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 지진으로 본 실태 점검
경기도 시흥 지진으로 본 실태 점검
  • 김병조 기자
  • 승인 2010.02.24 0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0-02-24 15:11 입력
  
서울·수도권내 아파트단지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1988년 내진설계 도입… 93년 준공단지도 위험군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 지진대책 마련 시급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9일 오후 6시경 경기도 시흥에서 3.0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충격을 안겨줬다. 연초부터 아이티 지진을 시작으로 멕시코와 대만 등 전세계적으로 지진의 공포가 이어지면서 국내 건축물에도 지진 대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관계부처에서는 비상이 걸려 줄줄이 대책을 내놓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1월 25일 재난안전관리종합대책을 내놓으며 국내 지진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소방방재청은 기존 공공시설물에 대한 내진 보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도 교량·지하철 등 국가기반시설에 대한 안전대책을 발표하며 시민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한강교량 20곳과 지하철 5~8호선 구간의 경우 지진 7~8에서도 견딜 수 있는 내진 보강을 완료시켰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민간 건축물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국내에 내진설계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8년부터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지진에 취약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란 단국대 교수는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의 사업을 활성화 시켜 사업진행 과정에서 민간 자체적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건축물 지진대책 ‘全無’=민간 건축물이 방치되고 있는 이유는 내진보강 비용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내진 보강 비용은 정부재원으로 감당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건축물 소유자에게 강제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민간 소유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서 “개인의 안전을 위해 기존 건축물에 대한 내진 보강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특히, 저층건물들은 지진에 더 취약한 상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층건물들은 내진기준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 내진설계를 적용하거나 이에 상응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고층건물들은 지진과 함께 고층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는데 이 과정에서 건축물은 지진에 대한 저항력도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인기 현대종합설계 전무는 “고층건물일수록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자체적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고층의 경우 지진 뿐만 아니라 거센 바람에 지탱할 수 있도록 건물 자체를 휘도록 만들어 일종의 탄력을 부여하는데, 이 탄력이 지진에 대해서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반면 저층건물은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조적조’라고 불리는 벽돌로 만들어진 저층건물은 지진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에 견디기 위해서는 건물 자체에 연성(軟性)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탄성력이 커야 하는데 벽돌은 연성이 적기 때문이다. 연성은 철 재료에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철골조 및 철근콘크리트조의 경우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내진설계 기준에서는 3층 이상 건축물 및 1천㎡ 이상, 높이 13m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도 내진 점검 필요=국내 공동주택에도 내진 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의 경우 1990년 이후 준공된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내진설계가 포함돼 있을 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8년부터 내진설계 기준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사업승인 신청분까지는 기존 설계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 전문가들은 1992~1993년에 준공된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내진설계가 누락된 채 시공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오상훈 부산대 교수는 “1988년부터 내진설계가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업승인 시점 이전의 사업장부터 적용되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준공 시점으로 본다면 1992~1993년 까지 지어진 건축물들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진에 가장 취약한 구조는 내진설계가 포함되지 않은 필로티 구조라고 지적했다. 내진설계가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윗층은 벽식구조이면서 아래층에서 기둥식으로 바뀌는 구조는 기둥 부분에 많은 힘들이 집중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석구 한국구조기술사회 회장은 “과거에 지어진 건축물 중 지상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진설계 없이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주택들이 있는데 이들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면서 “오히려 지진 충격 발생시 휘어지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고층건물보다는 중저층의 필로티 구조의 주택들은 내진설계 적용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국토부·소방청, 내진설계 두고 ‘우왕좌왕’
 

■ 부처혼선
갑작스런 지진 대책 발표를 놓고 관련 부처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 지진 대책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사건도 발생했다. 소방방재청의 성급한 지진 대책 발표에 국토해양부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아이티 지진이 발생하자 재난 대비 전담 부서인 소방방재청에서는 같은달 25일 급히 ‘지진방재종합대책회의’를 개최해 지진 대비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 결과 소방방재청은 ‘모든 신축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적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1~2층의 단독주택을 신축할 경우에도 모두 내진설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소방방재청 발표에 건축물 인허가 담당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자신들과 아무것도 논의된 바 없는 일이라며 ‘도입 예정이 없다’는 보도해명 자료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에서는 잘못을 시인하고 향후 면밀한 부처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는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소방방재청이 모든 신축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 기준을 도입하고자 한 이유는 아이티 지진 사태 등 기존의 지진 사고를 분석한 결과, 주로 1~2층의 저층 건축물들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소방방재청은 국토부와 협의해 민간 건축물이 내진설계를 도입할 경우 지방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모든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 도입에 대해 “현행 내진설계 기준은 3층 이상의 건축물 또는 1천㎡ 이상, 높이 13m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의무화 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

 
면진이 가장 안전하고 비싸
지진 발생땐 내진이 피해커
 

■ 내진설계 기법은
건축물 등 구조물에 적용되는 내진설계 기법은 크게 내진(耐震), 제진(制震), 면진(免震)으로 나뉜다. 서로 비슷한 말 같지만 각각 다른 개념이다.
 

‘내진’은 구조물이 지진력에 대항해 싸워 이겨낼 수 있도록 구조물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제진’은 구조물 내에 별도의 장치를 설치해 지진력에 상응하는 힘을 구조물에서 발생하도록 해 지진력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구조물 내에 커다란 물탱크를 제진장치로 설치하기도 하는데 지상에서 지진 충격이 발생할 경우 그에 따라 건축물이 흔들리더라도 탱크 내의 유동체인 물은 충격에 영향 받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대적 힘으로 비정상적으로 휘어진 구조물을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면진’의 방법은 구조물과 지반을 분리시키는 개념으로 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움직이더라도 구조물은 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볼베어링이나 고무판 같은 것들을 구조물 기둥에 부착해 지진이 오더라도 구조물에는 충격이 오지 않도록 한다. 일종의 자동차 바퀴에 설치된 스프링의 역할과 비슷하다.
 
세 가지 방법으로 건축물을 각각 건립했을 때 지진 발생시 가장 피해가 적은 것은 면진이 적용된 건축물이고, 그 다음은 제진 기법이 적용된 건축물, 마지막은 내진 기법의 건축물이다. 내진 기법의 건축물은 구조물 스스로 지진과 싸워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지진 발생시 그 피해가 가장 크다. 따라서 내진설계 비용은 면진이 가장 비싸고, 제진, 내진의 순이다.
 
정광량 동양구조안전 소장은 “면진의 콘셉트는 지진 이후에도 별도의 추가적인 수리 비용없이 다시 들어가 살 수 있도록 지면과 분리시켜 충격을 거의 모두 흡수하는 것으로 기존 구조물의 완벽 보존을 추구한다”며 “이에 비해 제진은 벽체 등 일부 시설이 파괴될 가능성이 있고, 내진은 구조물만 빼고 거의 모든 것들이 파괴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의 종류 및 성격도 시대가 지나면서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하더라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주기적으로 건축물에 대한 내진 능력 점검 및 보강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오상훈 부산대 교수는 “1988년 최초에 적용된 내진설계 기준의 경우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내진설계가 적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시대가 지나면서 지진의 특성도 변화하고 있는 만큼 건축물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하더라도 재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진의 진화에 따라 ‘KBC(Korea Building Code)라고 불리우는 국내 내진설계 기준도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88년 최초로 국내에 내진기준이 발표된 이후, 정기적으로 개정을 진행해 지난해까지 네 차례 개정됐다.
 
예전에는 지진 충격을 일괄적인 충격으로 간주하고 내진설계 기준도 이에 맞춰 진행됐으나 지진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에 따른 내진설계 기준도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