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대안설계 난무… 내역입찰제 실효 논란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 대안설계 난무… 내역입찰제 실효 논란
  • 문상연 기자
  • 승인 2017.11.07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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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예정가보다 높아도 조합들 수용 불가피
지자체도 건설사들 내역입찰 위반에 수수방관

조합의 자금경색을 외면하면서까지 서울시가 강제도입한 공공지원제의 내역입찰제도가 최근 대형건설사간 수주전에서 난무하는 대안설계로 인해 실효성 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서는 ‘특화와 대안을 제안하거나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에도 예정가격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했지만 건설사가 이를 위반해도 구청이 책임을 조합에게 떠넘기면서 내역입찰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조합은 내역입찰제도가 의무지만 건설사가 이를 위반해도 건설사 징계여부를 조합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건설사가 예정가격보다 높은 공사비의 대안설계를 제시해도 조합은 입찰을 성사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추진할 수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이 같은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합이 정한 공사예정가격 무용지물… 내역입찰제도 취지 무색

서울시 공공지원제의 내역입찰제도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것은 건설사들이 대안설계를 통해 조합이 정한 공사예정가격 이상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을 통해 입찰가격 상한선인 예정가격을 조합이 의무적으로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정가격 이상을 제시하는 시공자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조합이 제시한 원안설계의 대안으로 입찰참여 또는 설계변경을 할 경우 예정가격 등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서울시 기준에서는 대안설계의 개념에 대해 원안설계와 비교해 동등 이상의 기능 및 효과가 있고, 공기단축 또는 비용절감이 가능한 설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예정가격 이상으로 입찰금액을 제시한 업체는 입찰이 무효가 된다.

하지만 건설사가 이를 위반해도 그 징계여부를 조합이 정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조합의 예정가격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개의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에 조합이 예정가격을 위반한 건설사에 대한 입찰을 제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시공자를 선정한 신반포15차, 한신4지구 등의 재건축단지에서 건설사들이 조합이 정한 예정가격을 넘는 대안설계를 제안했다. 심지어 추가 공사비로 인한 갈등을 우려한 잠실 미성·크로바 조합은 당초 입찰 지침에서 대안설계 제시를 막았다. 그럼에도 입찰에 참여한 두 회사 모두 대안 설계를 제시했다.

미성·크로바조합 관계자는 “입찰에 참여한 두 건설사가 입찰지침에서 불허한 대안설계를 제시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며 “두 개 업체만 참여한 상황에서 모두 위반했기 때문에 입찰 자격을 제한하면 사업 자체의 진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건설사가 내역입찰 위반해도 수수방관하는 지자체

내역입찰제도의 도입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대안설계가 난무하고 있지만 공공지원자인 구청이 수수방관하고 있어 실효성 없는 공공지원제에 대한 업계의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는 “공공지원자는 조합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시공자를 선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처분의 취소, 변경 또는 정지, 임원의 개선 권고 등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위반사항에 대해 조합이 결정하는 것이지 구청에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다만 대안설계로 사업계획이나 공사금액이 변동될 경우 조합 총회를 통해 사전 동의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조합에서 충분히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 이익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대안설계

대안설계로 인해 내역입찰제도가 무색해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건설사들이 더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대안설계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품질과 낮은 공사비를 원하는 조합이 마련한 공사비예정가격과 원안설계로는 건설사 입장에서 큰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건설사 수주담당자는 “조합의 사업시행인가 설계안은 용적률을 최대한 적용시키는 등의 사업성 위주로 예정가격과 원안설계를 만든다”며 “조합이 제시한 예정가격으로는 건설사의 이윤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대형건설사들이 부족한 이윤을 메꾸기 위한 수단으로 대안설계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지 무색해진 내역입찰 의무화 조합의 사업지연만 부추겨

내역입찰을 원칙으로 하는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이 대안설계로 인해 당초 서울시가 주장했던 공사비 절감 등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업계에서는 공공지원제 무용론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시공자 선정 내역입찰 의무화가 사업지연을 부추기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합들이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서 정하고 있는 물량내역서 및 산출내역서 등을 작성하는데만 3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이처럼 조합들이 내역입찰을 위해 수개월에 거쳐 예정공사비를 산출해도 대안설계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공자 선정 후 건설사가 제시한 대안설계에 대한 공사비의 산출내역을 재검토하고, 대안설계에 따른 설계변경을 진행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우리 조합의 경우 내역을 산출하고 공공지원자에게 검토를 받는데만 6개월이 걸렸지만 건설사들의 대안설계로 헛수고가 됐다”며 “실효성 없는 공공지원제 고집으로 조합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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