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원의 국토이야기>안창호 선생 강산개조 구상
<김의원의 국토이야기>안창호 선생 강산개조 구상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6.09.2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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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7 11:07 입력
  
 
김의원
경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제국 말부터 일제 말까지 우리나라는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독립이고 애국이었을 뿐 국민의 생활터전인 국토에 대한 의견이나 비전을 제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안창호 선생은 서구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자아혁신을 제창하는 개인주의적 사회사상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를 수용하려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생각했으나 토지개혁이나 농촌경제의 기반확립, 일제식민지 경제에 대한 반항 등의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국토개조론과 이상촌 건설을 통한 박애주의적 민족교화 운동에 힘썼다.
 
도산 선생의 강산개조론은 1919년 상해에서 행한 연설에서 비롯된다.
 
그는 <인류의 목표는 전인류의 완전한 행복에 있다. 행복은 문명에서 얻어진다. 문명의 어머니는 노력이다. 노력한다는 것은 개조를 뜻한다. 따라서 문명을 얻으려면 개조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 저 문명스럽지 못한 산과 강을 개조하여 산에는 나무가 가득히 서있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만한 행복이 되겠소. 그 목재로 집을 지으며 온갖 기구를 만들고 물을 이용하여 온갖 수리에 관한 일을 하므로 이를 쫓아서 농업, 공업, 상업 등 모든 산업이 크게 발달된다>라고 했다.
 
안창호 선생의 국토개조에 대한 지론은 후일 그 자신이 계획하여 실천하려 했던 두 차례의 이상촌 건설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계획의 실천을 위하여 안창호 선생은 춘원 이광수를 북경으로 불러 국내에서의 동지를 구하려는 시도도 하였다.
 
안창호 선생은 이 계획을 모범부락, 혹은 독립운동 근거지, 때로는 거생지(居生地)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상촌 계획은 제1기와 제2기 계획으로 구분되는데, 제1기 계획 구상취지는 독립운동을 위한 해외거점을 확보하고 해외동포가 본국의 문화와 단절되는 것을 방지하며 해외에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적 중심지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도산 선생이 제1기 이상촌 건설을 중국으로 정하게 된 것은 북미(北美)가 살기는 좋으나 인종차별의 압박감이 예상되는데 반하여 중국인은 우리와 공감대가 같고 독립운동에 가장 큰 동조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광수는 설명했다.
 
이 계획 실천을 위해 도산은 만주와 중국일대를 돌아본 후 남경(南京)과 소주의 중간에 위치란 진강(鎭江) 부근을 후보지로 결정하고 실제로 약간의 토지를 구입하기까지 했다.
 
도산 선생은 많은 동포들의 출자로 토지를 매수하고 주택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만주사변으로 인하여 제1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2기 계획은 국내에 건설할 것으로 설계되었다. 모범 농촌 도시 모델을 한두 곳 건설하여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모범 농촌 도시내에는 농업, 잠업, 임업, 원예, 목축, 건축, 토목, 요업 등의 직업학교를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기술을 익혀 경제발전의 근간을 삼고자 했다. 또한 도로망과 하수도 시설 등은 당시의 구미도시의 수준으로 하며, 주택은 개성과 위생에 치중하되 우리나라 고유의 미를 살릴 것과 공동시설로는 공회당, 학교, 목욕탕, 운동장, 은행, 우체국, 협동조합의 건립을 구상했다.
이 이상촌 도시는 대동강 연안이나 황해도에 건설할 것을 계획하고 실제로 평안남도 강서군 대보면 송태리에 스스로 설계한 모델하우스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의 이 제2기 이상촌 건설계획도 자금조달의 어려움에다 도산 선생 자신이 1937년 일제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이상과 같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로서보다 윤리적 국민운동의 선구자였다. 즉, 시민사회적인 애국운동자요, 박애주의적인 민족교화 운동자로서의 일면을 가지긴 했으나 이상적 색체가 짙다는 비난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이 적어도 국토라는 자원을 보는 안목과 식견은 근세 백년간에 있어서 국토개발사적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일면이 있다.
따지고 보면 도로망 계획과 공공시설 계획, 주거시설 계획을 포함한 오늘날의 신도시건설 계획은 물론이고 넓은 뜻에서 오늘날의 새마을운동도 도산 선생의 제2기 이상촌 계획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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