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설립 무효訴, 행정소송 유리할까
‘조합설립 무효訴, 행정소송 유리할까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9.11.10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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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13:49 입력
  
업무정지·총회금지 가처분 등 조합 승소 잇따라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 판결 여부에 초미 관심
업계 “취소사유 될지언정 무효사유 아니다” 낙관
 

비용분담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제기되는 업무집행정지나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등에서 조합승소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조합설립 무효가 행정소송으로 바뀌면서 판결 흐름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합설립 무효를 둘러싼 관심은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상의 동의서 중 비용분담에 관한 기준을 행정법원이 어떻게 보느냐’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재건축·재개발 전문 변호사들은 조합설립 무효가 될만큼 운영규정 상의 동의서가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업계에서도 “취소사유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로 인정될만큼 무효사유는 아니다”는 낙관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H&P 법률사무소의 박일규 변호사는 “그동안 민사소송에서 다수의 재판부가 조합설립무효를 선언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재판부가 취소사유나 무효사유를 확대 해석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극도로 제한된 무효사유의 인정, 사정판결 가능성 등을 종합해보면 행정소송에서 조합승소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무정지 가처분, 고법서 조합승소로 뒤집혀=지난달 1일 서울고등법원 제40민사부(재판장 김응헌 판사)는 이모씨 등이 구리 인창동재개발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이의’에서 “사업시행계획의 효력을 다투는 행정소송이 확정되기 전에 사업시행계획에 이르는 절차적 요건의 하자를 이유로 〈민사집행법〉상 가처분으로써 조합의 재개발정비사업 업무수행 금지를 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1심 결정은 결론을 달리해 부당하기 때문에 취소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재판부는 지난 9월 17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사업시행계획은 조합원의 동의와 토지등소유자의 공람절차를 거친 후 관할 행정청의 인가·고시를 통해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고, 사업시행계획안에 대한 조합원의 동의는 사업시행계획이라는 행정처분에 이르는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사업시행계획에 이르는 과정에서 조합원이 동의한 내용과 다른 사업시행계획이 별도로 수립돼 관할 행정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하자가 있다면 행정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항고소송의 방법으로 사업시행계획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그와 별도로 행정처분에 이르는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한 총회결의 부분이나 조합원 동의부분을 따로 떼어 내어 총회결의의 존부나 효력 유무 등을 민사소송의 방법으로 다투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전속 관할법원 위반=총회개최금지 가처분에서도 비슷한 결정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서창원 판사)는 이모씨 등이 면목3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개최금지가처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조합설립 동의 자체의 하자 또는 조합설립동의율 미달을 이유로 한 조합설립무효 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해서 그 후속행위인 정관개정 등의 안건을 회의목적으로 하는 이 사건 총회의 개최금지를 구하고 있는 바, 이 사건 신청은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권리를 피보전권리로 삼아 제기된 것이어서 이 법원에 관할이 있지 않아 서울행정법원으로 이송함이 상당하다”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조합설립 무효, 행정법원 이송중=조합설립 무효와 관련된 소송의 경우 현재 대법원 문턱에서 행정법원으로 이송 중에 있다.
지난달 15일 대법원 제2부(재판장 전수안 대법관)는 윤모씨 등이 방배2-6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조합설립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이송시켰다.
 

또 제2부는 같은날 부산 감천2구역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제기된 ‘조합설립 무효확인등’ 소송도 마찬가지로 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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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냐, 무효냐’ 제소기간 90일이 조합 운명 가를수도
 

■ 희비 갈리는 조합
조합설립 무효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조합승소’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만일 취소사유로 인정될 경우 제소기간인 90일에 따라 조합의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운영규정 상의 동의서 내용 중 비용분담에 관한 기준에 대해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라고 보고 무효판결을 내리기에는 무리수가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 결국 문제는 취소사유로 인정될 경우다. 이럴 경우 취소소송의 제소기간은 90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현재 무효소송이 제기돼 있는 조합의 경우 조합설립인가일로부터 90일 이후에 소송이 제기됐다는 의미로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얘기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비용분담 기준은 모든 현장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확인해서 인가를 내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행정법원에서도 운영규정 상의 동의서 수준이라면 비용분담 기준을 정했다고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6월 11일 인천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조일영 판사)는 이모씨 등이 인천 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조합설립인가 취소등’ 소송에서 “예측할 수 있을만큼 비용분담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할 것”이라며 “조합설립동의서의 기재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임을 전제로 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한편 행정소송의 경우 민사소송과 달리 제3자에게도 효력이 있는 대세효를 갖는다. 예를 들어 민사소송은 어느 조합의 무효가 확정됐다고 하더라도 소송당사자 이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비해, 행정소송은 일반화된다는 의미다.
 
또 조합 입장에서는 공공복리를 근거로 사정판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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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 동의서·동의율 미달 땐
행정소송서도 조합패소 예상
 

■ 체크 포인트
동의서 자체에 위법이 있거나 동의율이 미달인 때, 또는 조합설립 신청서류가 미비한 경우 등은 행정소송에서도 조합패소 판결이 나올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도정법〉 제16조에 따른 조합설립인가 신청시 서류가 미비한 경우, 동의서 위조, 공란 동의서 징구 등은 조합무효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함준표 법률사무소의 함준표 변호사도 “동의서 징구과정에 기망이나 협박 등의 위법이나 부당함이 있는 경우, 비용분담 기준이 모순되거나 허구일 때도 조합무효 사항으로 패소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행정소송이 제기돼 고등법원에서 조합패소 판결이 내려져 있다.
 
올 초 1월 23일 부산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박흥대 판사)는 이모씨 등 75명이 해운대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재개발정비사업 조합설립인가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동의서의 기재사항이 누락된 동의서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합설립에 관한 동의율은 0%가 된다”며 조합무효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또 “조합설립인가 처분 이전에 필요적 기재사항이 누락된 동의서에 대한 보완을 명하고, 보완하지 않을 경우 인가신청을 반려했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채 인가처분을 하고 말았다”며 “이 사건 인가처분에는 그 자체로 고유한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하고, 이같은 하자는 〈도정법〉 제16조제1항 및 〈도정법〉 시행령 제26조제1항의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돼 중대하고, 객관적으로도 명맥하기 때문에 인가처분은 무효”라고 설명했다.
 
당시 구청과 조합에서는 “동의서에 일부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가처분 이후에 계속된 사업시행인가 및 분양절차 등을 통해 모든 조합원들이 누락된 기재사항을 숙지했고 별다른 이의 없이 1년이 훨씬 경과한 이상 하자는 모두 치유됐다”며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처분 당시의 사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필요적 기재사항이 누락된 하자가 있었던 이상 당연무효인 인가처분의 하자가 치유되거나 유효한 것으로 전환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합설립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 조합운영, 사업시행 등과 관련한 분쟁이 계속돼 온만큼 인가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청과 조합에서는 마지막으로 사정판결 여지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동·호수 추첨까지 마친 시점에서 사업이 중단되면 큰 혼란이 초래되고, 이미 막대한 비용도 집행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행정처분이 무효인 경우에는 존치시킬 효력이 있는 행정행위가 없기 때문에 〈행정소송법〉 제28조의 사정판결을 할 수가 없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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