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대책’ 논란
서울시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대책’ 논란
‘세입자 알박기’ 인정한 셈 사업지연 손해책임은 누가
  • 심민규 기자
  • 승인 2013.03.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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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협의체 구성 후 미이주자 5회 이상 합의 의무화
이주 한 달 지체되면 수십억원 날려… 조합원만 피해

 


서울시가 정비구역 내 세입자에 대한 강제퇴거를 제한함에 따라 사업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시는 지난달 21일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철거를 제한하는 내용의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조합임원과 세입자,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사전협의체’를 운영해 최소 5차례 이상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는 보상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명도소송을 통해 이주 절차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협의과정이 길어져 이주비 금융비용은 물론 공사비가 상승되면서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이 발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현장에서는 세입자의 과도한 보호로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이주기간 1달 늘어나면 수십억원 손해… 조합원 부담금 늘어=일선 업계에서는 서울시의 ‘강제철거 예방대책’이 사업에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철거 예방대책이 시행됨에 따라 조합에서는 사전협의체를 구성해 미이주 세입자 등과 최소 5회 이상의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협의과정이 길어지면서 이주기간이 당초 예정보다 늘어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관악구의 A재개발구역은 지난해 6월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세입자 23명에 대해 명도소송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서울시가 강제철거를 중단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조합과 세입자, 서울시가 협의에 나섰지만 최근에서야 철거를 완료했다. 강제철거는 막을 수 있었지만, 이주기간이 지연되면서 사업비와 이주비에 대한 금융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이 떠안게 된 것이다.


세입자가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고의적으로 이주를 하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는 A구역만이 아니다.
서대문구의 B재개발 구역도 지난 2010년 이주·철거를 시작해 2011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일부 조합원과 세입자가 이주를 거부하면서 사업이 약 2년간 지연됐다. 이에 따라 이 구역은 금융비용이 약 240억원 가량 추가로 발생해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했다. 이 구역에서 분양한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 약 5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48가구가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다.


또 지난 2009년 이주를 시작한 성동구의 C재개발 조합 역시 이주가 지연되면서 사업비와 이주비 금융이자로 매달 10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


성동구의 D재개발구역도 이주가 절반가량 진행된 상태에서 2년 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면서 100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어야 했다.


한 철거업체 관계자는 “자진 이주를 하지 않는 세입자들은 이주기간이 늘어나면 금융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을 악용해 조합에 추가보상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추가보상을 약속하지 않는 이상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5차례나 되는 협의기간은 이주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비용과 공사비가 증가함에 따라 조합원들의 부담금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과도한 세입자 보호 정책이 조합원들의 재정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티면 더 준다’ 관행 이어져…서울시 고의적인 ‘알박기’ 인정=업계 전문가들은 사전협의체 운영이 일반화될 경우 ‘버티면 더 준다’는 학습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하고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한 달만 이주를 하지 않더라도 많게는 수십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협의를 5차례나 거치면서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비공식적으로 추가보상을 조건으로 합의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비공식적인 추가보상이 일반화된다면, 추가보상금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이주를 하지 않는 세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철거업체 대표는 “협의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조합과 세입자간의 불법적인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협의를 통해 세입자를 이주시키라는 것은 사실상 서울시가 세입자의 알박기를 합법화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여기에 추가 금융비용이나 보상금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된다는 것도 문제다. 정비사업에서 이주는 통상적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이후에 진행된다. 따라서 조합에서 예상하지 못한 금융비용이나 보상금이 추가로 발생한다면 관리처분을 변경해야 하는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착공이 늦어지면 물가상승에 따른 공사비도 인상돼 조합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이 조합원들을 내쫓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최태수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사무국장은 “영세한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조합원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무조건 협의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악성 세입자를 퇴거할 수 있는 방안이 병행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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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벽 퇴거 금지… 강제철거 인권 매뉴얼도 내달 시행

 


■ 어떤 내용 담았나
서울시는 강제철거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준수해야 할 ‘서울시 강제철거 인권 매뉴얼’도 작성한다.
강제철거 인권 매뉴얼은 먼저 강제철거를 집행하기 전 거주자들에게 충분한 협상기회를 제공하고, 철거는 반드시 거주민이 모두 퇴거절차를 완료한 후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거주자에게 강제퇴거시기를 명확하게 사전고지 해야 하며 동절기는 물론 밤, 새벽, 악천후 시에도 강제철거를 피하도록 했다.


또 철거에 동원되는 공무원과 용역업체 직원은 사전에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며, 여성 거주민이 포함돼 있는 경우에는 성희롱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여성 공무원이나 여성 용역업체 직원이 참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철거를 집행하기 전에는 거주민에게 용역업체 대표의 이름과 동원인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다.


시는 앞으로 각계의 의견 수렴과 시민공청회 등을 거쳐 ‘강제철거 인권 매뉴얼’을 내달 중에 확정해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강제철거가 집행되기 전에 충분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며 “서울시와 소속 기관부터 매뉴얼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고, 재건축·뉴타운 사업 등 민간주체로 추진되는 사업에서도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시가 관리·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법을 초월해 강제철거를 과도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는 강남구청이 탄천운동장 넝마공동체 거주공간을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거주민을 폭행·구금했다는 논란이 일어 서울시가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또 덕수궁 대한문 앞 불법 농성촌에서도 관할인 중구가 행정대집행을 예고했지만, 시가 만류하면서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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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세입자·공무원 등
5명 이상 사전협의체 구성

 

 


■ 어떻게 운영되나
서울시는 ‘강제철거 예방대책’을 통해 강제철거로 인해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조합과 세입자 간의 대화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는 명도소송 결과에 불복해 이주하지 않는 세대에 대해 법원 집행관의 강제퇴거조치를 시행해왔다. 결국 명도소송에 따른 강제퇴거 조치는 적법한 절차이지만, 사회적 갈등은 물론 정비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각인돼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강제철거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사전협의체는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하거나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구역에서 조합장과 조합임원, 가옥주, 세입자, 공무원 등 총 5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관리처분을 앞둔 조합에서는 미리 사전협의체를 구성해 관리처분인가 신청 시에 운영계획을 관할 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운영기간은 관리처분인가 시점부터 이주완료시까지 조합과 가옥주, 세입자 간에 원만한 이주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시로 운영하게 된다.


또 사전협의체는 자진이주하지 않는 세입자 등과 최소 5회 이상의 대화와 협의를 거쳐 합의를 유도해야 하며,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도시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조정을 받아야 한다. 만약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에서도 합의하지 못할 경우에는 명도소송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현재 이주가 진행되고 있는 구역에 대한 모니터링도 실시한다. 시는 지난해 7월부터 강제철거가 우려되는 명도소송 진행 구역 25개 정비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치구의 협조를 받아 ‘이주 및 철거 현황’을 매주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2013년 2월 현재 모니터링 대상 구역 중 명도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은 △금호20 △보문3 △상도10 △신사19 △신정4 △아현4 △용강3 △홍은12 △월계3 △현석2 △옥수13 △당산4 △만리2 △미아4 △북아현1-3 △신길7구역 등이다.  이주가 완료된 구역은 △봉천12-1 △녹번1-3 △하왕1-5 △면목2 △금호13 △신길11 △긴등마을 △북아현1-2 △가재울4구역 등이다.


이와 함께 시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현장에서 강제철거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기 위해 사전협의체 구성·운영 방안은 물론 동절기(12월~2월)에 철거를 제한하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건의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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