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자 선정기준 문제 뭔가
시공자 선정기준 문제 뭔가
  • 박노창 기자
  • 승인 2006.07.19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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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9 18:01 입력
  
대형건설사 독무대 예고… ‘탁상행정’ 비난
사업성 좋은 곳 메이저건설사들이 시장 독식할 듯
조합·정비업체·시공사간 물밑거래 등 악순환 예고
 
건설교통부가 마련중인 ‘정비사업조합 시공자 선정기준’을 두고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또 홍보공영제, 서면결의, 참여제안서 수정 등 이번 기준(안)의 핵심에 대해 관련업계가 반발하면서 대폭적인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선 홍보공영제로 요약되는 시공자 합동홍보설명회 때문에 사업성이 좋은 곳은 대형건설업체가 독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이로써 업체간 양극화 현상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준(안)에 따르면 조합에서는 1회에 한해 시공자 합동홍보설명회를 개최해야 한다. 참여시공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개별적인 홍보가 일체 금지돼 있어 20여분 정도 주어지는 설명회 때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조합원들은 참여시공자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단순한 도급공사비나 기존에 구축돼 있는 브랜드파워 등 기본정보만으로 시공자를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한 중소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업체는 중소업체에 비해 홍보나 광고가 덜 필요하다”며 “홍보공영제가 실시되면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회사나 제품 등에 대해 충분히 알릴 기회를 박탈 당하게 된다”고 항변했다. 이어 “기회를 균등하게 주기 위한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게 된다”며 “조합원의 알 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홍보공영제를 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전문가는 “업체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대형업체 편들기에 지나지 않게 되는 모순이 있다”며 “대형업체들의 담합이 더욱 더 가속화돼 본격적인 판짜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또 조합-정비업체-시공자간 음성적인 편법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합에서는 일반경쟁이든, 지명경쟁이든, 제한경쟁이든 입찰공고를 내야 한다. 이때 참여시공자가 적어 유찰이 될 경우 재공고를 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다. 조합과 정비업체, 시공자가 담합하면 재공고가 불가피한 상황을 고의로 연출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 보장받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만들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투명한 시공자 선정절차를 만들기 위한 애초 취지와는 달리 조합-정비업체-시공자에게 편법을 저지를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입찰제한을 여러 가지로 조작하다 보면 특정업체를 배제시킬 수 있다”며 “고의로 특정업체를 배제한 뒤 참여하면 오히려 손쉽게 시공자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반대로 사업성이 좋지 않은 곳은 상황이 더욱 더 꼬이게 됐다. 채산성이 떨어지는 곳은 시공자가 조합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빈익빈 부익부라는 악순환만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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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따놓고 보자”… 막가파식 수주전 불보듯
■수정제안 가능해지면…
 
참여제안서에 대한 수정제안이 가능해지면서 ‘일단 수주만 해놓고 보자’는 식의 막가파식 수주전이 예상되고 있다.
 
기준(안)에 따르면 참여시공자는 시공자 합동 홍보설명회때와 조합원 총회에서 두 차례나 수정제안이 가능하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관계자는 “조합은 총회 전에 참여제안서를 담은 총회자료집을 조합원들에게 발송하는데 이 자료집을 근거로 조합원들이 시공자를 선정하게 된다”며 “하지만 막상 총회장소에서 다시 수정제안이 이뤄진다면 사업장을 볼모로 한 ‘경매’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 “수정제안 때 단순히 도급공사비 금액이 아니라 건설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수정제안을 할 경우 현장에서 정확히 득실을 판단할 능력을 갖춘 조합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총회장에서 수정제안이 가능할 경우 한 업체에서 도급공사비를 내린다면 다른 업체도 공사비를 하향조정하게 되고, 이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사비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조합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일단 수주만 해놓고 보자는 식으로 시공자 선정이 이뤄질 경우 막상 관리처분 당시에는 하향조정한 공사비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추가분담금의 대폭적인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참여제안서는 각 업체마다 적정이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출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수정제안을 해서 수주를 했다면 추후에 추가분담금을 올리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아파트의 품질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 재건축 전문가는 “추가분담금이 많이 올랐을 경우 시공사를 교체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며 “시공사를 교체하기 위해 조합이 겪어야 하는 내홍과 사업지연에 대한 손실 등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오히려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참여조건을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며 “적정공사비가 책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참여시공자 측에서도 충분히 검토한 뒤 제안할 수 있도록 참여제안서 접수기간을 충분히 주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 수정제안이 계속될 경우 실제 총회장소에서 투표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통상 조합원 총회는 3~4시간 이상이 소요되는데 총회에서는 조합원들의 편의를 위해 안건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동시에 투표가 진행되는 게 비일비재하다. 수정제안 이전에 투표를 했다면 무효가 되는 것인지, 수정제안을 몇 회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 총회의 현실을 아예 모르는 건교부의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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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결의 논란 가열
■핫이슈 분석
 
이번 기준(안)에서는 서면결의가 배제되고 조합원의 직접 참석만 출석이나 결의로 인정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의결권 침해 등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민법이나 기타 법률에서도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또 건교부에서 고시한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 제22조도 서면과 대리인에 의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공자 선정때만 서면결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운영규정 제22조 제2항은 “토지등소유자는 서면 또는 제13조 제2항 각호에 해당하는 대리인을 통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서면에 의한 의결권 행사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출석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항은 “토지등소유자는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출석을 서면으로 하는 때에는 안건내용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여 주민총회 전일까지 추진위원회에 도착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때 그때’ 다른 법적용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 법무법인 동인의 맹신균 변호사는 “시공자 선정 과정을 둘러싼 혼탁·과열 등을 막기 위한 동기나 취지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서면결의도 엄연한 의결권 행사의 한 방법”이라며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든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건교부에서는 시공자를 선정할 때 조합원들이 행사하는 서면결의는 진정한 의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관계자는 “질병이나 개인적인 이유 등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제는 아파도 안되겠다”며 “의결권을 행사할 기회를 아예 박탈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번 기준(안)은 일선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시공자 선정총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비전문가의 몽상일뿐”이라고 일축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조합원의 서면결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건설사나 용역업체 직원이 서류를 조작하거나 돈으로 매수하는 등 투명성 시비가 끊이지 않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불가피하게 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본인 작성 여부가 확인된 서면결의서는 인정해 주는 대안도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한 재건축 전문가는 “시공자 선정에 대한 본인의 의사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면 서면결의서에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총회의 모든 안건에 대해서도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서면결의를 인정한다면 통상 ‘비대위’들 때문에 사업이 장기화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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