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건축물 소유자, 토지등소유자 자격 없다
무허가건축물 소유자, 토지등소유자 자격 없다
  • 심민규 기자
  • 승인 2008.05.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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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건축물 소유자, 토지등소유자 자격 없다
 
  
법원 “토지등소유자로 인정한 추진위 승인은 무효”
조합 “사실상 적법 건축물… 자격 있다” 강력 반발

 
재개발사업에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를 토지등소유자에 포함해 승인받은 추진위원회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이경구)는 재단법인 지덕사가 동작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무허가건축물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정하고 있는 토지등소유자의 자격 요건인 건축물 소유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를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한 추진위원회승인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도정법〉 시행 이후 그간 논란이 되어 온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의 토지등소유자 포함여부에 관한 첫 판결이어서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인 재단법인 지덕사 측은 “〈도정법〉 제2조제9호가목, 제19조에 규정된 토지등소유자의 개념에는 정비구역 안에 소재한 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도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한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행 〈도정법〉 제2조제9호가목에는 재개발사업의 토지등소유자에 대해 “정비구역 안에 소재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그 지상권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피고인 동작구청장 측은 〈도정법〉 제2조제3호다목, 제4조제1항, 〈도정법〉시행령 제2조제2항제3호 등의 규정에 들어 “기존 무허가건축물도 재개발정비사업의 대상이 되는 정비구역 내의 노후·불량건축물에 해당하므로 기존무허가건축물 소유자도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도정법〉 제2조제3조제3호다목은 “도시미관의 저해, 건축물의 기능적 결함, 부실시공 또는 노후화로 인한 구조적 결함 등으로 인하여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건축물”이라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령제2조제2항제3항은 “건축물의 급수·배수·오수설비 등이 노후화되어 수선만으로는 그 기능을 회복할 수 없게 된 건축물”로 정하고 있다.
 
또 구청은 “표준정관과 시조례의 규정에 비춰 보면 조합설립이 된 경우 기존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에 대해 조합원 및 분양대상자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기존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도 추진위원회의 구성에 동의할 수 있는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난 1999년 7월 선고된 대법원의 판결(1995년 12월 29일 개정 전의 구 〈도시재개발법〉에 대한 판결)을 인용해 “무허가건축물은 원칙적으로 관계법령에 의하여 철거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이익을 향유하게 하는 것은 위법행위를 한 자가 이익을 받는 결과를 허용할 수 없는 점 △무분별한 무허가 주택의 난립을 규제할 현실적 필요성이 적지 않은 점 △위법을 저지른 자가 적법한 토지등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나아가 법원은 무허가건축물이 관련 법령에 의해 노후·불량건축물에 해당한다는 구청의 주장에 대해 “정비계획의 수립대상구역에 관한 것일 뿐 토지등소유자의 범위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또 “조합원 및 분양대상자로서의 자격도 적법하게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 그 조합정관에 의하여 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조합이 설립되기도 전에 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가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되어 당연히 조합원의 자격을 가진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며 피고의 주장을 일축했다.
 
▲소송 어떻게 진행됐나=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산 65번지 일대 5만6천595㎡에 위치해 있는 상도11구역은 지난 2004년 6월 25일 고시된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포함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최 모 씨가 이 구역의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토지 및 건축물 소유자 52명중 1명, 토지 소유자 16명 중 2명, 건축물 소유자 273명(이 중 272명은 무허가건축물 소유자) 중 182명 등의 각 동의를 얻어 추진위원회 승인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동작구청은 지난 2005년 4월 13일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인 54.25%가 동의했다는 이유로 추진위원회를 승인했다.
 
하지만 이 구역 내 토지의 대다수를 소유하고 있는 지덕사 측은 재개발사업에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는 토지등소유자에 포함되지 않으며 또 추진위 구성에 동의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의 상당수가 형식상 무허가건축물관리대장에만 등록돼 있다고 주장, 추진위 승인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이 구역에는 이번에 판결된 ‘재개발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처분 취소’ 소송 외에도 ‘조합설립인가 처분취소’ 소송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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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조합원자격 별개
대법원서 결과 바뀔 수도
 
■ 전문가 반응
 
이번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법무법인 상선의 김향훈 변호사는 “서울시 조례에 의해 기존무허가건축물 소유자에게 분양권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분양권과 조합원 자격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조합원 자격은 조합이 설립되고 조합정관에 따라 그 자격이 부여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설립 후 이러한 자격을 주는 것은 재개발 사업 시행으로 인한 피해에서 보호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취지를 놓고 보면 무허가건축물 소유자가 사업의 시작 여부를 결정할 만큼의 권한을 부여할 만한 법적 근거와 필요성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중의 박일규 변호사도 “구 〈도시재개발법〉에 따른 대법원 판례가 나와 있는 상태여서 무허가건축물 소유자에게 토지등소유자의 자격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며 “구 〈도시재개발법〉과 마찬가지로 〈도정법〉에서도 건축물 소유자는 적법한 건축물을 소유한 사람에 한해 토지등소유자 자격이 주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반면 판결에 인용된 대법원 판례와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법무법인 국토의 김조영 변호사는 “〈도정법〉에 의한 재개발사업은 구 〈도시재개발법〉의 재개발사업에 비해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공익적인 면이 강하다”며 “노후·불량건축물을 재정비한다는 법의 취지를 놓고 본다면 이번 판결이 반드시 옳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정관이나 조례에서 조합원의 자격과 분양권을 주는 것은 기존무허가건축물 소유자들에게 일정부분 토지등소유자로서의 권리가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이 하급심인 만큼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과는 뒤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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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사용료에 건축물 대장까지 있는데…” 분개
 
■ 조합·구청반응
 
이번 추진위원회승인취소 소송의 해당 조합인 상도11구역 재개발조합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부당하다는 입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상도11구역의 최윤호 조합장은 “우리구역 내에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1960년대 지어져 무허가건축물 대장에 등재된 기존무허가건축물”이라며 “이러한 무허가건축물들이 노후화됨에 따라 재개발예정구역으로 편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허가건축물 소유자가 토지등소유자의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은 우리구역을 기본계획상 정비예정구역으로 반영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분개했다.
 
최 조합장은 또 “그동안 우리구역의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들은 토지 사용에 대한 세금 등을 지덕사 측에 지불했다”며 “토지와 건축물에 대한 권리가 모두 있으므로 당연히 토지등소유자로 인정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또 최조합장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끝까지 투쟁해 우리구역의 무허가건축물 소유자들의 권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구청도 이번 판결에 대해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구청 담당자는 “조합이 설립되면 기존무허가건축물의 소유자들 역시 서울시 조례에 따라 분양자격이 주어지게 된다”며 “조합원 자격이 없는데 분양자격을 주는 것이 오히려 법의 취지를 벗어난 것 아니냐”며 판결에 불만을 제기했다.
 
다만 항소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 담당자는 “현재 항소를 할지에 대해서는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며 “검찰의 소송지위 요청에 따라 향후 관계자들과 협의해 항소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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