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변경의 허와 실
설계변경의 허와 실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13.11.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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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태
주거환경연구원/부장


주택시장이 급변하면서 설계변경이 당연시 되고 있다. 예전에 설계를 중대형 위주로 짜놨던 조합들은 최근 중소형으로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는 이 때 비용이 수반되면서 적잖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선 조합들이 설계변경의 허실을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설계변경은 설계도서와 현장여건, 분양성 등 다양한 사안을 검토·분석해 최선의 시공을 이끌어 내기 위한 품질관리행위다. 일반적인 설계변경의 유형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기본계획 또는 정비계획이 변경되는 경우 △설계도면이 불분명하거나 누락·오류로 상이한 경우 △소형평형을 늘려 분양성을 높이기 위해 △신기술 및 공법 적용으로 현저한 공사기간·비용절감이 예상될 때 △관리감독청 및 발주청의 요청이 있을 때 △하자방지를 위한 설계변경(자재 및 공법의 부적정) △민원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발생민원을 해소하기 위한 경우 등이다.

 

■ 설계변경은 사업지연 불가피
사실 설계변경은 조합에게 일상적 절차다. 부동산이 침체됐을 때 인기없는 중대형평형을 줄이고 소형평형을 늘려 미분양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한다. 시공자뿐만 아니라 조합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설계변경에 나서기도 한다. 정책 변경에 따른 갑작스러운 설계변경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예컨대 예전 서울시가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30% 높이자, 일선 조합에서는 그러한 규제에 맞추기 위해 설계변경 붐이 일었다.


설계변경의 단점은 1년 이상의 사업지연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지연을 우려하는 조합원들로부터 반발도 생긴다. 실제로 서울 K구역의 경우 총회에서 설계변경을 추진했지만 부결됐다. 사업지연으로 인한 기간 비용 및 공사비 증가, 건축심의 및 사업시행변경인가 등 소요되는 추가비용의 발생이 부담된 것이다. 향후 재분양 신청 과정에서 현금청산으로 인한 대규모 조합원의 이탈이 예상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N구역, B구역도 시공자의 요구에 의해 설계변경을 진행하면서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를 받았지만 결국 사업이 지연되는 결과를 맞았다. 설계변경을 진행하면서 분양 적기를 놓쳐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주택 분양시장 여건이 악화되자, 아예 일정기간 사업을 유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 설계변경은 ‘시공자 꼼수’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도
주택시장의 침체로 최근 2~3년 동안 시공자를 선정한 조합들 대부분 사업이 중단돼 있다. 또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사업을 중단시키려는 시공자들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지금 사업을 추진하면 분양 이익이 줄거나, 미분양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시공자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에서는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올리려는 꼼수가 대표적이다. 협상 과정에서 자연히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협상에 성공했을 때 공사비 증가라는 부가적 이익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문병호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주택건설 부문의 330건의 공사 중 88.2%인 291건이 평균 4.5회의 설계변경을 진행해 9천572억원의 공사비가 증가했다. 단지건설 부문에서는 298건의 공사 중 77.9%인 232건의 공사가 평균 4회의 설계변경으로 1조4천490억원의 공사비가 늘었다. 이는 저가의 공사비로 사업에 참여한 시공자가 설계변경으로 수익을 보완하는 전형적인 수법의 사례다. 불충분한 설계변경과 편법처리되는 설계변경은 결국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처럼 시공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변경이 결정되도록 갖가지 노력을 하므로 일선 조합의 면밀한 검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 설계변경, 전문가의 꼼꼼한 검토 필요
설계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조합과 시공자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건설 공정과 복잡한 절차에, 용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조합 집행부들이 적지 않다. 설계변경을 위한 회의석상에 나온 둘 사이를 비교해 보자.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아파트 시공을 처음 접하는 조합 집행부와 수십 년간 시공만 담당해온 시공자 담당자는 결코 동등한 입장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조합 집행부는 무조건 시공자의 요구를 배척하려는 폐쇄적 자세를 보여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건의 설계변경을 처리하기 위해 조합이 시공자에게 세세한 관련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시공자 측은 그러한 과정은 비효율적인 것이라며 구두에 의한 업무처리를 선호하고 근거 자료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려 한다. 때문에 상황은 악순환 되며, 조합은 시공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갈등은 반복된다.


따라서 조합은 무엇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질적으로 사업에 이익이 되는 설계변경을 진행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설계변경에서 벗어나 건설공사에 관한 기획·분석·자문 등 체계적인 사업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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