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업체가 독식하는 감정평가 - 선정기준이 왜 필요한가(中)
대형업체가 독식하는 감정평가 - 선정기준이 왜 필요한가(中)
사업 현장마다 들쭉날쭉 배점… 점수조작도 가능
  • 최영록 기자
  • 승인 2014.11.1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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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항목·비율 등 주관적 배점… 사업장마다 제각각
절대평가·상대평가 등 입맛대로 우열 가려 불법 조장




재건축 업계에서 소수 대형 감정평가법인의 싹쓸이 수주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시공자나 정비업체와 달리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는 별다른 기준이 없는 상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재건축조합들은 감정평가업체를 선정하는 평가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배점 부여의 기준이 되는 평가항목을 몇 가지만 바꾸면 얼마든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형법인들이 회사규모에 따른 배점기준 적용을 통해 손쉽게 수주해 왔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따라서 형평성 있고 투명하게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의적 평가기준… 사업장마다 제각각


대부분의 재건축조합들은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평가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 시공자 및 정비업체 선정기준과 같은 별도의 평가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조합은 공개입찰을 통해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입찰공고를 통해 참여한 평가법인이 결정되면 자체적인 평가기준을 수립해 각각의 배점을 매긴다.


하지만 평가항목을 비롯해 평가방법이나 평가비율, 배점 등이 제각각이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하는 곳이 있는가하면 평가항목을 더욱 세분화해 200점까지 높이는 곳도 있다.


또 평가비율에 있어서도 절대평가만을 기준으로 배점을 주는가 하면, 절대평가 점수와 상대평가 점수를 합산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 비율을 높이는 곳들도 있다. 이처럼 평가기준을 정하는데 특별한 기준이 없다보니 조합들마다 각기 다른 방법을 적용해 감정평가법인의 우열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평가항목도 사업장마다 다르다. 다만 공통적인 부문이 있다. 바로 법인의 규모에 따라 배점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평가를 기준으로 하는 대부분의 조합들은 법인의 신용등급, 감정평가사 수, 자본금, 매출액 등으로 회사의 안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법인의 재건축 수행실적도 추가하고 있다. 일례로 평가를 완료한 건수, 세대수, 금액 등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무평가사의 수행실적도 평가점수에 산입하는 경우도 있다.


또 상대평가를 추가하는 조합들은 투입인력의 적정성, 사업수행 목표와 내용 이해도, 사업추진과의 부합성·충실성, 프로젝트 관리 이행 충실도, 평가완료 후 지원 등으로 나눠 업체를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주무평가사가 몇 번이나 조합을 방문했는지, 얼마나 PT를 잘했는지, 앞으로 얼마만큼 피드백을 할 것인지 등의 추상적인 내용을 배점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부적격 평가로 인해 국토교통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법인에 대해서는 패널티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징계를 받은 평가사가 소속된 법인이 대상인지, 아니면 징계를 받은 주무평가사로 한정하는지는 조합의 자의적 판단을 통해 감점여부가 결정된다. 심지어 징계를 받은 시점을 정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평가기준을 통해 이사회와 대의원회에서 배점에 따라 순위를 정하고, 총회에 상정할 업체를 선별한다.


이때 배점이 높은 순서대로 기호가 정해지기 때문에 상위에 랭크된 법인은 그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이후 총회에서 2개의 감정평가업자를 최종 결정한다. 법적으로는 2개 업체 이상을 선정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대부분의 조합들이 통상 2개까지만 선정하고 있다.


▲사업장마다 등수도 들쭉날쭉… 점수조작도 가능


문제는 조합들이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는 평가기준이 공신력은 물론 형평성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심지어 신뢰성까지 의심받고 있다.


특정 평가법인이 높은 배점을 받을 수 있도록 얼마든지 점수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보니 동일한 평가법인이 어느 사업장에서는 높은 배점을 받아 1위에 랭크되는 반면 다른데서는 배점이 현저히 낮아 하위권에 머무는 등 일관성 없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대형법인 중 A법인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실제로 A법인의 경우 지난 7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의 감정평가업자로 선정될 당시 높은 평가점수를 받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에 반해 경기 광명시 철산주공8·9단지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치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평가점수가 40점을 겨우 넘겼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은 배점을 받은 것이다.


