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사업, 사업참여제안서 변경 실태
재개발·재건축사업, 사업참여제안서 변경 실태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7.12.04 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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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18:02 입력
  
시공자들, 수주 출혈 경쟁… 제 발등 찍기
전문가 “신의성실 관례 따라 조건변경 허용 안하는게 원칙”
업계 “내가 당할수도 있지만 상황 따라 어쩔 수 없어” 주장

 
재건축·재개발 수주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시공자들의 사업참여조건 변경이 비일비재해지면서 ‘무조건 따고 보자’는 막가파식 수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주전이 마치 경매같이 “경쟁사가 10원 깎아 주겠다면 자사는 20원 깎아 주겠다”는 것처럼 제 발등 찍는 식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스스로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지만 수주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진행된 대부분의 시공자 선정 총회에서는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작해 ‘경쟁사 베끼기’까지 도를 넘어서는 조건변경이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시공자들이 조건변경을 하면서까지 출혈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그만큼 수주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조건변경이 조합에게 유리한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초 제안했던 것보다 이익이 줄어 들었다면 시공자들은 줄어든 이익만큼 설계변경이나 마감재 고급화 등을 이유로 줄어든 이익을 메꾸려한다는 것이 통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시공자들의 경우 근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며 “당초 제안을 변경해 자신들의 이익을 줄였다면, 이를 반대로 유추해 보면 처음 제안은 시공자의 이익에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건변경에 대한 시공자들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조건변경을 무효화할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차라리 조건변경을 허용하지 않을만큼 입찰참여제안서 작성기간을 충분히 주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며 “조건변경을 허용한다면 시공자로부터 확실한 입증자료를 확보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설업계 “수주할 곳은 없고, 수주는 해야겠고”=시공자들이 사업제안을 변경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수주할 곳은 없는데 수주는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건축·재개발사업의 급속한 위축으로 수주물량이 대폭 줄어든 현 상황에서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조건변경도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는 얘기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재건축·재개발 수주물량이 대폭 줄었다”며 “주택경기도 위축돼 사업성이 그나마 괜찮은 곳은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공자 입장에서는 수주전에 뛰어 들었다면 수주를 해야 하는 게 당면과제일 수 밖에 없다”며 “조건변경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문제는 조건변경이 도를 넘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사업구역에 맞게 공들여 준비한 특화전략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해당 구역의 특성이나 조합원 성향에 맞춘 제안 등은 판단의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저렴한 공사비를 제시한 시공자가 어디인지의 싸움으로 바뀌게 된다.
 
또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공사비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공사비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실제로 ‘제 살 깎아먹기’라는 것에는 모든 시공자들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조건변경 허용하면 난장판 될 수도”=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건변경을 허용하는 게 득인지 실인지 판단할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춘 조합이 많지 않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또 조건변경을 둘러싸고 특정 시공자를 선호하는 조합원들간에 패가 나뉘게 된다. 수주전이 끝나더라도 내홍이나 갈등을 겪는 수주 후유증만 남아 사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게 된다.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조건변경을 허용하게 되면 수주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수 밖에 없다”며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렇게 될 개연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 조건변경이 공식 문서로 이뤄지기 보다는 시공자의 홍보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나중에 이를 번복할 수도 있다”며 “차라리 조건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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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유리한 변경 거부 땐 괜한 오해”
입찰참여시 이행각서 제출해도 ‘무용지물’
명분에 밀려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
 
■ 조합들 반응

일선 조합들은 “유리한 조건변경을 거부할 땐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조건변경을 허용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근 시공자를 선정한 지방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경쟁 시공자가 조건을 변경할 때엔  ‘조합원들에게 더 큰 개발이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제시한다”며 “그런데 이를 이유없이 거부하게 되면 특정 회사를 편든다는 오해만 살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재건축조합의 경우 시공자 조건변경을 거부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조건변경을 인정하는 등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당시 이 조합 집행부는 시공자들의 조건변경이 거의 날마다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득실을 충분히 따질 수가 없다고 결론짓고, 조건변경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판단이지만 엉뚱하게도 조합-시공자간 결탁설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말았다.
 
이 조합의 조합장은 “조건변경을 한 시공자가 일부 조합원들을 선동해서 조합이 마치 특정 시공자와 내통하는 것인양 언론 등을 활용해 교묘히 공격했다”며 “조건변경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는데도 오히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로 뒤바뀌어 어쩔 수 없이 허용하게 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통상 시공자 선정절차 과정을 살펴보면 조합은 참여시공자에게 ‘입찰참여시 조건은 변경할 수 없다’는 내용의 입찰지침서를 배포하고, ‘이를 어길 때에는 참가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의 이행각서까지 제출받는다.
 
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최고의 이익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시공자들의 대의명분 앞에서 조건변경을 거부하다가는 오히려 특혜시비에 휘말릴 뿐이다. 조합 입장에서 마땅히 취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결국 제출받은 이행각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조합이 현장설명회 때 사업제안서의 틀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해서 시공자에게 배포한다면 조건변경이 이뤄지더라도 다소나마 변경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공사비나 사업비 항목 등을 상세히 분류해서 공란으로 만들고, 그 공란을 시공자들이 채우는 방법으로 제안서를 제출받는 방법도 그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조건변경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행각서에 따라 조건변경 시공자의 입찰참가 자격을 박탈하더라도 조합 입장에서는 내심 걱정거리가 있다. 어디까지가 조건변경인지를 두고 경쟁사간에 다툼이 발생할 게 뻔해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조건변경으로 보고 자격을 박탈한다면 마지막엔 선정할 시공자도 없어지게 된다. 이럴 경우 시공자 선정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대해 이 전문가는  “조건변경을 허용한다면 차라리 애초부터 조건변경의 폭을 정해주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라며 “변경가능한 범위와 그렇지 않은 범위를 명시해 두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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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자 조건변경은 판세 뒤엎기용?
 
■ 원인과 파장

시공자들이 조건을 변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제안서 개봉 결과 경쟁사보다 제안내용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수준의 시공자들이 수주에 참여했다면 당연히 조건이 좋은 쪽이 선택받는다. 결국 불리한 판세를 뒤엎기 위해서는 경쟁사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변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조건변경이 한 번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경쟁사간의 치열한 눈치보기 끝에 하나씩 하나씩 순차적으로 바꾼다. 이같은 경쟁사들의 눈치보기는 제안서 개봉 이후부터 총회 당일 현장에서까지 계속된다.
 
총회일이 가까워 올수록 조건변경은 도를 넘게 되고, 막판에는 ‘경쟁사의 조건보다 무조건 자사가 좋다’는 근거없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다. 심지어 총회 당일에는 참여시공자별 조건들을 모두 합친 제안으로 통합되는 양상도 보이게 된다. 결국 조건변경을 허용하게 되면 과열·혼탁이 난무하는 막가파식 수주전으로 치닫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조건변경이 무차별적으로 허용된다면 사업참여제안서를 꼼꼼히 작성할 필요도 없게 된다”며 “어차피 경쟁사의 조건을 보고, 나중에 바꾸는 게 차라리 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업계간 지켜야 할 상도덕은 그나마 지켰다”며 “이제는 상도덕은 커녕 비방과 음해로 경쟁사 흠집내기가 수주전 최고의 전략이 돼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시공자를 선정한 지방의 한 재건축조합원은 “총회가 가까워질수록 시공자들의 사업제안이 너무 많이 바뀌어 어느 시공자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는지 판단이 흐려졌다”면서 “나중에는 어느 시공자의 사업제안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할만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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