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전자입찰 89%가 ‘적격심사’… 제한경쟁입찰로 변질
재개발·재건축 전자입찰 89%가 ‘적격심사’… 제한경쟁입찰로 변질
  • 문상연 기자
  • 승인 2018.07.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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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업체에 유리한 배점 기준 내세워 담합 부추겨
업계 “전자조달시스템 입찰정보 공개되지 않은 탓” 

[하우징헤럴드=문상연기자] 재개발·재건축조합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 2월 9일 시행된 정비사업 용역 일반경쟁입찰 및 전자입찰시스템 등록 의무화 제도가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경과하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비사업 용역업체 선정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전자입찰제도가 정비사업 협력업체 선정에 있어 절차만 하나 더 늘어났을 뿐 투명성이란 기대효과는 내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다. 나아가 전자입찰에서 대부분 적격심사방식을 채택하면서 특정업체에 유리한 배점기준을 내세워 일반경쟁입찰의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자입찰 도입으로 일반경쟁 아닌 사실상 제한경쟁입찰

지난 2월 9일부터 새로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시행되면서 협력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일반경쟁입찰과 전자입찰 제도가 도입됐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조합임원이 용역업체 선정의 대가로 금품 또는 향응을 받거나 공사비를 부풀려서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고 구속되는 등의 비리를 근절할 대책으로 마련됐다.

이에 조합에서 발주하는 모든 용역은 원칙적으로 일반경쟁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또한 일반경쟁입찰도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일정규모 이상의 계약은‘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자입찰을 의무화한 것이 오히려 조합과 업체 간 담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조합들이 입찰방식으로 적격심사방식과 제안서평가방식을 채택하면서 사실상 제한경쟁으로 입찰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입 당시만하더라도 일반경쟁입찰을 확대할 경우 부적격 용역업체의 이른바 ‘저가 덤핑’ 문제가 지적됐다.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용역업체를 선정할 경우 입찰 진입장벽이 낮아지기 때문에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켜 저가수주 행태가 만연해 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자입찰이 사실상 제한경쟁입찰로 변질되면서 투명하고 공정한 입찰이라는 본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조합-업체 간 담합 부추기는 전자입찰 적격심사방식

업계에서는 전자입찰이 적격심사방식을 통해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교묘한 배점기준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제한경쟁입찰로 변질되고 있어 현행 전자입찰 방식에 대한 조속한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도정법 등에 따르면 조합은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정비사업에 대해서 ‘전자조달의 이용 및 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조달청 누리장터의 전자입찰 방식을 통해 일반경쟁방식으로 협력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이 경우 조합은 대의원회를 통해 △최저가방식 △적격심사방식 △제안서평가방식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주거환경연구원이 조달청 누리장터 홈페이지를 참고해 정비사업 용역 입찰현황을 자체 조사·분석한 결과 지난 1월 29일부터 5월 18일까지 시공자 선정(25건)을 제외한 정비업체, 설계자 등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총 47건의 입찰 중 적격심사방식을 채택한 입찰은 42건으로 전체 입찰의 89%에 달했다.

문제는 적격심사 시 업체 선정을 위한 평가 항목들이 매우 주관적인 기준들로 채워져 있어 조합과 업체 간 담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수원시의 한 재개발조합의 경우 적격심사방식으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구역 이해 및 접근성’ 평가항목에 ‘사무소 위치’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 논란이 됐다.

나아가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교묘한 적격심사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은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업무를 담당할 변호사 선정 과정에서 소속 변호사 수와 법률자문 실적 등에서 세부적인 경력사항을 포함시켜 특정 법인만 입찰참여 및 선정 가능성이 있도록 배점 기준을 정했다는 의혹을 샀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투명한 일반경쟁입찰을 위해 전자입찰을 의무화했지만 실제로는 적격심사의 배점 기준을 조합이 정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제한경쟁입찰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비사업 협력업체 선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한 배점기준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입찰 참여업체 적격심사 배점 결과 공개해야

전자입찰이 일반경쟁입찰을 투명하게 할 것이라는 본래 도입취지도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토부는 제도 도입 당시 전자입찰을 하게 되면 입찰 과정과 평가결과가 공개되면서 투명한 입찰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지만, 공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실제 전자조달시스템(누리장터)에서 입찰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23조 제2항에서는 "전자입찰을 통해 계약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조달시스템에서 그 결과를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기준이 없어 입찰 결과에 대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거나, 단순 참여업체와 선정된 업체 및 입찰금액 정도만 공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입찰과정을 공개토록 하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입찰이 배점기준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는 적격심사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적격심사 결과 업체별 평가점수 등을 공개해 입찰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원은 “현재 전자입찰 방식은 대의원회가 선정한 업체만 단순하게 공개하고 있어 기존과 다를 바가 없다”며 “투명한 입찰과정을 위해서는 입찰에 참여한 업체별 심사 결과도 전자입찰 창구인 누리장터를 통해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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