당시 평가점수를 살펴보면 A법인의 신용등급이나 평가사 수, 자본금, 매출액 등에 있어서는 다른 경쟁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법인 및 주무평가사의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1위 업체와 무려 50점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이면서 총 6개 평가법인 중 최하위에 머무르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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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1등 법인이 ‘꼴찌’ 될수도



■ 문제는 뭔가


재건축사업에서 감정평가업체들의 들쭉날쭉 배점결과는 비단 일부 사업장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재건축조합들이 자의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배점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법인의 경우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의 감정평가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최근 수주한 사업장들보다 현저히 낮은 배점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아하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방배5구역 선정 당시의 배점표를 살펴보면 S법인의 경우 100점 만점에 66.36점을 부여받았다.


반면 최근에 수주했던 철산주공8·9단지에서는 94.94점을 받았고, 청담삼익아파트에서도 200점 만점에 188.5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방배5구역에서는 상위권에 랭크한 평가법인이 탈락하기도 했다.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H법인과 J법인의 경우 배점이 80점 이상으로 각각 1·2위를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나눠먹기식 수주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평가항목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1·2위를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재건축단지들의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는 행태를 보면 상가를 두고 있는 경우 상가로부터 평가법인을 별도로 추천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럴 경우 조합과 상가가 각각 추천한 2곳 중에서 1곳씩 선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1곳은 조합이, 다른 1곳은 상가가 추천한 법인으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때 상가가 추천한 법인들 중에서는 1위와 2위의 점수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 1개 업체는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


철산주공7단지의 경우 상가가 추천한 J법인과 G법인이 올랐다. 당시 J법인은 70점을 받은데 반해 G법인은 37점 밖에 얻지 못하면서 J법인이 선정됐다.


나아가 이 J법인은 철산주공8·9단지에서도 69.29점으로 이때는 95.68점을 받은 N법인에게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더욱이 대형법인 간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하는 경우도 있다. 법인이 우량하다는 점을 이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한 반포주공1·2·4주구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곳은 각각 3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총 4개의 사업단이 입찰에 참여한 바 있다.


이 중 1위와 2위를 차지한 S법인·J법인·G법인과 M법인·N법인·H법인이 각각 선정됐다.


특히 이곳은 2개의 사업단을 선정했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총 6개사를 선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단지의 규모가 크더라도 통상 단독으로 2개사를 선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심지어 이곳은 ‘한남더힐’에서 감정평가 부적정 판정을 받은 3개사가 포함돼 있는데도 평가법인으로 선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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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점부여는 요식행위에 불과… 특정업체 밀어주기”



■ 업계 시각은


업계에서는 특정업체 밀어주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합이 평가기준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당락이 이미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합과 평가법인 간의 담합도 가능하다는데 있어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로비=수주’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조합원들의 재산을 정확하게 평가·산정해야 할 감정평가업자 선정이 비정상적인 요식행위로 얼룩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평성 있고 투명한 방식으로 평가업자를 선정하기 위해 별도의 선정방법이나 선정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는데 있어 별도의 평가기준이 없다보니 평가항목으로 얼마든지 점수를 조작할 수 있다”며 “실제로 대부분의 재건축단지에서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조합들이 입찰에 참여한 평가법인들의 평가점수를 채점하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결국에는 주무평가사가 조합에 얼마나 로비를 잘했는지 여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일부 대형법인들의 독식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거환경연구원 도시정비활성화지원센터의 김상규 실장은 “수많은 협력업체 중에서도 감정평가업자는 조합원들의 재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업체이기 때문에 선정하는데 있어 회사의 규모만 보고 선택하기 보다는 반드시 주무평가사의 실력을 따져봐야 한다”며 “그런데도 대부분의 조합들이 외형적인 부문을 중심으로 평가기준을 정하고 있어 국토부의 고시 등으로 합리적인 선정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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