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하이엔드 브랜드 열풍… ‘시공자 교체’ 속출
재개발·재건축 하이엔드 브랜드 열풍… ‘시공자 교체’ 속출
새 갈등 요인 급부상… 대책은 없나
  • 최진 기자
  • 승인 2021.12.0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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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사업규모·공사비 기준없이 ‘묻지마 고급브랜드’
신월곡1 일부조합원 ‘르엘·갤러리아포레’ 요구 갈등

 

[하우징헤럴드=최진 기자]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남용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수한 입지에 차별화된 프리미엄 단지를 선보이기 위해 도입한 브랜드 취지와는 달리, 최근에는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안하는 이른바 ‘표심용 브랜드’로 평가되면서 브랜드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자사의 내부 선정기준과 독자적인 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엄격하게 하이엔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면서도 객관적인 선정기준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일반브랜드와의 차별성 또한 기존 수주 현장들과의 문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  명확한 구분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호한 선정기준으로 인해 기존 정비사업장에서는 기존 브랜드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변경하거나 기존 시공자를 교체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정비업계에 불어온 하이엔드 열풍… 입지·규모·공사비 구별 없어

올해 하반기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수주전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향연이 연속됐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및 지방 정비사업장에서는 어김없이 하이엔드 브랜드가 등장해 수주권을 거머쥐었고 심지어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가로주택 정비사업에서도 1군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대우건설은 지난달 6일 경기도 과천주공5단지 재건축사업의 시공권을 따내며 건설업계 누적 수주액 1위를 달성했다. 총 공사비 4천300억원으로 1천351가구를 신축하는 이 단지에는 대우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적용된 ‘써밋 마에스트로’가 제안되면서 도급순위가 높은 GS건설을 제치고 시공권을 획득했다. 대우건설은 지난달 29일에도 동작구 노량진5구역 재개발사업에 ‘써밋 더 트레시아’를 제안해 경쟁사를 제치고 시공권을 획득한 바 있다.

하반기 강북 정비사업 수주 최대어로 꼽히는 북가좌6구역 재건축사업에서는 시공권을 두고 DL이앤씨와 롯데건설이 각 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꺼내며 진검승부를 벌였다. 입찰당시 DL이앤씨는 ‘드레브 372’라는 단지명을 제안했다. 하지만 롯데건설이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을 제안하자, 돌연 DL이앤씨도 자사의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를 공사비 인상도 없이 제안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간의 경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하이엔드 브랜드의 공사비 차이도 사실상 없어졌다. 롯데건설은 원안설계 기준 평당 공사비 466만원에 ‘르엘’을 적용한 대안설계 기준 평당 488만원을 제안했다. 반면 DL이앤씨는 원안설계 기준 평당 공사비 494만원을 제안한 데 이어 ‘아크로’를 적용한 대안설계도 동일한 평당 공사비를 제안했다.

정비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사실상 하이엔드 브랜드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현대건설은 한남시범아파트 소규모 재건축사업에도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꺼내들어 수주권을 획득했다. 이후 지난달 9일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사업에서도 하이엔드가 적용된 ‘디에이치 클라우드’를 제안해 수주에 성공했다. 평당 공사비는 585만원, 총 공사비는 3천834억원 규모다.

당시 현대건설 관계자는 “누구나 원하는 하이엔드 브랜드지만, 아무나 얻을 수 없는 것이 하이엔드 브랜드”라며 “엄격한 선정기준을 통해 제안되는 만큼 차별화된 프리미엄 단지를 짓겠다”고 말했다.

▲하이엔드 브랜드의 거센 열풍… 정비업계 새 갈등요소로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이미 시공자를 선정한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기존 브랜드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서다. 

서울 강북구 신월곡1구역 재개발사업에서는 일부 조합원들이 시공자인 롯데·한화건설 컨소시엄에 하이엔드 브랜드인 ‘르엘’이나 ‘갤러리아 포레’등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조합원들은 평당 공사비 560만원이라는 높은 공사비에도 불구,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또 토지등소유자가 400명가량, 신축물량이 2천200가구 규모기 때문에 사업성도 우수하다며 하이엔드 브랜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이엔드 바람이 거세지면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더라도 시공자를 교체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7구역에서는 SK에코플랜트가 시공권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노량진 일대가 흑석동에 이어 ‘준강남’으로 급부상하면서 하이엔드 바람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앞서 노량진8구역도 시공자인 DL이앤씨에 브랜드 교체를 요구해 노량진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도입한 바 있다. 

노량진7구역 조합원들은 지난 9일 조합임원에 대한 해임총회를 개최한 데 이어, 곧장 시공자 교체까지 추진하고 있다. 해당 사업장은 신축 614가구 규모로 노량진 뉴타운에서 소규모 현장에 속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삼성물산이나 GS건설, 혹은 1군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면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더라도 시공자 교체에 나설 모양새다. 시공권을 상실할 위기에 놓인 건설사들도 소송전을 준비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한 재개발 조합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려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기존 시공자를 교체할 경우 이에 따른 사업지연과 소송에 따른 피해가 늘어나게 된다”라며 “신월곡1구역 조합원들이 결국엔 하이엔드 교체보다 신속한 사업추진을 선택한 것처럼 유행에 따른 교체보다는 사업현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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