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조합원에 금품·향응 제공
롯데, 선정총회 결의 무효
대법원 판결 반전없을 땐
사업지연에 피해 불가피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불법수주 드러난 현대건설
시공권은 그대로 유지
해당 직원만 처벌 판결
[하우징헤럴드=문상연 기자] 최근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치열한 수주전에서 건설사가 조합원들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한 것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똑같이 위법행위를 저지르며 획득한 건설사의 시공권 인정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법원은 위법행위가 총회 결의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는 오히려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막고자 마련된 규정들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라며 똑같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2심 판결에서 롯데건설 선정 총회 결의 무효
최근 송파구 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새로운 시공자 선정에 나섰다. 법원이 기존 시공자인 롯데건설의 시공자 선정 총회 결의가 일부 조합원들에게 제공한 금품·향응이 영향을 미쳤다며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지난 2017년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은 2019년 조합을 상대로 시공자 선정총회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총회 결의는 무효가 된다. 때문에 조합이 사업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 전에 새롭게 시공자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시공사 선정총회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해 8월 롯데건설의 금품·향응 제공 사실을 인정한 형사소송 판결을 인용하면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롯데건설과 그 직원들은 일부 조합원들에게 숙박 등 금품 및 향응을 제공했고 이러한 롯데건설의 부정한 행위는 시공사 선정에 관한 조합의 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라며 “강행규정인 구 도시정비법 11조 1항 본문을 위반해 이뤄진 무효의 결의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롯데건설은 이 사건 결의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66명이고, GS건설에 투표한 사람 4인을 제외하면 62명이어서 이 사건 결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섣부르게 단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 주장은 66명이 조합원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조합원 개개인에게 제공한 향응의 액수가 10만원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공의 의사표시에만 그친 경우도 있었지만 이러한 사정만을 들어 이 사건 결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원은 공사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점도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조합은 대법원 최종 판결에 있어 원심이 유지될 경우 시공권 무효에 따른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선제적으로 시공사 재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지난달 25일과 8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시공자 선정 입찰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했으며, 롯데건설만 단독으로 참여해 경쟁구도 미성립으로 유찰됐다. 이에 롯데건설과 수의계약이 유력한 상황이다.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건설사·정비업체·홍보업체 짬짜미에도 현대건설 시공권 인정
최근 법원이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사업 조합장과 시공자인 현대건설 직원들이 각각 벌금형과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에 시공자 선정 당시 불법 수주행위가 드러났지만, 현대건설의 시공권은 그대로 유지되고 해당 직원만 처벌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장에게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또한 현대건설 직원은 배임중재로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했다. 이 밖에도 정비업체 신한피앤씨와 대표에게 벌금 500만원을, 홍보업체 직원들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합, 시공자, 정비업체, 홍보용역업체 등 모두가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 현대건설에 대해 유리하게 홍보하고, 조합원이 현대건설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해 시공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에서 원심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조합장은 자격이 박탈될 전망이다.
하지만 시공자인 현대건설의 지위는 유지된다. 지난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법원이 조합과 시공자의 손을 들어주고 피고 측에서 항소기간 내 항소하지 않으면서 확정증명을 받으며 재판이 완전히 종료됐기 때문이다.
해당 소송은 지난 2019년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9년 8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재판장 박석근)는 일부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낸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조합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현대건설이 위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위법행위들이 총회결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1인당 30만원에서 최고 200만원 사이로 비교적 소액의 금품을 제공한 점, 금품을 제공받은 조합원이 133명 미만으로 해당 표를 제외하더라도 총회 결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점 등으로 금품제공이 시공자 선정 입찰의 공정성을 해치거나,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결정권이나 선택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계 “오락가락 판결 이해하기 어려워”
업계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막고자 마련된 규정들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미성크로바 재건축사업의 경우 위법행위 대상인 조합원 수가 총회결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롯데건설의 주장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반포주공1단지는 현대건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금품 제공과 개별홍보 규정은 도시정비법 및 정비사업계약업무 처리기준에서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규정인데도 불구, 금액이 적거나 총회결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위법행위가 인정된 만큼 반드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금품·향응 제공 등은 도정법에서 관련 처벌규정까지 마련해놓은 위법사항으로 총회 결과에 따라 판결을 내릴 문제가 아니라 위법행위를 행한 것 자체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