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건축·재개발 시스템 혁신 방향
정부 재건축·재개발 시스템 혁신 방향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8.07.10 0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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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7:27 입력
  
주택정비사업 규제일변도 정책부터 확 바꿔야
집값상승 문제는 재건축·재개발로 풀어야
전문가 “직주근접형 주택공급 통로 인정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된 재건축·재개발이 주택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시장주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주택수요가 필요한 곳에 그에 맞는 직주근접형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서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한다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이들은 재건축·재개발을 풀어주면 집값이 폭등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아예 카드로 채택하지도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참여정부는 재건축·재개발이 집값상승을 부채질한다고 보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건축·재개발을 억눌러 왔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집값이 안정되는 듯 보였지만 더 큰 폭의 가격상승이라는 악순환만 양산해 왔다.
 
이에 MB정부는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통해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며 주택정책의 방향을 선회했다. 무조건적인 규제는 단기간에 걸쳐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를 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MB정부는 이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 실패가 최대 오점으로 꼽히는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先 이익환수 後 규제완화’라는 애초부터 딜레마에 빠진 카드를 꺼내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익환수와 규제완화는 이율배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두 가지 정책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주택공급을 늘려서 집값안정을 이루겠다는 인식전환은 재건축·재개발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한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국토해양부는 일단 집값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 가능한 방안의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입법예고까지 마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일부 개정안이 그것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최태수 사무국장은 “참여정부 내내 재건축·재개발은 집값상승의 원흉으로 지목돼 각종 규제를 받아 왔다”면서 “MB정부 들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에 대한 재건축·재개발조합들의 기대감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어 ‘MB가 활성화 정책을 포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사업이 좌초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정책이 발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규제를 하더라도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사정을 감안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의 재건축 규제는 ‘강남 죽이기’에 올인한 만큼 그 피해는 되레 사업성이 열악한 지방이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의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기존의 각종 재건축·재개발 규제에다 최근 분양가상한제 등이 겹치면서 지방은 아예 사업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조합들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관련 업체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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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자율이냐… 수수방관이냐… 논란
 
■ 재개발 추진위 시공자 선정 지위
 
애매모호한 법 해석이나 지자체의 자의적인 오판으로 사업이 혼란에 빠지는 사례는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재개발 추진위가 선정한 시공자의 지위인정 여부와 구역지정 이전 추진위 승인 문제다.
 
지난 2005년 3월 정부는 〈도정법〉을 개정하면서 재개발과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시기에 관한 규정을 아예 삭제했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재건축과 달리 사업초기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이후 건설사들은 건교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전국의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의 수주물량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수주광풍에 대한 피해사례와 소송 등이 잇따르자 건교부는 2006년 8월 25일 법을 다시 개정,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시공자 선정시기를 못 박았다.
 
결국 추진위가 선정한 시공자의 지위인정 여부가 사업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됐고, 최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효라고 결론지으면서 지금도 혼란에 빠져 있다.
 
또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수립 의무대상이 아닌 지역의 추진위 승인 시점을 두고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건교부의 〈추진위원회 승인 업무처리지침〉에 따르면 인구 50만 이상의 시가 아닌 곳은 정비기본계획 수립의무 대상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는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 추진위를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원주시를 비롯한 일부 시에서는 추진위 승인은 지자체의 자율권한이라고 판단, 구역지정 이전에 추진위 승인을 내줬다. 이에 반발한 일부 주민들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고,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원주시는 구역지정 이전에 추진위 승인을 내준 곳 중에서 시공자를 선정한 구역에 대해서만 추진위 승인 취소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원주시와 달리 다른 지역에서는 비슷한 상황임에도 문제제기가 있지 않아 그냥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현령 비현령’식인 셈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하면 시장자율이라고 운운하지만 실상은 ‘수수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향후 문제가 예상된다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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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식 법적용 되레 사업혼란만
 
■ 지금 현장에선…
 
일선 공무원들의 고무줄식 법 적용이 사업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일부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의 경우 차일피일 사업일정을 미루면서 보신주의로 일관한다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게다가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인·허가권을 무기로 보복행정에 나서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힘없는 자가 참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며 애써 모른체 하지만 속으로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 경험이 많은 서울시와 달리 지방 공무원은 지식이 부족해 법에서 정하지 않은 서류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럼 서울 가서 사업하든지’라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라고 난감해 했다.
 
경기도의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구역지정을 받기 위해 동의서 등 관계서류를 적법하게 챙겨서 신청했는데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재개발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부터 해결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공무원은 몇달 뒤에 다른 부서로 옮겼다”며 “결국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선 지자체 공무원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똑같은 법을 두고 서울 다르고, 부산 달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토부 유권해석을 받아 오면 그렇게 해 주겠다’는 식의 책임 떠넘기기도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 공무원의 전문성 정도는 사업의 적법성이나 속도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교육 강화는 더욱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부산의 한 공무원은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이해가 서울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세심하게 검토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 공무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대전의 한 공무원도 “재건축·재개발 상황은 지역마다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며 “최대한 민원을 줄이면서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게 추후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고자 하는 조합과 법적 정당성을 우선하는 공무원의 인식에는  일정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단계별 인허가 업무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의 제정·보급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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