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배순석 국토연구위원>주택이 도시를 망친다?
<시론 배순석 국토연구위원>주택이 도시를 망친다?
  • 하우징헤럴드
  • 승인 2009.03.1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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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10:56 입력
  
배순석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며칠전 어떤 회의에서 “주택이 도시를 망친다”라는 말을 들었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오래 전부터 여러 사람들부터 들어왔던 얘기다. 필자도 그런 지적에 대해 상당부분 동의한다. 문제의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나, 이 글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고층아파트 일색의 주택건설과 다가구주택 문제이다.
 

고층아파트 문제는 고층아파트가 하나의 주거양식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층아파트 일색의 주택유형 획일화가 문제이다. 그것도 언젠가 어떤 사람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면적기준에 따라 아파트의 면적은 60㎡, 85㎡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호화주택관련 아파트 면적기준 역시 아파트 면적을 획일화하는데 기여했다.
 
프랑스의 한 지리학자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을 파헤친 책 ‘아파트 공화국’을 발간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국민들이 원했기 때문에 고층아파트 일색의 주택건설이 이루어졌다고 반론을 펼 수 있겠지만, 정부의 정책과 제도들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르도록 한 책임이 작지 않다.
 
우선 공영택지개발에서의 아파트용지 위주의 토지용도 배분과 승용차 대중화를 예측하지 못한 구획정리사업은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 공급을 확대시키는데 기여했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주로 단독주택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여 단독주택을 제외한 아파트에만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주택성능인증제도가 한 예이다.
 
현재와 같이 주택유형의 다양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이유는 국민들의 잠재된 욕구와 문화적인 측면보다는, 시장관리자로서의 정부가 행정편의성을 중시하고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으로 주택공급시스템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정부정책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둘째로 제기할 문제는 다가구주택에 관한 것이다. 다가구주택의 건축기준 및 주차장 설치기준을 과도하게 낮게 설정함으로써 일반주거지역에서 단독주택들의 대부분이 철거되고 다가구주택으로 대체돼 주거환경 수준을 크게 저하시켰다. 한 동네의 일부에 다가구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그 동네는 전통적인 단독주택지로서의 특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결국 동네 전체에 다가구주택들이 들어차게 된다.
 
원래 집주인과 세입자가구들이 동거하는 단독주택들이 주로 입지하고 있던 지역뿐 아니라 대부분 1가구 점유형 단독주택이 입지하고 있던 지역들조차 모두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단독주택지는 대도시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다가구주택이 침범할 수 없는 1종주거전용지역의 면적은 서울시 전체 주거지면적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다가구주택은 서민과 독신가구 등에게 비교적 저렴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순기능은 있지만, 다가구주택이 건설될 수 있는 주거지역을 좀더 제한했어야 했다. 차라리 이미 과밀화된 지역을 재건축하여 중층 또는 고층의 공동주택을 건립하더라도 1가구 점유형의 전통적인 단독주택지는 좀 더 많이 보존시켜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주택공급확대와 주택가격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했어야 할 주택부족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전혀 비전이 없이 주택공급목표 채우기에 전념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어떠한 주거환경과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꿈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들의 주택과 주거환경은 그들이 돈이 많고 땅이 남아돌아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살고 싶은 집과 환경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그 것을 성취하기 위한 일관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문화국토’가 떠오르는 정책적 화두이지만 문화국토의 조성은 우리의 주거문화 수준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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