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아파트’와 ‘순살 아파트’ 데자뷔
‘와우 아파트’와 ‘순살 아파트’ 데자뷔
  • 두성규 대표 / 목민경제정책연구소
  • 승인 2023.10.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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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징헤럴드] 고대 중국의 기나라에 살던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몹시 두려워한 것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행태를 가리켜 우리는 ‘기우(杞憂)’라고 한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을 빗대어 이른 기우가 21세기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공동주택의 대명사인 콘크리트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붕괴로 우리 앞에 현실로 등장하고 보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나아가 그 원인을 찾다 보니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순살’아파트와 마주하게 된다. ‘순살’아파트란 철근을 빼먹고 규정 이하의 비율로 아파트를 짓다가 사고가 난 경우를 뼈를 바른 치킨에 비유해 비꼬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나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서도 이미 등장한다. 

1970년 당시 서울 시내에서 철근이 70개 필요한 곳에 5개 정도만 사용되거나 시멘트 사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부실 공사로 붕괴되며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참사의 현장 즉, 바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이다. 

지나치게 짧은 공기(工期)에 빠듯한 예산 그리고 건설사의 부실시공과 감독기관의 부실한 감독 등의 구조적 병폐가 포함된 사고로, 이미 예견된 인재(人災)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당시 많은 사람의 공분을 불러온 바 있다.

무엇보다 와우아파트의 붕괴가 감독기관의 부실한 감독에 기인한다는 점과 최근 LH의 순살 아파트 양산과정이 너무도 닮아있는 점에선 소름마저 돋는다. 공공주택 공급과 신도시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LH가 발주한 전국 상당수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에서 철근이 아예 없거나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것을 이미 자체 조사에서도 다수 확인된 바 있어 더욱 그러하다. 

또한 단순히 부실 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주단계에서부터 설계와 시공 그리고 감리와 현장의 감독체계 나아가 잘못된 관행 속에 묻혀 간과된 부적절한 행태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LH 출신 직원들이 포함된 업체가 다수 참여했고, 전관 회사의 설계·감리의 불량한 상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전관예우’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던 것이다. 더욱이 공사 전 과정에서 일명 ‘카르텔’이라고 불릴 수준의 각종 이권이 복잡하게 얽힌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다.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로 홍역을 치른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터라 LH가 자체적으로 혁신을 추진한다던 그동안의 외침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LH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주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사안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LH가 개혁은 차치하고 제대로 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사태 재발을 막고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망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LH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자체 감사와 개선 의지를 다지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조직의 해체와 재건까지도 고민하는 등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각오까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문화현상의 하나로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현대판 와우아파트의 데자뷔는 결코 반갑지 않다.

두성규 대표 / 목민경제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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