할 때 정비사업 시행계획의 원안설계를 변경하는‘대안설계’를 제시할 경우 정비사업비의 10% 범위 등의 경미한 변경만 허용되고 대안설계에 따른 세부 시공내역과 공사비 산출근거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지난 22일 GS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용산 한강맨션재건축조합에서는 무리한 대안설계 제안이 논란이 됐다. GS건설은 35층 설계안과 별개로 한강변아파트 층수 규제가 풀릴 것을 전제로 한 68층 대안설계안을 조합에 제안했다. 

착공까지 2년이 남은 만큼 정권교체 및 차기 서울시장 선거 등에 따른 변수를 고려한 제안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현실 가능성 여부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무리한 대안설계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서울시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현행 규정상 경미한 변경 내에서만 대안설계 제안이 가능한데, 해당 대안설계는 정비계획부터 다시 수립해야 하는 중대한 변경사항에 해당돼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건설사가 규정을 위반하는 무분별한 대안설계를 제안해도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상 입찰자격 박탈 여부에 관한 결정을 사업시행자인 조합이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건설사의 반발로 인해 실제 건설사가 입찰지침을 위반하는 수주행태를 보여도 입찰자격을 박탈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건설사의 무분별한 대안설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공지원자인 구청장이 위반한 건설사의 입찰을 자동 취소시키는 강력한 규정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는 대안설계를 막기 위해 공공지원제, 내역입찰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모두 조합에 떠넘기고 있어 공공지원제 시행부터 그 실효성을 전혀 거두고 있지 못하다”며 “무분별한 대안설계가 또다시 수주전 양상을 혼탁하게 만들지 않도록 관련 규정의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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