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조합설립인가 무효 땐 조합임원 범죄 성립 안된다”
대법원 “조합설립인가 무효 땐 조합임원 범죄 성립 안된다”
‘제기4구역’ 판결사례로 본 의미와 전망
  • 이혁기 기자
  • 승인 2014.06.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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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조합장·감사·이사 ‘도정법 위반’ 처벌 할수 없어
조합 소멸까지만 ‘조합임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4구역은 철거가 30%가량 진행된 가운데 구역 곳곳에 노후된 건물과 쓰레기 등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이 구역은 대법원에서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을 받으면서 추진위 단계부터 재개발사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재개발정비사업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가 된 경우 그 전에 조합임원으로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을 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문제가 된 곳은 집행부가 ‘도정법’ 절차를 위반해 업체를 선정한 서울 동대문구 제기4구역이다.

 

지난 2009년 ‘도정법’상 조합 총회 결의사항으로 돼있는 철거감리업체 선정을 총회 결의 없이 선정해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집행부는 당시 조합설립인가에 대한 무효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조합 총회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은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소송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합 총회 개최가 불가능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벌금 ‘조합임원’에 200만원씩을 선고했다.

 

이후 2013년 5월 조합설립인가처분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집행부를 ‘조합임원’으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돼 왔다.

 

한편, 제기4구역은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로 인해 추진위 단계부터 사업을 재개한다.

 

대법원은 재개발사업에 대한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일 경우 기존 조합임원이 ‘도정법’을 위반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조합설립인가가 무효로 될 경우 기존 조합장과 감사, 이사 등은 ‘도정법’에 명시돼있는 ‘조합임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제기4구역 재개발사업 임원들을 상대로 판결한 원심을 뒤집었다.

 

조합장 이모씨와 총무이사 박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씩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원(재판장 양승태)은 이와 같은 이유로 “조합임원이란 ‘도정법’에 따라 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토지등소유자로 구성돼 설립된 조합이 둔 조합장·이사·감사의 지위에 있는자”라며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처분이 무효여서 처음부터 조합이 설립됐다고 할 수 없을 때에는 조합장, 이사 또는 감사로 선임된 자는 ‘도정법’ 위반죄의 주체인 ‘조합임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기존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가 확정되는 순간 그동안 ‘조합임원’으로서 ‘도정법’ 위반 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 내 또 다른 의견도… 조합설립인가 시점부터 조합의 지위가 소멸될 때까지는 ‘조합임원’으로 봐야

 

이번 사건에서는 재판부 내에서 다른 시각도 제시됐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이상 ‘조합임원’으로 인정하며, ‘도정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철·고영한·김창석·김신 등 대법관 4명은 소수의견으로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인 경우에도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도정법상 ‘조합임원’이 금지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도정법의 임원처벌 규정은 조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조합원과 조합의 법적 이익이 보호될 수 있기 위해서는 조합의 최종적인 운명과 관계없이 조합설립인가 시점부터 조합이 지위를 상실하는 판단을 받는 시점까지, 또는 조합의 지위가 소멸되는 시점까지 조합임원의 의무가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로 확인됐다고 하더라도 조합이 행정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아 법인으로 등기한 이상 피고인 이씨 등은 ‘조합임원’에 해당한다”며 “조합임원으로서 실체가 부정돼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행위 당시의 시점에서 범죄 성립여부를 확정할 수 없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한편, 사건을 맡아 피고의 변호를 진행한 법무법인 정비의 윤영현 변호사는 “이 사건은 법 논리에 치중하느냐와 감정에 치중하느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예상돼왔다”며 “기존 피고인들의 행위 자체는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합장·이사라는 신분범위 인정 여부를 두고 법적 공방을 벌인 것이기 때문에 법 논리적으로는 무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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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로
추진위 단계부터 다시 시작

 

 

■ 재개발사업 재개 나선 제기4구역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제기4구역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을 받는 등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재개한다.

 

기존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서 일부지역이 철거된 상황이었지만,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로 인해 추진위단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제기4구역(추진위원장 이홍자)은 지난달 28일 추진위원장을 선출하는 등 새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절차에 따라 사업 재개에 나섰다.


이 구역은 동대문구 제기동 288번지 일대 3만3천282㎡로, 지난 2005년 12월 구역지정을 받았다.

 

이후 2006년 2월 추진위원회를 승인받아 같은해 10월 조합설립인가, 2009년에는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이 제기한 조합설립무효 확인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대법원에서 최종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을 받았다.

 

2006년 조합설립인가 신청 당시 구의 미숙한 행정절차로 인해 조합설립인가를 받게 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일부 조합원이 구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조합설립인가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확인 판결이 선고됐다.

 

이후 구가 항소했지만 2011년 서울고등법원에서 기각했고, 상고한 이후에도 지난해 대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원심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원심판결을 내놓은 서울행정법원(재판장 이인형)은 판결문에서 “2006년 조합설립인가처분 신청 당시 일부 동의서가 무효로 처리돼야 하는데도 이를 인정한 것은 인가처분 당시 78.59%의 동의율을 확보한 것에 불과하다”며 “옛 ‘도정법’상 토지등소유자의 5분의4 이상의 동의요건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동대문구청이 조합설립인가처분을 한 것에 대해 무효라고 본다”고 판시했다.


동대문구 주택과 공동주택팀 관계자는 “제기4구역은 대법원에서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이 확정된 이상 사업을 추진위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것”이라며 “향후 기존 시공자인 현대건설과의 관계도 무효가 되면서 사업시행인가 후 다시 선정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9년이 지났고 철거가 30% 이상 진행됐지만, 애초 구의 주먹구구식 행정절차로 인해 재개발사업을 추진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 시공자인 현대건설과의 관계가 사실상 무효로 확정되면서 현대건설이 지난해 일부 주민들을 상대로 서울중앙법원에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 이주시 기본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기로 했던 당초 계약체결 내용과는 달리, 시공자선정 지위를 상실하면서 이자비용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도 소송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합원들의 고통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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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조합 실체 없어 행정처분 무효

 

 

■ 보충의견 통해 반대 재반박

 

재판부내에서는 피고인들을 ‘조합임원’으로 인정하면서 처벌해야한다는 반대의견에 대해 보충의견을 통해 반박하는 내용도 나왔다


반박 내용의 주된 요지는 피고인들이 ‘조합임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합설립인가처분 무효는 처음부터 조합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합으로서의 법적인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조합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조합임원’의 존재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인복·이상훈·김용덕 등 대법관 3명은 “이 사건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정비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행정주체인 조합이 성립되지 않은 경우로, 일단 조합이 유효하게 성립됐다가 처분이 취소돼 사후적으로 조합의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와는 구별돼야 한다”며 “행정처분이 무효라는 것은 처음부터 아무런 법적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고, 조합으로서의 법적인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조합의 임원으로서의 실체도 인정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정법상 ‘조합임원’을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여서 조합이라는 법적 지위를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벌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며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인 경우 도정법상 ‘조합임원’이 구성요건상 주체로 규정돼 있는 금지조항을 위반한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다수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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